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 혜자의 ‘세상 엿보기’

남부 여행 3 (개틀린 버그,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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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틀린 버그는 스모키 마운틴 초입에 있는 동네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관광지답게 요란하기 그지없는데, 각종 놀이시설, 컨트리 음악 라이브 극장,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케이블 카, 수많은 상점들과 식당들로 매년 천 만 명 이상 의 스모키 마운틴 관광객들의 발을 초입부터 꽉 붙잡아 놓는 곳이다. 여행을 다니면 목적지에 집착하는 남편과 달리, 난 조금이라도 흥미를 끄는 곳이 있으면 즉시 스탑을 하고 구경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개틀린 버그도 그랬다. 어쨌든 개틀린 버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케이블 카를 찜해놓고 우리는 스모키 마운틴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당장 안 가면 캠핑장이 어디로 이사를 가는지 빨리 가서 잘 곳을 마련해 두어야한다는 가장의 말씀에 따라 슈가랜드 비지터 센터로 가니, 안내 데스크 직원이 가까운 곳에 있는 캠핑장은 빈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남편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비해 난 속으로 개틀린 버그 가서 자면 되지 하고 있는데, 캠핑장 전문 레인저가 빈곳이 있으니 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린 스모키 마운틴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Elks Cove 캠핑장에 짐을 풀었는데 바깥온도가 90도가 넘는데 비해 그곳은 거짓말처럼 시원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를 빼곤 단독으로 캠핑을 해본지가 오래 되어서, 캠핑장 풍경이 새롭기만 했다. 요즈음은 천막 가즈보는 물론 샤워장 까지 가지고 다니는 캠핑족들이 눈에 뜨인다. 남편은 몇 달 전부터 ‘짚시맨’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만 나면 트럭을 개조 하더니, 간이침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언젠가 버린 줄 알았던 크리스마스 쿠션과 조카 가 두고 간 오래된 이불을  깔아놓고, 일류 호텔이라도 되는 양 이제 잠자리 걱정은 없다고 흐뭇하게 웃고 있다. 남편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들은 이를테면 전야제 이고 우리는 이 스모키 마운틴에 캠핑을 하기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쪼그리고 앉아 궁상을 떨며 부대찌개를 끓인다며 햄을 썰고 있을 때랄지, 공용 취사장에서 쌀을 씻고 있으면 다큐 사진기자처럼 따라 다니며 쓸데없는 셔터를 수도 없이 누르고 있다. 그러곤 “ 이게 진정한 휴가” 라며 하루에 캠핑장 비 20불만 내면 이렇게 좋은 피톤치드 냄새(이럴 땐 꼭 강호동 같다)를 실컷 마시며 맑은 물소리를 들을수 있는데, 뭣 하러 복잡한 도시를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한 탁월한 선택에 엄지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엄지 척 할 만 한 것들은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수많은 반딧불이 숲속의 요정처럼 날아다니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곳곳엔  모닥불 연기가 피워 올랐다. 모닥불은 모기도 쫓을 겸 캠핑 족들이 꼭 해야 하는 필수 저녁 행사인 것 같아 우리도 통나무를 사러, 간이 미니 마켓에 갔다. 그곳에 가니 왕년에 컨츄리 가수 였을 성 싶은 할아버지 들이 빙 둘러 앉아 기타와 만돌린를 연주하며 오래된 컨츄리송을 부르고 있었다. 마켓에 물건을 사러왔던 캠핑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을 하고 있어 우리도 한 자리 껴서 올드 테네시 맨들의 노래를 들었다. 이곳은 시간이 멈추어 선 듯 어린 시절 시골 외갓집에 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오래되고 아늑했다.

문명의 이기가 없이 산다는 것, 스마트폰이 안 되고 티브이가 없고 컴퓨터가 없는 곳에서 우리는 실로 아주 오랜만에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뭐가 바쁜지 필요한 말 외에는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제대로 없는 우리들의 삶이 초라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루라도 인터넷이 안 되면 지구에 종말이 온 것처럼 구는데, 스모키 마운틴은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음날 계곡의 통나무 다리를 건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트레일을 다녀오니,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계곡에 주저앉아서 발을 담그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피서는 없을 듯하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그저 구경만 할뿐 발 담글 생각을 쉽게 못했던 콜로라도 록키 마운틴과는 달리 스모키 마운틴의 계곡은 한국의 계곡처럼 낮고 사람이 쉽게 다가 갈수 있어 친근하다. 산 중턱에 늘 안개나 구름 같은 것이 서려 있어 이름도 스모키 마운틴 인데, 언뜻 보면 동양화에 나오는 명산 같기도 하다. 그날 오후 난 찜해 놓은 케이블카로 기어이 개틀린 버그의 그저 그런 동네풍경을 감상하고, 포레스트 검프 란 식당으로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미국사람들의 상술은 참으로 놀라워서 개틀린 버그와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뭔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메뉴마다 포레스트 검프 인물들과 연관 있는 이름을 지어놓고 높은 가격을 매겨 놓았다. 소위 정서 마케팅 인 것이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는 run, forrest, run! 이란 사인을 세워두고 오더를 하고나선 다음 장으로 넘기라고 설명한다.

관광지에선 오나가나 바가지 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 그래도 테네시가 자랑하는 지방주 문샤인 (moonshine) 스토아에서 만큼은 샘플 주를 거침없이 많이 주어 관광객들이 불콰해진 얼굴로 더 많은 쇼핑을 할 수 있게끔 인심을 썼다. 지금 우리 집엔 헤이즐넛 문샤인 한 병과 테네시 엿이라 할 만한 스모키 마운틴 Taffy 가 냉장고 안에 들어있다. 후덥지근한 남부의 열기 속으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을 보기위한 각 주의 차량들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걸 보니, 오늘도 개틀린 버그는 몹시 분주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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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