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제주도와 김으게네

2018.10.05 09:33

ohmily 조회 수: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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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짧은 소설>

 

제주도와 김으게네

 

그날 아침 제주도 단체 관광객들은 오전 아홉시까지 김포공항 대한항공 티켓팅 부스 앞에서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올케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여행사에서 30프로 할인된 가격으로 최고급호텔 숙박이 포함된 2박 3일짜리 여행 코스였다. 말숙은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 아이들 둘을 포함한 네 사람의 여행 가방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최소한 8시 전에 공항버스를 타야했다. 올케는 모처럼 방학을 맞아 나온 미국조카 들을 위해 에그 스크램블과 토스트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칭찬을 받고 싶은 욕심에 미국 집에선 잘 먹지도 않던 아침을 뚝딱 해치우고, 각자의 백팩을 야무지고 메고 나섰다. 연년생 애들은 닌자터틀이 그려진 똑같은 티셔츠에 걸을 때 마다 라이트가 번쩍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신발이 흔하지 않아, 지하철 계단을 걷거나, 전철을 탈때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뒤를 한 번씩 돌아다 보았다. 게다가 아이들 둘은 영어로만 대화를 하니, 전철에서 만난 극성스런 젊은 엄마들은 어느 학원에서 영어를 배웠느냐고 묻기도 했다.

 

말숙은 삼년 주기로 한국을 방문했다. 취지는 아이들에게 조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친다는게 이유였지만, 실은 말숙의 향수병 때문이었다. 말숙은 주기적으로 한국을 다녀오지 않으면 머리카락 빠진 삼손처럼 매사 기운이 없고 의욕이 떨어졌다. 그러다 한국을 한 번 다녀오면 배터리가 충전된 로봇처럼 다시 기운이 펄펄 나고 원래의 이 말숙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방문 때에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교실에서 잠복기를 거친 작은 아이의 수두가 발병되어 한 달 동안 거의 꼼짝을 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큰아이한테 까지 수두가 전염되어 이래저래 세 모자는 한 달내내 삼촌네 아파트에서 선풍기 바람만 쐬다가 왔다. 롯데월드는커녕 동네 놀이터 구경도 못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번 방문엔 그간 못 가본 제주도를 비롯해서 방방곡곡을 누비리라 작심을 하고 온 가족이 출동을 한 것이다.

 

김포공항에 내리자, 아이들은 근사한 인천공항을 보다 시시한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 이 공항은 왜 이렇게 작아 하고 실망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아, 여기는 국내선 비행기만 드나드는 공항이야, 그래도 여기가 옛날엔 인터내셔날 공항 이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서 보면 뭐든 작아 보이네...... 80년대 초만 해도 신혼여행의 성지는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중고등학교 아이들 수학여행지로도 간대니 요즘 아이들은 이 공항을 그저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로 여길 만 했다. 말숙이 윗세대 어른들이 평생 공항이란 곳에 발 한번 내디뎌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걸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다. 

 

곧이어 제주행 비행기가 이륙했다. 미국비행기에 비해 기내식도 잘 나오고 무엇보다 친절하고 예쁜 승무원 누나들 때문 인지 아이들은 갑자기 얌전해졌다. 말숙 역시 비록 하늘 위지만 그리던 내나라 품에 있어서인지 기분 좋은 안도감과 흥분이 찾아왔다. 비행기 색깔처럼 푸른 조국의 하늘, 미국으로 이민 간지가 삼십 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남의 나라 땅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주로 여행을 가면, 현지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대부분 어느 나라에서 여행을 왔느냐고 먼저 물었다. 텍사스에서 왔다고 하면 눈을 크게 뜨고, 그나마 눈치가 빠른 미국인들은 아, 당신의 내셔널리티를 묻는 거에요 하며 질문을 정정했다. 그런 일이 잦자 말숙은 누가 묻지도 않는데 오리지널 국적은 사우스 코리아 라는 말을 꼭 잊지 않았다. 눈빛만 봐도 아는 동족과는 달리 이방인들은 서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제주공항에 내리자 여행사 삼각 깃발을 든 가이드가 <햇살 여행사> 로 제주관광 하실분 들 모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추 30여명 되는 사람들이 그 깃발 아래로 모였다. 키가 작고 머리를 야무지게 묶은 여자가 “혼저 옵서예” 하더니, 지금부터 인원점검을 시작하겠다며 가까이 모일 것을 주문했다. 빨간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은 여자는 제주 해녀 출신인지 건강미가 넘쳐 보이고 사투리가 심했다. 여자가 한 사람씩 차례 차례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름 호명이 끝났는데 큰아이가 “엄마, 내 이름은 안 불러”. 하며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이드 여자도 아까부터 한 명이 모자란다며 자꾸 인원수를 다시 점검하고 있었다. 

 

“김 으게네씨, 김으게네씨!  안오셨나요?”


말숙은 제주도 토속 이름인가, 이름이 좀 이상하네 하다가 불현 듯 큰아이 이름을 영어로만 쓴 것이 생각났다. 여행사에서 미국서 오신 분들은 영어로도 표기를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잠깐만요!  말숙은 여자에게 명단을 보여 달라고 했다. 어쩐 일인지 큰아이 이름이 영어로만 표기되어 있었다. 
여자는 큰아이 이름, 영어 표기 EUGENE를 두 단어씩 떼어 EU(으) GE(게)NE(네) 읽은 것이다. 한국이름처럼 3음절로 떼어서 읽는 여자의 발상이 기발했다. 그 뒤 여행 다닐 때 마다 큰아이 이름은 김 으게네가 되었다.


김으게네 줄 잘 서! 김으게네 밥 많이 먹어! 제주도 여행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준 그 이름과 제주처녀 가이드, 지금도 제주도가 국제화되는 과정에서 날마다 새로운 이름들이 태어나고 있을 것이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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