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 우리 “삶”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우편물이 와 있었습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함께 당도한 것은 시집 한 권, 사무엘 울만의 “청춘” 이었습니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테마 여행”에 함께한 시인 한 분이 보내준 이 책은, 1판 발행 1998년 1월 15일. 서문에는 “울만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가족과 친지가 내준 그의 유일한 시집인 이 책에는 4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받은 이 책은 1998년 6월 22일에 18번째 생일을 맞은 어느 청춘을 위해 고3이었던 그의 친구들이 사인해서 선물했던 시집이었습니다. “우리가 정성 어린 마음으로 준비한 거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소중히 간직해.”라며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적혀 있었지요. 그들은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청춘답게 파랑, 녹색, 빨강으로 삽화까지 그려 넣고 3쪽이나 되는 책장을 모나미 볼펜으로 빼꼼하게 채웠습니다. “빛을 발하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빛나는 청춘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청춘이 있었지요. 까맣게 잊고 있었던 18번째 생일이 있었지요. 선희, 인묘, 종옥이와 함께 보낸 생일. 서산 구 시장통 보경집에서 칼국수로 저녁을 때우고 윤동주 시집에 빼꼼하게 축하 메시지를 적고 “서시”를 읊조리며 죽는 날까지 사랑과 우정을 맹세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시집 표지가 너덜거리도록 끌어안고 다니며 시인을 꿈꾸며 아팠던 시절 말입니다.    

 

 본문 첫 장, 제목 아래에 이 책을 보내준 시인의 사인을 보는 순간 떨리는 마음은 어느새 가물가물해진 “불멸의 청년, 윤동주”를 찾아 떠났던 지난 7월의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줌 렌즈 속으로 보았던 한 청춘이 생각났습니다.

 

 셋째 날이었지요. 그날의 여정은 아침 6시에 기상을 해서 15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호텔에서 출발해 연길로, 연길에서 두만강으로, 또 두만강에서 목단강으로 이어지는 긴 하루였습니다.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들처럼 들떠 있던 마음도 잠깐이었지요.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가 반복되는 통에 전날부터 조마조마했던 몇 사람이 결국 멀미를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은 잠시 주머니 속에 구겨 넣고 우리는 양꼬치와 연길 냉면으로 점심을 푸짐하게 해치우고 두만강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의 도문과 북한의 남양시 경계를 흐르는 두만강. 광장에서는 조선족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고 간간히 비가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구명조끼를 받아 입고 전동기 뗏목에 앉아 흙탕물로 흐르는 두만강 물줄기를 따라갔습니다. 두만강 건너 저 멀리 산비탈을 내려오는 자동차를 줌 렌즈로 당겨봅니다. 우뚝 솟은 산은 말이 없고 강물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일렁였지요. 강둑 늙은 고목에도 새잎이 돋는데 키만큼 자란 수풀 속의 북한 병사, 그 청춘은 고목처럼 서 있었습니다. 아니 목각 인형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에게도 빛나는 청춘이 있을까요. 뗏목을 돌려 돌아오는 길은 모터 소리가 더욱 높았습니다. 굵어진 빗방울에 간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막걸리를 받아 놓고 안주로 사 온 명태를 패는데 내가 왜 아팠을까요. 흙빛 강물만치나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에 취기가 돌아 코끝이 저렸습니다. 아들 같은 병사에게 손 한 번 흔들어 인사도 못 한 시인들은 못내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목단강으로 이동하는 길에 가야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가야하”는 조선족들이 중국에 정착하면서 “북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면서 한숨을 지었다 해서 가야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야하를 지나 북강 부근에 있는 탈북자 교도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탈북하다 잡힌 사람들이 한 달간 그곳에서 온갖 고문을 받고 북으로 보내진다고 합니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견디고 있었습니다. 

 무반주로 조별 노래자랑이 시작되었지요. 어디를 가나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는 이것만큼 좋은 게 없지요. 각 조장의 심사로 2조 대표로 출전한 이승구 님과 내가 1등을 했지요. 그것도 잠시 목적지까지는 아직 두세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데 칠흑 풍경. 가로등 하나 없는, 불빛이라고는 버스 헤드라이트가 다였지요. 늦은 저녁을 하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법. 조마다 남아있는 술이랑 안주를 가지고 우리 조 총무의 방으로 집결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배정받은 방의 에어컨 고장으로 스위트 룸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이 틀 때까지 청춘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3박 4일의 여정을 마치고 달라스로 돌아오기 이틀 전 2조 후기 모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지인과 약속한 그 시간이라니. 어쩔 수 없이 늦게라도 합류할 수 있기만을 바랐지요. 9명 중에 두 명이 빠지고 7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숙소로 가던 택시를 돌려 달려갔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아낌없이 반겨줬습니다. 멀미로 고생해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겠다 싶었던 시인도 환한 모습으로 반겨주니 더 좋았습니다. 마지막 잔을 들어 “다시 청춘”을 외치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품절이 된 “청춘” 시집이 날라온 것입니다. 2조 후기 모임을 하고 오만 원이 남아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중고 책방을 뒤졌답니다. 2조 전체에게 “청춘”을 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었지요.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를 쓴 때가 78세였다고 합니다. 그가 말했듯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말한다.”는 사실을 다시 가슴에 새기며 돌려받은 나의 청춘을 위해 “화이팅!”을 외쳐봅니다.   

 

 

아니

낮고 편편한 일상에

우표 없이 날아든 떨리는 밀서이지

 

아니

늘어진 그림자를 태우는

정오의 태양이지 

 

아니

세월의 추신들을 뒤적이다 보면

맨발로 달려와 등줄기 곧추세워주는

덧난 곳에 피딱지 앉히는 긴장이지

 

아니

굵고 단단한 붉은 영혼을 펄럭이는 

깃발이지

 

아니

직선으로 그려진 부적이지

 

 -김미희, (다시, 청춘)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