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21세기, 닭들의 운명

2017.08.3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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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혜자의 세상 엿보기]

 

21세기, 닭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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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즌에 59센트 인 ALDI의 달걀을 삶으며, 살충제에 시달리고 진드기에 뜯기다 운명을 달리한 수 많은 닭들을 생각해 보았다. 달걀을 사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에 달걀이 판매 될 수 있는가를 의심해보다, 케이지 프리에, 무공해 상표가 붙은 달걀 1 다즌 가격을 생각하면 저가 유혹에 쉽게 손이 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한국 뉴스를 보면서 충격스러웠던 점은 닭 한 마리가 공유하는 면적이 A4 용지 사분의 삼 사이즈이고, 그곳에서 환한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 공장의 기계처럼 하루 종일 서서 모이를 먹고 죽도록 알을 낳다 고작 일 년 몇 개월을 살다 간다는 닭들의 운명이었다. 닭들은 언젠가부터 인간들을 위하여, 알 낳는 기계로 전락하고 우리는 필요이상의 달걀을 소비하며 그들의 참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대량생산을 진보된 산업혁명쯤으로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린시절 달걀 프라이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보통 날은 쉽게 먹을수 도 없었고 어쩌다 달걀 몇 개가 생기면 아버지나 오빠 상에 오르기 일쑤였다. 친구 중에 날마다 달걀프라이를 도시락 밥 위에 얹어 오는 애는 선택받은 애였고 자그마한 부의 상징이기 까지 했다. 그러던 것이 중학생 쯤 되었을때는 심심잖게 오르는 도시락 반찬의 주 메뉴가 되었다. 그때부터 달걀은 귀족에서 평민으로 신분 절하가 되면서 흔해 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달걀 없는 아침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모든 가정의 필수 장보기 아이템이 되었다.

 

근대 이후 공장은 단지 생산 공장에서만이 아니라, 푸코가 말한 병원, 가족과 소비 등 전 사회로 확장되었다. 사회 자체가 생산과 규율의 거대한 공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며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한다. 90년대를 전후로 물 밀 듯이 들어온 중국제 달러 상품들과, 미친 듯이 대량소비에 열을 올리던 선진국 미국사람들의 모습을 난 기억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면 모든 백화점이나 장난감 가게, 월마트의 진열장 선반이 텅텅 비었다. 사람들은 꼭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샤핑 이라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많이 가지기 위해 사는 삶의 가치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뭐든지 너무 흔한 나라 미국에서, 이런 풍요를 당연히 받아들이며, 아프리카나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 반문해본다. 이런 면에서 닭들은 신인류가 만들어낸 산업혁명의 가장 대표적인 희생물인지 모른다. 닭들뿐만 아니라 대량생산에 동원되고 있는 모든 생물과 동물들이 그렇다.

 

예전 시골농가 에선 온 마당을 초토화 시키면서 자유롭게 뛰어놀던 닭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닭들처럼 엄마 닭을 졸졸졸 따라 다니던 병아리들과, 한 성질 하던 수탉이 온 동네를 깨우던 시절, 닭들은 그들 고유의 서사와 스토리를 가진, 인간과 가장 친하고 퍽 유익한 동물 가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닭에 대한 속담이나 명언들도 무척 많았는데 좋은 예도 있지만, ‘닭대가리’처럼 닭을 아주 폄하하는 속언도 더러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닭은 무척 영리한 동물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라는 잡지에 따르면 닭은 24가지 울음소리로 서로 소통하며, 다른 포유류나 영장류동물과 비슷한 사고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닭들은 시간 차이를 알고 있으며, 간단한 숫자개념도 있어 병아리 수를 안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주부들이 달걀을 구입할 때 달걀표면에 찍혀진 난각코드(달걀 껍데기에 적힌 식별번호)를 보고,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를 확인하고 구입을 한다고 한다. 우습게도 친 환경 인증 농장에서 나온 달걀들이 문제가 더 많아, 정부의 공신력도 믿을수 없어진 주부들이 스스로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들은 가족의 건강을 염려할 뿐 아니라, 그 물건의 출처와 그 물건을 만들어낸 생명들 까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일 것이다. 해마다 수많은 닭들의 학살이 반복되는 지금, 닭을 알 낳는 기계나 식용으로만 생각하는 무심한 소비자에서 한 번쯤은 그들의 일생을 반추해보고 싶다. 닭이 동물이 아닌 상품으로 분류되며 일회용 소모품으로 쉽게 버려지는 세상, 그들도 인지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한 번쯤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생명을 경시하는 미래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작은 바램들이, 세상을 바꿀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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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