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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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

- 달라스에서 추석을 보내며 -

 

9월 28일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기적적 성공으로 인한 서울수복기념일이다. 그 때의 셀 수 없이 많은 희생자들의 핏값으로 오늘 내가 살아있음이 감사하다.
 열흘 전 쯤, 사촌 시동생들이 시숙부님과 함께 땀 범벅으로 환하게 웃는 얼굴과, 벌초 후의 말끔해진 산소 찍은 사진을 단톡방에 올려주어 추석이 가까운 줄 알았다. 장손에 무녀 독남인 남편과 종부가 미국으로 왔으니 죄송하기 짝이 없다. 
친정자매들 단톡방도 추석이야기에 손자들 사진 올리느라 까톡까톡 시도 때도 없이 반가운 까치소리다. 밤새 묵음으로 했다가 아침에 열면 귀여운 사진과 소식들이 주르륵 이어진다. 벌써 열손가락이 모자라는 아기들의 이모할머니가 되었다. 미국서는 공휴일이 아니다 보니 추석이 손에 잡힐 듯하다가 멀어지고 갑자기 집을 잃은 것 같은 허전함이 밀려온다. 카톡이 향수병 촉진제가 된듯하다. 단 하나 손녀는 시애틀 멀리 있고 작은 애는 힘든 출장이었다며 짐 풀자마자 토요일에 친구들과 휴가를 가버렸다. 월요일이 추석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최인훈 <광장>의 빗소리처럼 “철철철... 바그르 좌, 바그르,” 세찬 비가 끝도 없이 내린다.
서재 겸 기도실에서 책을 쓰는 남편이 있는데도 마음은 밀실에 갇힌 듯 아니 광장에 동그마니 혼자 남은 듯 했다. 이럴게 아니지. 마음을 고쳐먹고 카톡이라는 통로를 거쳐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왔다. 행복한 마음과 기도를 듬뿍 담아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받았던 추석카드 중 맘에 드는 요것조것 골라서 한국과 미국, 이 사람 저 사람께 밀린 안부를 했다.
“미국서는 별로 실감나지 않는 명절. 한국의 자매들과 추석 카톡하는 동안 순간적으로 집을 잃은 사람 같았지만 ... 고향 떠난 우리 모두 더 나은 본향을 생각하며 행복하시자구요” 
“나라가 바뀌니 한국의 명절은 공휴일이 아니라서 출근하고 학교가야 해요. 토요한국학교와 지역행사가 고유명절 전통을 지켜주고 교회의 주일 예배 후 추석 점심 먹고, 어른과 친척들이 있으면 좀 다르긴 해도... 그래도 요즘은 카톡이 향수병치료제”라고 답을 보냈다. 
  
 젊은 목사님 가족과 외식 후에 집에 오니 혼자 있던 나비도 반가운가 보다. 7시가 넘었는데 밥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두 공주님이 예쁜 한복까지 입고 함께 사진 찍으며 웃다보니 집안이 환해졌다. 아빠 따라 미국교회 가서 송편을 굶었단다. 짧은 소견머리에 송편 살 생각도 못했는데, 마침 만난 지인이 큰 걸로 한 팩 사 주신 것이 두 가족 여섯 식구를 추석답게 만들어 주었다. 젊은 목사님의 부친이 남편의 총신대원 동기이다.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안부로 화상 채팅을 하는데도 공주님들은 송편과 과일 먹으며 나비와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두 분이 섭섭하셨을 듯하다. 그 분들께 귀한 손녀인데 우리 부부가 재롱을 독차지 한 셈이다.

 시댁에서 차례 상과 음식을 준비하고 밀려드는 손님을 맞으며 명절 증후군으로 고통 받는 며느리들과 처가에 가기 싫은 사위들, 노인들의 우울한 추석기사를 읽었다. 실제 명절 직후 고부간, 장모와 사위간 갈등이 폭발해 2016년 통계로 설날과 추석 후 열흘간 이혼신청이 하루 평균 577건으로 평소의 2배라고 한다. 반면, 명절 연휴 기간 내내 ‘시월드(시댁과 월드의 합성어로 고된 시집살이를 의미)’라는 건 이미 옛말로 젊은 부부들이 양가 부모님 동일하게 찾아뵙는 것을 당연히 여긴단다. 명절 당일 아침 차례를 지낸 뒤 식사가 끝나면 처가로 가는 아들가족 배웅, 저녁시간 쯤 친정에 오는 딸 가족을 맞이하는 것도 벌써 익숙해졌다고도 했다.

 월요일아침. 한국은 추석달이 밝은 밤이리라. 유대인 손님 L이 샤를 아즈나부르의 샹송을 듣자고 한다. <라 맘마> 애절한 음색이 가슴을 파고든다. “... La Mamma 엄마 외침과 함께 모두가 모여들고 있어요 ... 엄마는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감네요 ...그토록 많은 사랑과 추억을 가진 채 ...” 안사돈이 세상을 뜨셨다고 무겁게 입을 뗀다. 건강 때문에 못가니 엄마대신 메모리얼의식에서 읽으라고 아들에게 이멜을 보냈단다. “나에게는 단하나인 아들인데 당신이 흡족하게 가족으로 받아주어서 아주 행복했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에 당신은 내 아들을 나보다도 더 사랑해 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과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내 아들을 보는 기쁨이 얼마나 컸던 지요...” 들으며 코끝이 찡해서 눈물 맺힌 그 분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R. 브라우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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