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오 여사

2019.01.11 10:19

ohmily 조회 수:11

tid288t000195_n.jpg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오 여사

 

민지와 주영이 사는 아파트에도 겨울이 왔다. 미국에서 보기 힘든 은행나무가 아파트 입구에 있어 이사 온 첫날, 주영은 무턱대고 이 아파트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가을이면 서울 고궁부근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은행나무였는데, 이곳에선 노스탤지어의 상징이 된 것이다. 민지와 주영은 여대 동창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둘 다 고만 고만한 가정형편에 집에서 겨우 학비조달을 받을 뿐 생활비는 벌어 써야 하는 처지였다. 민지는 오전엔 도넛 샵, 주말엔 생맥과 치킨을 파는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영은 교회 피아노 반주와 초등학생 피아노레슨으로 근근히 생활비를 이어 나갔다. 둘은 특별한 포부가 있어 유학을 왔다기 보다 대졸 후 임시직으로 잠깐 일하다, 정규직 취직을 위해 온 유학이었다. 그런데 생활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어쩌다 재수 없게 교통 티켓이라도 받는 달은 여지없이 적자가 되었다. 둘은 궁리 끝에, 방 하나를 같이 쓰고 이층에 있는 작은 방을 세놓기로 했다. 

 

‘방 세놓음, 한인타운 근처, 한달 렌트비 500불’

 

몇 군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 전화를 한 사람은 남학생이었다. 민지가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 ‘여성분 원함’이란 글자를 추가로 넣어달라고 했지만, 이번 주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 세 번 째 전화가 왔다. 상냥한 목소리의 서울 말씨를 쓰는 여자 였다. 여자는 조곤 조곤 아파트 주변환경이 조용한 지를 먼저 물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흰색 벤츠를 몰고 방을 보러 왔다. 날씨가 흐렸는데도 여자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여자의 긴 생머리와 다소 뚱뚱한 몸매와 허벅지가 살짝 드러난 청바지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여자는 엉망인 부엌을 지나 거실을 휙 한 번 둘러보더니 세탁기가 있는 지를 물었다. 그런 후 자신이 사용하게 될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 방엔 전 세입자가 두고간 간이 책상과 트윈사이즈 침대가 있었다. 여자는 그 점을 제일 마음에 들어하며 선뜻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호칭을 어떻게 할까요?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미세스 오 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날부터 세 여자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오여사가 이사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민지와 주영은 오여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나이가 몇 인지 알지 못했다. 알바를 끝내고 오면 늦은 밤이기 일쑤였고, 어쩌다 같은 집에 있어도 이층 오여사는 아래층으로 잘 내려오지 않았다. 식사도 거의 집에서 안하는지 첫날 민지가 오여사용으로 지정해준 냉장고 첫째 칸도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가끔  컵라면은 먹는지 빈 용기가 휴지통 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호기심 많은 주영은 잠자리에 들기 전 오여사에 대한 갖은 추측을 늘어놓기 일쑤였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며칠 전 오여사 화장실에 자신의 화장품을 둔게 생각이 나서 올라갔는데, 그곳에 놓인 오여사 화장품을 보니 모두가 고가였고, 간 김에 클라젯 문을 열어보았더니 옷 역시 아무나 못 사 입는 비싼 브랜드네임 옷들만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데서 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주영은 가끔  오여사가 샘이 나는지 


“참, 그 얼굴에 복도 많지, 그래 봤자,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이지만....근데 가까이서 보니 늙었더라, 눈가나 목에 주름이 자글 자글 한게 한 오십대는 되어 보여! 아무리 생머리에 청바지 입고 다녀도 나이는 못 속이지!” 

 

오여사에게 두 번째 렌트비를 받을 때였다. 오여사는 민지에게 한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올 것이라  말했다. 무슨 까닭인지 오여사의 얼굴도 처음 볼 때 보다는 많이 평온해 보였다. 첫날 선글라스 속에 숨겨진 눈가의 퍼런 멍 자욱을 민지는 알고 있었다. 민지는 문득 어제 주영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떤 남자가 오여사를 아파트 까지 데려다 주고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 한참 어려보이던데.....동생인가?” 사실 언젠가부터 오여사는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할 것 없이 누군가와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고함을 지르며 사생결단 할 것 같은 고성이 아래층까지 들렸고, 어떤 날은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에 나오는 손예진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런 여자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뭐야! 지킬박사와 하이드도 아니고, 오여사 지금 한 사람과 통화 하는 것 아니지?
내 생각엔 뭔가 한참 수상해.....“

 

그날 아침, 오여사가  집을 나서고 난 뒤 였다. 민지가 외출하려고 아파트 문을 잠그고 있을 때 낯선 차 한 대가 아파트 앞에 정차를 했다. 추레한 중년의 남자와 아이 둘이 차에서 내렸다. 남자는 민지를 보자 대뜸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오여사였다. 


ㅡ오늘 아침에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요....


휴스턴에서 왔다는 남자와 아이들은 실망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칭얼대는 작은 애는 이제 여덟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민지는 왜 자신이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여사가 그다지 호감이 가는 세입자도 아닐뿐더러 이제 정체까지 알게 되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막장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인가 부다. 민지는 오여사가 여행에서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며 급하게 차에 시동을 걸었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B06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