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공포의 가을 소풍

2018.11.09 09:45

ohmily 조회 수: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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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공포의 가을 소풍

 

단풍 구경 가자는 소리에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아직은 내 영혼이 물기가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지요. 토요일 오후 일을 마치고 간단하게 짐을 꾸려 오클라호마로 향했습니다.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예행연습을 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 은퇴 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과 우연히 나눈 적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살다가 죽자.”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여행이라면 소심해지는 나는 겁이 덜컥 났었지요. 과연 여행을 즐길 수 있을지 여행이 내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이번 소풍 길에서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밤에 출발해 모텔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왕복 예닐곱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시집 몇 권을 챙겼습니다. 긴 밤을 보낼 생각에 드라마가 담겨있는 노트북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오클라호마로 들어서면서 마른천둥과 번개가 등골을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낡아 표시도 없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 있는 시골길을 달렸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좁은 산길은 내비게이션만 의지한 채 의심에 의심을 안고 칠흑을 뚫고 달렸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들짐승의 눈빛 같은 불빛 한 점 없는 길을 달렸습니다. 흡입력 강한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길을 달리면서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가끔 보이는 불빛은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섭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로는 부족해서 사서 고생이란 말인가. 지금 여길, 왜 하필 이 시간에. 가도 가도 끝도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서 짧은 탄식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냥 새벽에 출발해서 올걸. 50여 마일이 50시간처럼 길었습니다. 다행히 하느님이 보우하사 모텔에 도착해서야 참고 있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3시간을 달려왔을 뿐인데 먼 곳에 와 있는 듯 낯설었습니다. 온몸에 덕지덕지 뿌린 향수로도 어찌할 수 없는 찌든 담배 냄새와, 위층에서 내려오는 소음으로 도통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드라마를 끼고 누웠습니다. 찌그덕찌그덕! 도저히 친숙해질 것 같지 않은 소음은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등을 움직일 때마다 귀속을 파고드는 매트리스의 낡은 스프링 소리는 오지도 않는 잠을 몰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을 흘리고 문이 닫혔습니다. 그래도 아침은 와 있었습니다. 금방 돌아온 남편은 강가에 물안개가 너무 좋더라며 서둘렀습니다. 오늘 하루는 당신께 다 드리리다 말하고 나니 툴툴대던 마음이 아침 햇살처럼 고와지는 것 같았습니다. 야영장에는 컵 스카우트팀과 교회에서 나온 유스 팀이 조식을 마치고 한창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추억의 결핍증에 걸린 사람들이 벗어놓고 간 그림자를 밟는 것일까. 맑은 하늘에 얼굴을 밀어 넣고 생각했습니다. 붉은 산을 통째로 담고 함묵하고 있는 강가를 걸었습니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닐까. 바람에 몸을 맡긴 길가의 쑥부쟁이처럼 순한 얼굴이 되어 돌아가는 거. 저 멀리 꼭 있을 것만 같은 행복을 찾아 달리다 매번 넘어지기만 하던 어제를 일으켜 세워 까진 무릎을 호~ 불어주는 일. 그러다가 단풍 몇 잎을 슬쩍 챙겨 책갈피에 심어두는 것이겠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다 보니 우체통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색다른 모습들에 반해 한 개만 한 개만 더 하며 찾아다니다가 늦은 아침을 먹고 목적지인 오클라호마와 알칸소를 가로지르는 1번 도로, 탈리메나 시닉 드라이브 (Talimena Scenic Drive)로 향했습니다. 이 구간은 2000피트 이상의 고도 위에 경사와 굴곡이 심한 도로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지요.  40여 마일을 드라이브하며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광활한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을은 바람으로 온다 했던가요. 벌써 가을로 깊숙이 들어선 산은 흥에 겨워 온갖 바람을 동원해 나뭇잎을 흔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가슴을 활짝 내보이며 내 마음마저 붉게 물들이고 말았습니다. 쿵쿵 뛰게 했습니다. 하지만 쿵쿵대는 마음이 진정되기도 전에 어둠이 여백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또 서둘러야 했습니다. 어젯밤의 두려움을 다시 겪을 수는 없었습니다. 활짝 열렸던 산등성이들이 푸른 강을 삼키기 시작했습니다. 환했던 얼굴을, 입술을 꾹 다문 채 등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아서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산은 무서운 속도로 시계를 돌려 문을 걸어닫기 시작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저장된 우리 집을 누르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삶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어쩌자고 동조했단 말인가! 일찍 출발하자 졸랐건만 역시 허사였습니다. 어젯밤 그 길을 다시 통과하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그와 같은 길을 1시간에 거쳐 통과했습니다. 저만치 시커멓게 서 있는 산봉우리가 거만해 보였습니다. 온갖 화사한 언사로 홀려놓고 돌아서서 뒤통수를 내리치는 사람 같아 무서웠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가보지 않은 어느 시골 마을을 그리며 가스통을 채우고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는 게 소풍 나온 사람들의 일이지요. 새로운 길 앞에서 매료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건 우울한 투쟁입니다. 순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가을 같습니다. *

 

바깥을 다 비출 만큼 밝았지
안을 다 품을 듯 넓었지

 

한 때는

 

분장이 필요치 않던
빛나는 시절이었지

 

하나의 세계를
가장 정직하게 누설시키기 위해
세월만큼 깜박거리며 바람을 맞던 늦가을 등성이는
강물을 삼키며 저물고 있다 

 

흐르는 이름을 등으로 비추고
오늘은 
시시한 비가 시시하게 바깥을 지우고 있다

 

김미희, (등)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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