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FIXER UPPER

2018.11.16 11:46

ohmily 조회 수: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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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FIXER UPPER

 

요즘은 근교 여행시 구글링을 하여 주변에 볼거리를 찾아보는 것이 큰 재미이다. 아무리 작은 타운이라도 한 두 군데 구경 할 곳은 꼭 있기 마련이어서, 생각지 못한 명소를 발견할 때가 많다. 얼마 전 오스틴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그랬다. WACO 쯤 오자 갑자기 HGTV 의 인기있는 프로그램 FIXER UPPER 가 생각났다. 칩과 조애나 게인스 부부는 헌집 고치기 프로젝트인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텍사스 시골마을 웨코를 미 전국에 알렸고, 이 도시의 인상을 확 바꾸어 놓았다. 지은 지 몇 십년 된 허술한 집들이 이 부부의 손길을 거치면, 금나와라 뚝딱처럼 금새 변하는데, 프로젝트가 끝난 후 집주인들이 짓는 그 황홀한 표정들은 본인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무척 즐겁게 해준다. 이들이 보여주는 집고치는 과정 또한 힐링의 과정이다. 마치 일이란 이렇게 즐겁게, 아이들이 놀이를 하듯 해야 한 다는 걸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이 부부가 전하는 귀한 메시지는 집은 장소의 개념인 하우스가 아니라 따뜻한 수프 향이 나고 가족들이 서로 사랑을 공유하는 홈이라는 것이다.

 

마침 그날따라 웨코 다운 타운에서는 매그 놀리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매그놀리아 마켓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마켓의 상징은 커다란 제분소 지붕 두 개인데 녹이 슬었지만, 그대로 활용하여 마켓의 상징이 되었다. 곳곳에 작은 부스들이 수도 없이 설치되어 있고 음식을 파는 곳엔 어딜 가나 기다란 줄이 늘어서 있었다. 컵케익이 맛 있다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는 아예 들어갈 엄두가 안 나게 줄이 길고, 매그놀리아 마켓을 들어가는 데도 몇 십분은 기다려야 했다. 마치 사람들이 모두 조애나에게 빠져 그녀의 물건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난 것만 같았다. 가격도 결코 만만치 않아 평범한 커피 잔 하나에도 24불씩이나 하건만 사람들은 그녀가 즐겨 입는 티셔츠부터 작은 액서서리, 집안장식에 사용한 물건들을 미친 듯이 팔에 안고 나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영어로 Fixer upper 는 고칠 곳이 많은 낡고 허술한 집을 가리킨다. 아무리 좋은 집도 세월이 흐르면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마련이고 손볼 곳이 늘어난다. 더구나 나무로 뚝딱 지은 미국집은 중간에 보수를 하지 않으면 들판 한 가운데 쓰러져가는 폐가처럼 되어가기 십상이다. 우리집만 해도 올 초에 지붕을 새로 갈았고, 작년엔 에어컨 유닛을 새 걸로 바꾸었다. 십년쯤 되니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중년여자처럼 걸핏하면 돈 들 곳이 생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인간관계조차도 그렇다. 구멍이 나고 흠이 보였을 때 중간 중간 수리를 해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여기저기 큰 구멍이 생겨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리곤 비에 홀딱 젖어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다. 

 

얼마 전 타주에 사는 친구로부터 난 ‘단무지’ 같은 친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맞은 성격을 말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것과 나중 것은 수긍하겠는데 중간은 좀 아니라고 했더니, 이때의 ‘무식’은 상대를 알기도 전에 괜한 동정심이나 정의감에 다 퍼주고, 나서고해서, 나중엔 후회하는 스타일이니 자기 자신과 세상을 너무 모르는 ‘무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깔깔 웃으며 맞아, 우리는 단무지 스타일이야 하며 우리의 성향을 인정했다. 그렇다. 세상엔 인구 수 만큼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다른 스타일에 비해 ‘단무지' 스타일은 손해를 더 보기 마련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상대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않고, 액면 그대로 무조건 믿을뿐더러, 급하고 지랄맞은 성격은 자신의 속내를 먼저 내보이는 경우가 많아, 교활하고 잔꾀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런 탓에 이런 성격을 Fixer Upper처럼 짜잔 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튼튼한 성격으로 고칠 수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가장 좋은 집은 크고 멋지고 남들 보기에 근사한 집이 아니라 아늑하고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집인 것처럼, 가장 좋은 친구 역시 겉으로 드러난 말보다는 행동으로 진심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해주는 친구 일 것이다. 옛 서양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친구와 집은 오래 될수록 좋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집과 친구는 떠나야 한다. 투자를 위하여 산 집이 그러듯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친구를 사귀는 사람과는 멀리 하는 것이 좋다. 조석으로 바람이 차갑다. 집뿐만 아니라 허술해진 몸과 마음의 Fixer Upper 가 필요한 시기이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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