[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참 좋은 시절!

2018.09.07 08:08

ohmily 조회 수: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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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짧은 소설로 보는‘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1

 

참 좋은 시절!

 

나는 남편 승규의 사촌누나 영과 함께 로저스 칼리지 관사 앞 잔디에 있는 긴 흔들의자에 앉아 아이처럼 발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칼리지 아티스트였던 시아버지에게 제공된 오래된 붉은 벽돌집 관사는 클레모아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똑 같은 모양으로 지은 관사 중 이 집이 맨 마지막 집이었다. 집안은 두 개짜리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서 방충문을 열면 바로 하늘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캐비넷이 달린 작은 부엌과 복도처럼 생긴 거실, 방 두 개가 나왔다. 하지만 집 앞 뒤로는 파란 잔디밭이 널찍하게 깔려 있어 톰아저씨의 오두막처럼 전망이 좋았다. 영언니는 민트향이 나는 가느다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영언니가 연기를 구름처럼 후하고 내뿜을 때면 왠지 근사해 보여서, 나도 한번 따라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곤 했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영언니는 얼굴에 늘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걸걸한 목소리로 “미국에 와서 담배를 배웠어, 남편의 첫 부임지가 하와이였는데, 군인 아파트 여자들이 거의 다 피우더라고, 처음엔 호기심에 나중엔 습관이 되어서, 지금은 밥은 걸러도 담배는 없으면 못 살겠어”
영언니는 그러곤 큰 소리로 껄껄거리며 웃었다. 하나도 우습지 않는 이야기 끝에 언니는 언제나 혼자 말하고 혼자 크게 웃는 버릇이 있었다. 
“하와이, 한번 가보고 싶어요. 푸른 바다와 야자수, 와이키키 해변에서 서핑하는 애들 보면 무지 멋있어 보이던데......
“허긴 이 시골 오클라호마 와는 비교가 안 되지!”
영언니는 그러면서 미국사람들이 오클라호마 출신을 뭐라고 하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캘리나뉴욕 같은 데서는 숭악한 오키 촌놈들이라고 하지, 원래 여기가 동부 체로키 인디언들을 쫓아보낸 곳이야, 당시 백인 들이 생각하기에 제일 척박하고 쓸모없는 땅이었거든.......

승규네 가족이 이런 오클라오마에 정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승규아버지가 입양한 미선누나 때문이었다. 호적도 없는 고아였던 미선을 승규 아버지가 입양을 해서 호적을 만들어 주었는데, 나중에 그 미선이가 미군과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몇 년 후 미선은 은혜를 갚는다며 승규 아버지를 초청했고, 곧 이어 승규 형제들이 줄줄이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후 미선은 오키 촌놈인 첫 남편과 이혼을 한 뒤 다른 주로 이사를 가버렸다. 가끔 아들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는데, 주소가 자주 바뀌었다. 마지막 편지는 오하이오의 신시내티 부근에 있는 교외지역이었다.

영언니는 오클라호마에 온 뒤로 클레모아에 있는 칼리지를 다녔다. 그녀의 남편은 하와이에서 계속 엽서를 보내 왔다. 나와 아이들은 아직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월 마트에서 산 듯한 싸구려 목걸이나 시계 등을 선물로 보냈다. 하트모양의 목걸이 펜던트엔 두 아이들 사진이 들어있었다. 영 언니는 아이들 사진을 볼 때마다 한 쪽 눈으로 몰래 울었다. 승규는 이십 년 만에 만난 이 사촌누나의 병명을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충동성 가출로 단정하고 나에게 감기약이나 담배 살 돈을 절대 빌려주지 말아야한다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난 영언니가 왠지 좋았다. 그래서 주말이면 큰아이 앤디를 데리고 클레모어로 가서 며칠 씩 지내다 왔다. 영언니는 그런 나에게 이곳 토종들이 사용하는 구어체 영어나 1불짜리 케익믹스로 간단하게 케익 만드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 심심하면 Hit the road 라고 말하곤 오래된 폰티악차를 몰고 작은 타운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구세군 스토아엔 ‘애수’의 주인공이 입었을 법한 오래된 코트나 쉐타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걸려있었는데,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캐시어는 늘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껌을 질겅 질겅 씹고 있었다. 시골에선 제법 고급 스토아에 속하는 제시페니엔 컨트리 피플들이 교회 갈 때나 입는 촌스런 정장 옷들이 즐비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우리 앤디가 킨더가든에 들어갈 무렵 영언니는 남편을 따라 플로리다로 가버렸고, 그 후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난 그 언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최근에 영언니 에게서 소식이 왔다. 
“영언니, 언제 텍사스 한 번 놀러오세요.”
“아, 올케, 나 바빠서 못가! 권사직분에 주일학교 교장이라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야!” 난 왠지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민트향이 나는 담배를 멋지게 피우던 영언니마저 주님의 일꾼이 되어 버렸다니, 역시 주님은 전능하신 분인 것이다. 한편으론 베레모를 쓴 체게바라가 전향을 한 것처럼 이유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푸른 풀밭위에 새겨져있는 영언니의 카톡 대문메시지가 새삼 스마트 폰에서 반짝거렸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계속-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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