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사라진 아메리칸 드림

2018.11.02 13:56

ohmily 조회 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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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사라진 아메리칸 드림

 

친구 희경의 ‘위대한 개츠비’ 같은 생활이 무너진 것은 희경남편이 골프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그날 이후였다. 청명한 오월, P.G.A의 단골 골프장에서 희경의 남편 종석은 멋진 스윙을 날린 후  뇌동맥 파열로 속절없이 주저앉았다. 다행히도 뇌졸중 환자에게 그 중요하다는 5분 안에 헬기가 떠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희경은 평생 반신불수 남편과 살아야 했을 것이다.

 

대학동창인  희경과 민숙은 몇 년 차이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친정식구가 미국에 살았던 민숙과 달리 희경은 미국에 아무 연고도 없었건만, 대학시절부터 신혼집은 미국에서 차린다고 장담을 하더니, 그녀의 오래된 농담처럼 그렇게 되었다. 민숙이 미국에 와서 보니, 희경은 이미 돌이 된 딸이 하나 있었다. 이민생활이 힘들어서인지 처녀시절 그렇게 다이어트를 해도 안 빠지던 살이  몰라보게 빠져 민숙은 하마터면 희경을 만나기로 한 B시공항에서 그녀를 몰라 볼 뻔 했다. 희경도 놀라긴 마찬가지여서 비비안리처럼 가늘었던 민숙이 몇 년 사이에 펑퍼짐한 미국 아줌마가 되어있어서 놀랐다.

 

희경은 이민 와서 처음 몇 년간 시댁식구와 동업으로 컨비니언 스토아를 하다, 바로 독립을했다. 그녀의 말처럼 장사꾼 집안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시댁은 모두 사업수완이 탁월해서 B시에서 알아주는 사업가 집안이 되었다. 그녀의 남편도 리커스토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빌딩까지 구입하며 승승장구 했다. 민숙과 달리 딸 둘을 동부의 유명 사립학교를 보내는 것은 물론 그녀는 계절마다 골프회원들과 다른 주나 남미로 골프투어를 떠나곤 했다. 7000스퀘어 피트나 되는 그녀의 이층집엔 명품과 비싼 골프채가 그득했고 청소는 메이드가, 밥은 거의 외식을 하는 듯 했다. 어쩌다 민숙이가 싼 비행기를 타고 놀러 가면 역시 하루 세끼를 거의 밖에서 사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동네 식당 주인들은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한인사회 단체장 까지 하다 보니,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거의 밤늦은 시간이 되기 일쑤라고 했다. 민숙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희경에게 친정엄마처럼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나 희경이 입장에서 보면 민숙이 사는 것이 답답해 보였다. 민숙은 너무 쉽게, 지루하고 편안한 미국의 중산층에 편입되어 그저 가끔 여행이나 다닐 뿐 별 다른 재미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이 파라다이스 같은 미국에서 왜 실컷 누리지 못하는 지를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희경은 아침에 일어나면 옷장 가득하게 걸린 골프웨어중 하나를 꺼내 차려입고, 푸른 잔디위에서 공을 날리다 보면 이민살이의 시름이 가시는 것은 물론 심심잖게 주요한 인맥도 쌓게 되어 점점 한인사회의 마당발이 되어갔다. 구력이 어느 정도 쌓이자 이제 그녀의 골프그룹은 아무나 못 들어오는 사교 크럽이 되었다. 희경은 날로 주류사회까지 뻗어가는 그녀의 인맥을 카카오 스토리나 페이스북을 통해 과시하기도 했다. 주지사 부부와 찍은 사진이나 한국의 대통령이 워싱톤을 방문했을 때 등이 파인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주지사는커녕 동네 시의원과 찍은 사진 한 장도 없는 민숙으로서는 희경이야 말로 제대로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미국에 살면 살수록 자신은 마치 달걀흰자처럼 노른자 주변만 뱅뱅 맴돌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처럼 주류사회의 편입은 2세들에게 미뤄두고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학습된 무기력함이 이민생활 곳곳에 묻어나고 있었다. 무얼해도 달걀흰자 주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결론이 날이 갈수록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럴 즈음 희경남편의 불행한 소식이 날아왔다.

 

미국의 많은 중산층들이 과도한 의료비로 무너지고 있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이즈음이었다. 희경남편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병실에서 이주일 머문 입원비 합이 28만불이나 나왔다. 그러나 그 정도에 눈 하나 까딱할 희경이가 아니었다. 물론 미리 예비해 둔 보험도 있었다. 문제는 그녀의 180도 변한 일상이었다. 이제 그녀는 아무 곳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수술을 앞둔 남편을 두고 시도 때도 없이 외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다른 집 남편처럼 성인병 하나정도 액서서리처럼 있었으면 방심을 안 했을텐데,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성공한 이민생활처럼 모든 게 너무 정상 이었던 게 문제였다. 희경은 최근에 민숙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이민, 그런 것은 없어, 환상이야, 이민자들이 만들어낸......모든 게 모래위에 쌓은 성 같아, 바람 불면 훅 한순간에 무너지는.....”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부부간에 어쨌든 먼저 아픈 사람이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야, 아프지말고 살아라!”


민숙은 오래 전 가을 보았던 뉴잉글랜드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떠올랐다. 올해도 단풍은 그렇게 찬란하게 물들었을 것이다. 배신하지 않고 세월에 굴하지 않고 말이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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