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맞추다

2018.10.26 09:20

ohmily 조회 수: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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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맞추다

 

“아~ 하세요.” 입을 벌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관리를 잘하셨네요.” 상태가 아주 좋다는 말과 함께 클리닝이 시작되었습니다. “겉만 좋았지, 많이 안 좋네요. 딥 클리닝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볼게요. 마취해야 하는데 견딜 만한지 보세요.” 하고 잔뜩 겁을 줍니다. 참는 것에는 이력이 났으니 실력을 보여주리라 다짐했습니다. 이를 다 뽑아낼 기세로 열성을 다하니 시리고 아파도 참아야 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을 고하고 이래저래 엑스레이를 찍었습니다. 결과는 왼쪽 어금니 두 개가 닳아서 마모되었고 금이 간 상태라 크라운을 씌우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냥 두면 이가 부서질 수도 있으니 빨리하는 게 낫겠다 싶어, 본을 뜨고 임시로 만든 크라운을 씌우고 돌아온 게 두 주 전입니다. 원래 찬 것을 안 좋아해서 어쩐지 잘 몰랐는데 얼마 전부터 양치하다 보면 시린 것 같아 그러잖아도 클리닝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지요. 

 

 “아~ 하세요.” 다시 그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번에는 마취를 하겠다니 정말 살 것 같았습니다. “짝짝짝 바이트 하세요.” 푸른색 얇은 종이를 넣고 짝짝짝 하기를 수십 번. 그때마다 “아~ 하세요.” 하며 이를 갈아냈습니다. “아”가 어느새 “어”가 되고 “어”가 재촉하는 소리에 놀라 “아”가 되기를 수십 번. 생각했습니다. 두 손을 걸어 잡고 손가락에 있는 힘을 다 주며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가 “어”로 들렸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지 “어”가 아니라고 말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지쳤다고 말하고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꼭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 비드를, 그것도 바늘귀도 넘기지 않는 비드를 꿸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가 “어”로 들려서 그렇게 해독되어도 무방하다면 활짝 열리지 않아도 괜찮을 때도 있었지요. 오랜 세월을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만나 마음을 잇대으려니 어긋나기도 하겠지요. 특히 자유로운 영혼과 자로 잰 듯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때론 포기하는 게 사는 길이기도 하지요. 이만큼 살다 보니 비밀 수첩 하나쯤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누구는 이러니 이렇게 대해야 하고. 또 저 사람은 저러니 저만큼만 다가가기로 하고. 그 친구라면 머릿속 생각들을 다 털어줘도 될 것 같고. 이 친구에겐 어떻게 지냈어? 라고 물어야 하고. 저 친구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 라고 머릿속을 열어달라 졸라도 보고. 

 “어”를 “아”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그냥 곁에 두고 싶은 친구가 있습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 덩달아 환해지기 때문이지요. 그와 우정을 나누는 일은 보는 거로도 족하지요. 아니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꼭 시 같습니다. 낡아빠진 시어들로 증축된 시. 가령 사랑이나 이별이나 아픔 혹은 슬픔 같은. 필사적이지 않아도 되는 금기어들. “어”가 “아” 일 수도 있는 그런 시. 읽는 사람을 바꾸어 놓는 그런 시 말입니다. 그런 친구는 착해지고 싶게 하지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지요. 

 

 하지만, “어”가 아니라, “아”란 말이야. 라고 호통치면서라도 곁에 두고 싶은 친구도 있습니다. 정체성이 흔들린대도 기꺼이 감수하고픈 시린 이름이지요. 그래서 내가 아닌 그리고 네가 아닌 그 중간쯤. 우리라는 3인칭도 아닌, 1인칭과 2인칭의 그 중간. 1.5인칭쯤으로 남고 싶은 사람. 어이없고 또 슬픈 그런 이름도 있습니다. 가끔 거친 손끝이 부끄러워 악수를 청하지 못한 대도, 선물 같은 사람이지요.  긁어 내고 갈아 내어 크라운을 씌운 어금니 같은 사람 말입니다. 

 

 몇 번을 그렇게 갈아내고 또 갈아내더니 다 되었답니다. 마취 풀리면 잘 맞나 보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오십여 년을 일해온 이. 닳고 지친 어금니 두 개에 상으로 크라운을 씌워주었습니다. 반항 한번 없이 복종하니 당연한 듯 홀대하며 살았습니다. 가끔 시위하듯 어금니를 앙다물고 사색이 되어도 그대로 받아줬던 고마운 이. 생각해 보니 무엇을 던져주든지 굳센 힘으로, 혹은 세심함으로 답하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마치 나라는 웜홀에 빠져 내 생을 다 받아 내준 사람처럼 말입니다.

 

아~ 하세요
아~ ~
문을 열었다
당신이 온 줄 알았다
눈을 감았다
어가 아니라 아 하시라고요

 

짝짝짝 바이트 하세요
짝짝짝 
아~ 하세요

어금니가 아니라 
귀를 갈아 내고 있었다

아~ 하세요


짝짝짝 바이트 하세요
짝짝짝 
아 ~ 하세요

 

다 된 것 같아요
마취 풀리면 잘 맞나 씹어보세요
이럴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끝내 
저러더라고요

 

멈출 때를 놓친 시간만큼 
떠오르는 시린 문장들
달려오면서도 흘리지도 못하고 온
들뜬 골목길  
지나온 걸음을 갈아내고
당신 이름 위에 크라운을 씌운다

 

 김미희, (맞추다)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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