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커피 이야기

2017.06.19 12:16

KTN_design 조회 수:203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커피 이야기

coffee-4.jpg

 

오랜만에 동네 분들과 아이 홉(IHOP)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11시쯤, 시간이 제법 되었는데도 이 식당 입구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방학을 해서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 벌써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이 장성한 뒤엔 학교 커리큘럼을 종종 잊어먹곤, 마트나 공원에 아이들이 많이 보이면 그제야 국경일이나 방학임을 짐작하게 된다. 느긋한 주말 아침이나 가끔 풍성한 미국식 팬케익이 먹고 싶을 땐 아이 홉이 제격이다. 이곳에 오면 다양한 팬 케익과 잘 구어진 베이컨 과 소세지, 써니 사이드 업 에그 프라이 두 개를 언제든지 맛 볼수 있다. 식탁 한켠엔 네 종류의 메이플 시럽이 놓여있고, 각종 잼과 무한 리필 커피가 놓여있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다 커피포트 사이즈가 작아진 것 같다고 누군가 말한다. 그러게 서너명이 두 잔 정도는 충분히 마실수 있었는데, 커피 값이 비싸진 게 이유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커피의 어원인 카파 (kaffa) 는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지 카파에서 유래한다. 6세기경 에티오피아가 예맨을 침공 한 것을 계기로 커피는 아랍지역으로 퍼졌는데 커피 이동의 중심지는 예맨의 항구도시 모카였다. 이후 16세기 까지 커피는 이슬람 문화권을 대표하는 음료였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것은 16세기 후반 오스만 투르크와 활발한 무역을 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통해서 이다. 당시만 해도 유럽사람들은 아침에 맥주를 이슬람권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맥주와 와인의 소비량이 줄어들자, 상인들이 커피를 ‘지옥을 연상시키는 악마의 음료’ 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가톨릭 성직자들은 당시 클레멘스 8세 교황에게 사탄의 음료 커피를 금지 시킬 것을 청원했다. 하지만 커피 맛을 본 교황은 이교도만 마시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울 정도로 맛이 훌룡한 이 음료에게 ‘세례를 주어 진정한 기독교도의 음료로 만들어 악마를 놀려 주자’라고 외쳤다. 이후 커피는 유럽 전역으로 급격히 퍼졌으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커피 없는 아침은 상상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커피의 종류도 다양해서 전문점에 가면 주문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래전 에스프레소가 얼마나 진한 커피 인줄 모르고 주문했다 한잔 마시고 밤새 잠을 설친 적도 있고, 된장녀처럼 밥값 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운운하던 시절도 있었다. 80년대 초 처음 맛본 비엔나커피의 그 부드러운 윕 크림 속에 숨어있던 커피 맛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맛이고 이민 와서 한동안 오리지널 원두커피를 마시면서도 자판기 믹스커피를 못 잊어 하는 촌스런 이민자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방문 시 초이스 커피나 원두커피는 최고의 인기 선물 목록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더 다양한 커피 맛을 볼 수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수없다. 커피메이커만 해도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한 잔 씩 빼먹는 커리그(keurig), 일반 드립커피용, 원두를 갈아서 드립하고 보온이 되는 포트, 수제 커피 메이커 등, 패션처럼 해마다 유행이 바뀌는데 요즘은 커리그나 수제 커피가 대세인 것 같다. 나 역시 이 모든 것을 시도해 보다 다시 제일 평범한 드립커피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너무 진한 것 보다는 연한 커피 몇 잔 마시는 것이 훨씬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가끔 믹스 커피를 타 마시는 것은 아마도 향수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설탕과 크림이 너무 많이 들어가 몸에 안 좋다는데도 그 환상의 비율이 가지고 있는 맛을 잊지 못해 봉지를 털어 넣고 그 봉지로 커피를 젓고 있다. 지금도 아는 지인을 만나면 “언제 커피 한잔 같이 해요” 라고 인사를 하니, 커피는 음료이기 전에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친교의 덕목 인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두잔 쯤 마시고나서 브런치 식사 가 끝났다. 오래된 동네 분들은 친척보다 더 가까워서 수다는 해도 해도 끝이 날줄을 모른다. 운동, 보험 이야기부터 자식들 근황, 최근 정치 이슈까지 다양하고도 다이내믹하다. 가끔 양념처럼 남편들 흉을 보다, 그래도 결론은 나이 들면 배우자뿐이 없다고 모순 한 다즌도 듬뿍 커피 안에 집어넣는다. 친한 사이는 취향도 서로 잘 알기에 설탕이나 크림도 커피 잔에 넣어주며, 건강하자고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맛있는 커피 많이 마시며 건강하자고 웃는다. 여행처럼 커피도 어떤 커피를 마시는 가 보다, 누구와 함께마시냐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비싼 루왁 커피라 할지라도 함께 마시는 사람이 불편한 사람이면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할 것 이다. 인간의 향이 느껴지는 커피, 잔잔하고 평범한 세월의 향이 느껴지는 커피를 오래된 지인들과 함께 중세의 오후처럼 오래 오래 즐기고 싶다. 여름 한 낮, 버터플라이와 풍뎅이 그림이 들어있는 커피 잔을 들고 맨발로 초록 잔디 위를 성큼 내 딛는다. 바야흐로 나팔꽃 줄기가 또아리를 트는 뜨겁고 바쁜 성하(盛夏)가 시작 되었다.

       

 

[칼럼] 박혜자.jpg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