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귀뚜라미에 대한 단상

2018.09.14 13:06

ohmily 조회 수: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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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귀뚜라미에 대한 단상

 

나의 가을은 살생으로 시작됩니다. 영영 떠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달라스의 여름은 떠날 때도 지독하게 갑니다. 가을의 전주곡, 귀뚜라미의 합창이 울리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오래전부터 그 합창은 귀뚜라미 군단이 내게 전쟁을 알리는 선전포고의 전주곡 같습니다. 가을비보다 국화꽃보다 먼저 가을을 확 당겨다 놓는 귀뚜라미, 누가 귀뚜라미를 행운의 상징이라 말했을까요.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 가게를 인수하고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습니다. 달뜬 마음으로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멀찍이 차를 세우고 가게를 향해 걸어가면서 가슴은 벅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검은 움직임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일처럼 밀어닥친 귀뚜라미 군단에 기겁하고 말았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때까지도 귀뚜라미를 똑바로 본 적이 없었기에 귀뚜라미 군단이라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바닥과 벽과 천장에 펼쳐 놓은 시커먼 이불이 금방이라도 나를 덮어버릴 것만 같아 근접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시무시한 현장이었습니다. 총을 든 강도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영혼이라도 갉아먹을 듯한 루머 같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커녕 문 앞까지도 다가갈 용기조차 상실한 채 망연자실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달려드는 파도를 피하듯 나는 뒷걸음질 치고 말았습니다. 어디에선가 엄청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리는 징조 같았습니다. 전 주인한테 전화 거는 일뿐 할 수 있는 일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놀란 내 목소리를 듣고 전 주인이었던 멋진 총각은 빗자루를 들고 총알 같이 달려왔습니다. 모처럼 늦잠을 자다가 불려 나온 총각은 오히려 미안하다며 30여 분에 걸쳐 빗자루로 털고 쓸어 상황을 기어코 종료시키고 말았습니다. 전쟁이었습니다. 

 빌딩이 건축되기 전까지 이곳은 들판이었습니다. Dallas North Tollway가 바로 이곳까지 밖에 오질 않은 상태였고 이 빌딩 뒤편으로 그러니까 북쪽으로는 허허벌판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오갈 데 없는 것들의 항쟁이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곤충들의 집단 출몰은 기온이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되지 않는 상황에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건물주가 동원한 곤충 처리반의 반격도 겨우 며칠뿐 상황을 호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처음 두어 주는 남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싸워야 하는 내 삶의 현장, 내 일이었습니다. 새끼손가락만도 못한 게코 한 마리만 보아도 기겁하고 아이들을 불러대던 나였지만, 언제까지 남의 도움을 바라며 비상줄을 당기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일은 먼저 나를 죽이고 싸워야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괄호 안에 묶어 내 일기장에서 영원히 삭제시키고 싶은 사건입니다.  

 30분 일찍 출근해 일단 마스크를 하고 킬러 스프레이를 한 통 다 뿌렸습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숨긴 폭탄이라도 피하듯 까치발로 들어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쓸어내고 또 쓸어냈습니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꼭 우산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퇴근할 때는 문을 닫고 상업용 테이프로 문틈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꼭 이겨야만 하는 결투의 현장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8월 중순부터 9월을 그렇게 보내기를 십수 년. 귀뚜라미를 내다 팔 판로만 있었더라면 아마 떼부자가 되어 빌딩을 사고도 남았을 겁니다. 매년 차츰차츰 줄어들어 두어 해 전부터는 8월 말쯤에 몰려와 한두어 주 동안 문밖에서 반짝 공격하고 노동절을 전후로 해서 떠납니다. 달라스의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기에 더 많은 귀뚜라미를 예상했는데, 공격 목표지가 바뀌었나 봅니다. 그저 잊지 말라는 표식인 양 몇 마리 문밖을 서성이다 사라집니다. 하지만 출근길마다 두려움으로 올라오는 울렁증과 두근거리는 가슴은 여전합니다.  

 귀뚜라미 노랫소리는 내게 더이상 아름다운 추억의 소리가 아닙니다. 가을밤의 낭만을 불러오지도 노스텔지아에 빠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일은 당연합니다. 코끝을 달래는 국화 향기는 가을입니다. 가을은 행복입니다. 

 아랍의 속담에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현재 시각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지만, 영혼은 기억을 품고 있기에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 그 시간을 몸처럼 따라갈 수 없다지요. 잘못되고 엉킨 것들은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던 나쁜 기억도 언젠가는 낙타의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가리라 믿습니다. 그때는 나의 가을도 옛 모습을 찾아 내가 알던 향수로 찾아오겠지요.  *

 

돌아온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언제나 소금 냄새가 있습니다

 

햇볕의 분신들이 젖은 채
들킬 낭만이 없다는 사람들은
아직 멀미 중인 몸짓에
수평선으로 애써 뒤뚱뒤뚱 기울기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끝에는 나름대로 슬픔의 자세 있어
흘려놓은 그림자가 뒤늦게
자신을 되찾아 가리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전부를 내 건 애무는 슬플 수밖에 없지만
파도가 파도를 밀어내는 내밀한 소리에서
순간마다 태어나는 새로운 바람을 듣는 밤
나는 
벗어놓은 그의 발소리를 밟아
뒤척이는 몸에서 잎을 틔우는 꿈을 꿉니다

 

젖은 활자들로 기억을 쓸어 올리며
물과 뭍의 어간에
소금 꽃이 피는 것을 봅니다

 

김미희, (연안, 그 후)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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