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정숙 수필 추억으로 먹는 ‘맛’

2018.12.28 10:05

ohmily 조회 수: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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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추억으로 먹는 ‘맛’

 

어느덧 성탄절도 지나고 새해가 코앞인 12월의 마지막. 원인을 찾으려고 근 일 년 검사 후 결국 수술했고, 간단?한 수술했다고 회복기를 얕잡아 보았다가 ‘엑스트라방콕’해야 했다. 샌디가 직접 요리한 ‘Turkey Tetrazzini’와 빨간색과 노란연두색의 큼직한 포인세타가 심겨진 싱싱하고 아름다운 화분을 집까지 가져왔다. 또 리비가 ‘페이퍼 화이트’ 구근을 맑은 유리화병에 담아 금빛그물리본으로 예쁘게 장식해왔다. 메리크리스마스! 교회예배도 못가고 몸이 안 따라 주니 성탄준비의 즐거움이 없던 내게 ‘성탄의 맛’을 안겨준 미국 친구들.  

 

 갈비탕 국물과 김치 국물 맛이 똑같은 해괴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과, 배, 감, 귤, 고구마, 쿠키, 초콜릿 다 똑같은 맛에 심지어 사탕도 단맛이 없다. 나 혼자 요술나라에 있는 건가? 수술 후 처음 며칠은 그러려니 했는데 일주일 넘고 열흘이 계속되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죽 대신 토스트에 계란 프라이와 치즈를 곁들여 먹어 보았다. 세 가지가 똑같이 아무 맛이 없다. 다만 재질이 다른 식감은 조금 알 수 있었다. 미각은 없어도 촉각은 남아 있는 것이 그 나마 다행이었다. 어쩌다보니 해마다 전신마취 수술을 하게 되었고 벌써 세 번째인데 먼저 두 번 다 이런 일은 없었기에 궁금해서 물었다. “신경 건드린 것은 아니고 사람마다 회복이 다르니 염려마시고 음식 잘 드셔요. 혀에 마취가 아직 안 풀리고 항생제 물약과 가글 물약 때문일 수도 있으니 약을 다 드신 후에는 서서히 회복 될 거예요.”  

 

 “인간의 혀는 수천 개가 맛을 구분할 수 있지만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이 기본으로 알려졌는데 1908년 일본의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감칠맛(식욕을 당기는 맛)을 포함해서 5종류라고 했다. 당시에 개발된 향미증진제인 MSG(조미료)는 강한 감칠맛이 난다. 원래 식품성분의 98%는 무미, 무취, 무색이다. 포도와 사과에 맛은 없다! 오직 향만 존재할 뿐이다.  맛이 아니라 코의 후각상피에서 느끼는 향이며 매운 맛, 떫은 맛 등은 촉각이다. 모든 맛은 혀의 모든 부위에서 느낄 수 있지만 사람마다 민감한 부분이 다르다고 한다. 수만 가지 요리의 다양한 맛 또한 ‘향’일 뿐이다. 음식을 먹을 때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향기물질이 휘발하면서 느껴지는 극소량의 향을 가지고 수만 가지 맛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비염으로 염증이 발생하면 다양한 맛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Flavor맛이란 무엇인가, 최낙언,예문당 참고)
한 시대를 강타했던 드라마 대장금에서 홍시 맛을 알아낸 맛의 천재 대장금의 혀도 나이 들어 맛이 늙는다는 선배상궁의 말이 인상 깊었다. 맛싹들이 모여, 이룬 맛돌기들로 구성된 혀는 나이가 들면서 위축되는데 여자는 40초반, 남자는 50대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이 먹으니 입맛도 손맛도 늙는다. 너희가 와서 맛 좀 봐라” 하시던 생각이 난다. 

 

 계절의 맛은 사는 맛을 더 해준다. 한국에서의 겨울철, 한의사 아버지가 엉뚱한 사건에 연루되어 집을 떠나자 오일페퍼(유지)마나님이었던 엄마는 집 앞 담을 헐고 가게를 차렸다. 콩나물, 무, 파, 두부 등 간단한 식재료, 과자 과일등과 군고구마를 팔았다.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새벽에 엄마랑 채소를 받으러 갔고, 언니는 늦게까지 군고구마 통을 책상삼아 공부하며 문 닫기까지 있었다. 자다 깨서 팔다 남은 고구마를 먹던 달고 따듯했던 그 맛. 교회의 사모님이 오븐에 구운 고구마를 보내셨다. 아무 맛도 없는데 머리로 맛을 기억하면서 먹자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천천히 먹어. 자던 입에 체할라” 
추억으로 먹는 음식 맛. 맛이란 오감만이 아닌 따듯한 기억에 사랑이란 MSG를 첨가해서 먹는 맛이 아닐는지. 일하며 바쁜 사모님들이 기도와 정성으로 호박죽, 야채죽, 곰탕, 잣죽을 보내셨다. 다 똑같은 맛! 아무 맛도 못 느끼지만 예전 맛을 상상하며 맛있게 감사로 먹었다.

 

 혀암으로 두 번 수술 받은 분은 모든 음식이 쇠(철)맛이 나서 정말 힘들었는데 6주 이상 지나니 맛이 서서히 돌아왔다고 한다. 쇠맛 조차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회복될 것을 감사로 기도했다. 혀 암에 걸린 그리스도인에게 의사가 혀 절단수술하기 직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을 해보라고 하자 불렀다는 512장 찬송.  27세 생일을 앞두고 소천한 캐나다의 윌리엄 페더스톤이 16살 때 쓴 찬송시를 고든 목사님이 작곡했다. 아직도 쉽지 않은 발성찬송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를 무미건조(無味乾燥)해진 입으로 불러본다.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만 새해에는 기도와 찬송으로 무릎 꿇는 시간이 많아지길 기도하며 또 한해를 감사로 접는다.  *

 

“내 주 되신 주를 참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고하리라.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 내 평생에 
힘쓸 그 큰 의무는 주 예수의 덕을 
늘 기다리다가 숨질 때에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 찬송가 512장)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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