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별을 만나다

2017.07.27 18:47

press3 조회 수:137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별을 만나다

 “별의 시인 윤동주”를 찾아 떠난 3박 4일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별 하나씩 품은 38명의 시인과 인천 공항에서 첫인사를 나눴습니다. 두시간을 조금 넘기자 연길에 도착했습니다. ‘제1회 윤동주 서시 해외 작가상’ 수상자로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 테마 여행에 동행을 물어왔을 때 망설였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은 너무 오랜만이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시인과 함께 하는 여행은 윤동주 시인을 만나는 만큼이나 설렜지만, 한편으로 윤동주 시인만큼 외롭고 쓸쓸한 여정이 될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괜한 기우였습니다. 다들 따뜻하고 고왔습니다.

 

 시인이면 더 좋고 어찌 됐든 문학을 전공한 가이드를 찾았다며 최 림 가이드를 소개할 때부터 뭔가 많이 다른 여행이 되리란 걸 짐작했습니다. 역시 시작부터 좋았습니다. 구불구불 산을 뚫는 듯 길을 내며 달리는 52인승 이 층짜리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 밖으로 펼쳐 보이는 순전한 자연에 감탄사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30년 가까이 텍사스에서 살면서 얼마나 그리워하던 풍광이던가. 모나지 않아서인지 왠지 낯설지만은 않은 풍경. 겹겹이 보이는 능선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콩밭을 보며 어느새 우린 하나같이 “콩밭 매는 아가씨야~~”를 외치며 목청을 높여 “칠갑산”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발차취를 찾아가는 문학기행이니만큼 첫 방문지는 대성 중학교로 향했습니다. “별의 시인 윤동주”라는 동상과 “서시”가 새겨진 시비 앞에서 첫 단체 사진을 찍고 “윤동주 교실”이라 명명된 그가 공부하던 교실의 나무 책상과 의자에 앉았습니다. 난로 위에는 찌그러지고 네모난 도시락으로 탑을 쌓고 검게 그은 물 주전자가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아득하게나마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김을 피어오르던 양은 주전자며 책상을 붙여놓고 모여앉아 도시락을 까먹던 교실도 그려보았습니다. 하얀 교복 컬러에 김칫국물을 막 떨어트리고 당황하는 순간, 웃고 있는 시인의 맑고 선한 눈과 마주치며 멋쩍어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그 길로 일행은 그의 생가를 찾았습니다. 윤동주 생가는 용정시 명동촌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북간도 용정은 구한말 독립투사들이 이주한 곳으로 항일투사들과 이주민들은 해방을 위해 투쟁을 했고 근대 민족교육을 활발하게 펼쳐진 곳이기도 하지요. 1994년 용정시 자치정부와 용정시문학예술연합회에서 복원했답니다. 2007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문화재 보호단위로 지정됐고, 2014년 표지석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스물아홉의 나이로 ‘서시’처럼 살다간 시인이 세상에 첫울음을 터트린 곳. 여기저기 세워진 시비들이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다시 손질한 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정사각형의 우물.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 있”는 우물은 깊었습니다. 누군가가 잘 익은 앵두 한 알을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시큼하고 달콤한 맛. 한가하고 고적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곳. 그 뒷마당에 앵두나무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동주가 시인으로 익어갔던 것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수풀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에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시인의 묘가 있었습니다. 한여름 땡볕에 떼도 입지 않은 채 누워 살구나무로 작은 그늘을 만들어놓고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간소하게 차린 제상 앞에서는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헌화를 하고 떨리는 손길로 올리는 잔 속에 별이 떴습니다. 모두 한마음 되어 광목천을 움켜쥐고 묘를 에워쌌습니다. 스물아홉의 그를 생각하며 예를 다한 묵념과 “쉽게 씌여진 시” 시낭송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음복하면서 시인들의 가슴 속에 별이 뜬 것을 보았습니다. 푸른 결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늘 '서시'를 품고 살아온 내가 더 좋아졌습니다. 그가 남긴 흔적들을 돌아보며 그의 쓸쓸함과 외로움도 보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내 삶에 "이방인 시인" 그가 있어 좋습니다. 외롭고 쓸쓸할 때는 그를 떠올리며 달래야겠습니다.

 숙연해진 마음으로 내려왔습니다. 버려진 듯한 시인의 묘를 뒤로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쓸쓸하게 내려왔습니다. 멀리 차창으로 보이는 일송정과 해란강을 바라보며 조두남 작곡, 윤해영 작사의 “선구자”를 불렀습니다.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당차게. 일송정 용정고개와 해란강은 독립투사들이 쉬어가던 곳이라 합니다. 풍운의 시대에 많은 사람이 이 강가에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조선족 어린이들의 “시랑송 퍼포먼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동시들, 그리고 더러는 개량 한복을 차려입고 똘망똘망한 조선족 억양에 율동으로 마무리한 “새로운 길”과 “서시” 낭송은 감동이었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한국산 학용품들을 나눠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시낭송은 연변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는 목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긴 하루의 마무리는 뭐니 뭐니 해도 웃음 가득한 뒤풀이지요. 호텔에 들어와 미리 준비된 현지식으로 저녁을 하고 마지막 행사인 “중한문인 시랑송의 밤”을 끝으로 뒤풀이가 이어졌습니다. 각자 준비해온 안주를 꺼내놓았습니다. 돌아가며 본인 소개를 하고 건배 제의를 했습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뻑적지근했던 첫날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여럿이어도 쓸쓸하다

 

훤히 보이다가도 자꾸 숨는 길은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린 내 마음 때문일까

 

담 넘어 그 앵두  

여전히 붉은 빛으로

더 깊어진 그 우물 속에 들어 있는데

 

파란 바람 스친 가슴은

모두 별이 되어서인지 몰라

 

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여럿일수록 더 쓸쓸하다

 

김미희, (별이 되는 것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