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꽁트 ‘트럼프 때문이야’ ?

2018.12.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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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트릴레이 ]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29  

‘트럼프 때문이야’ ?

-아이고, 정말 뒤집어지나보네!-
신문을 펼쳐든 이 대한 씨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2천표 가깝게 앞서가기에 걱정은 되면서도 설마 했는데 하룻밤 새에 7백여 표로 줄어버렸다. 이쯤에서라도 개표가 종료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미 개봉 우편투표가 3만여 표 이상 남았단다. 이 대한 씨는 공연한 화풀이로 식탁위에 펼쳐진 신문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시원하지 않았다. 어휴, 하며 한숨을 내쉬는데 찌그러진 얼굴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영 킴이 진다면 트럼프 때문이다, 오렌지카운티주민들도 트럼프 보기 싫다고 다 돌아섰다 아이가. 영 킴이 실력도 있고 비주얼도 괜찮은 사람인데 대통령 잘못만나 힘들어졌다 이 말이다. 보래, 오늘밤 자고나면 뒤집어질 끼다!
오스카 최였다. 파라과이에서 10년 넘게 의류상을 하다가 미국으로 재 이민해온 고등학교 동창 녀석인데 후진국에 살다 와서 그런지 매사 부정적이었다. 이름도 남미계처럼 바꾼 괴짜다.
어제 저녁 모처럼 친구 대여섯이 LA코리아타운의 순대국집에서 회동을 했다. 때가 선거직후인지라 자연히 정치얘기로 대화가 풀렸다. 전국적으로 한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연방하원선거가 화제에 올랐는데, 뒤지다가 역전한 뉴저지의 엔디 김을 젖히고 오렌지카운티의 영 김이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투표 다음날 90% 이상 개표된 상황에서 3천여 표 이상 앞서가던 영 킴이 하루가 지나자 2천표 아래로 격차가 좁혀진 상황이었다.
-왠지 좀 불안해, 우편투표는 주로 젊은 층들이 많이 하는데 그 사람들 대게 민주당성향이잖아, 개표할수록 격차가 줄어드는데.... 내일 아침 뉴스 듣기가 겁나네.
온건한 친구 하나가 그렇게 말하자 오스카 최가 쳐다보지도 않고 픽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제발 표차가 더 줄어들지 말고 빨리 개표가 끝났으면 좋겠어, 정치이력으로나 인물로나 영 김이 연방하원의원으로 딱 이잖아, 김 창준의원 이후로 이 십 년 만에 동과 서에서 동시에 한인의원이 탄생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또 다른 친구가 그렇게 말하자 오스카 최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봐라, 그리만 되면 얼매나 조켔노, 미국에 사는 한국동포들 누구 하나 그런 맘 없는 사람 어딨겠나? 허지만 트럼프 하는 거 봐라, 이민자들을 에니멀이라 카고 줬던 영주권도 꼬투리 잡아 뺏아뿐다 카는데, 마이너리티들이 공화당 찍겠나? 오클라호마나 택사스 같으면 모를까 가주에서는 안 된다, 영 킴도 길게 정치하려면 트럼프를 끄잡아 내든지 민주당으로 갈아타든지 해야 될끼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잡아 끊듯이 툭툭 내던지는 오스카 최의 말에 이제껏 입을 닫고 있던 끝자리 친구가 쯧쯧 혀를 차며 말판에 끼어들었다.     
-이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 같으니라고, 요즈음 트럼프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데 끄잡아내리다니, 트럼프처럼 강한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북한을 굴복시키지도, 떼거리로 넘어오는 밀입국자들을 막아내지도 못했을 거야, 이민국의 강력한 단속에 불법체류자도 많이 줄었고. 또 하나, 트럼프대통령 뚝심에 중국이 꼼짝 못하고 있는 거 보면 얼마나 통쾌한가? 언사가 직선적이고 좀 과격해서 그렇지 정치는 똑 부러지게 잘하고 있다니까,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안 한다 이 말이야, 아메리카 퍼스트! 멋지잖아?
끝자리 친구는 자기 말에 동조를 구하듯 좌중을 휘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영 김의 선거구인 오렌지카운티의 골수 공화당원이었다. 오스카 최는 당장 발끈했다.
-뭐라, 아메리카 퍼스트? 봐라, 트럼프는 아메리카 대통령이 아이다, 백인들만의 대통령인기라. 우리 같은 유색인종은 안중에도 없다. 그라고 트럼프가 북한을 굴복시켜서 얻은 게 뭐가 있노? 핵 한 덩이라도 파기했나? 웃기지 마라, 갸들이 지금 굴복하고 있는 게 아이라 웅크리고 있는 기다! 트럼프가 아무것도 안 내놓으면 또 한 방 쾅 쏠끼다. 두고 봐라, 내 말이 틀리나. 그라고 뭐 강력한 단속에 밀입국자도 불체자도 많이 줄었다고? 그기 그리 좋나? 내 알기로 지금은 시민권자가 됐다지만 너그 중에도 불체자가 있었다던데? 허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은 몬하고... 맘뽀 그리쓰먼 안 된다.
싸움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오스카 최가 발설한 불체자는 바로 트럼프 옹호론자인 골수공화당원이었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유학생으로 건너온 그 친구는 IMF로 송금이 끊기는 바람에 신분을 잃어서 불체자가 되었다. 물론 오래잖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며 신분을 회복했지만, 오스카 최의 말대로 골수공화당원이 잠시나마 불법체류자였던 건 사실이다.
-뭐야? 그러는 자네는 남미에서 올라올 때 떳떳했다고 말할 수 있어? 자바시장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가짜서류 만들어줘서 영주권 받았다며? 아니야?
-가짜서류? 봐라, 가짜서류에 이민국이 도장찍어주겠나? 말조심해라, 이 친구야!
-서류는 진짜지. 내 말은 서류대로 일하지 않았다는 말이야. 사실이잖아?
-이거 정말, 공화당원이라더니 트럼프 닮아서 윽박지르는 데는 소질이 뛰어나구만!
둘의 싸움은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서로 삿대질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 대하 씨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두 사람을 끌어 앉히며 화제를 돌렸다.
-이보라고, 지금 그렇게 못난 언쟁을 벌릴 때가 아니야. 우리의 희망인 영 김이 당선 되겠나 안 되겠나 그것이 문제라고. 어찌 생각하나, 정말 오스카 말대로 뒤집어질 것 같은가?
오스카라는 말이 나오자 분풀이를 거기다 하려는 듯 골수공화당원이 먼저 대답을 가로챘다.
-뒤집어 지긴 뭐가 뒤집어진다는 거야! 영 김이 지금 천 구백 표나 앞서 있잖아, 이기고 있는 사람을 왜 질 거라고 생각하느냐 말이야, 재수 없게. 걱정들 하지 마, 영 김이 승리할 거니까, 트럼프대통령의 파워를 믿으라고! 아메리카 퍼스트! 
골수공화당원은 엄지를 치켜들며 과장되게 장담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스카 최가 받아쳤다.
-그래, 영 킴이 승리해야지, 근데 말이다, 내가 누누이 말하건 데 영 킴이 낙선한다면 그건 바로 트럼프 때문인 기라, 그거 한 가지 만은 꼭 명심들 해라. 자, 그럼 나 먼저 사라진다!
오스카 최가 떠나고 나자 술자리는 이내 썰렁해졌다. 아무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트럼프의 파워를 믿으라고, 아메리카 퍼스트라고, 영 김의 승리를 장담한다고 큰소리치던 골수 공화당원도 잠잠했다. 이 대한 씨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영 김이 이겨도 트럼프 때문이고, 져도 트럼프 때문이 되는 셈이었다. 트럼프대통령이 항상 원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

 

이용우
소설가. LA거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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