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수자 칼럼]

 

제25화 알렉산더와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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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웅 열전에 제일 앞장서는 사람이 알렉산더(Alexander III Magnus BC356-323)대왕이다. (비교:한니발 BC247-183, 초패왕 항우 BC232-202, 씨저 BC100, 관우, 장비 AD200, 담덕 광개토대왕 AD375)

알렉산더는 고대 그리스 북부의 왕국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2세와 그의 네 번째 부인 올림피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대 그리스 전기 작가 플루다크 (Plutaechos AD 46~120)에 따르면 올림피아는 결혼 첫 날밤 천둥 번개가 그녀의 배를 관통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며 필립왕은 올림피아의 침실에서 큰 뱀을 보았다고 한다. 알렉산더의 신비스런 출생 이야기이다.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2세가 암살당하자 2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고 치세 기간 대부분을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군사 정복 활동으로 보냈다. 30세가 되었을 때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에까지 확장되었다. 그에게는 탄생부터 사망까지 수많은 일화가 따른다. 오랜 시간 속에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고, 과장된 이야기도 있고, 사실 또는 사실이기를 바라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 그는 한참 과거 인물이지만 젊은 나이에 죽어서인지 늘 청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명마 브케팔스: 알렉산더가 열 살이 되던 해 어떤 상인이 왕에게 비싼 말 한 마리를 가져왔다. 마케도니아에서 제일의 명마(名馬)라는 명성과 달리 왕 앞에서 까닭 없이 길길이 뛰었다. 마술(馬術)꾼이 난처해하며 말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왕이 실망하여 말을 가져가라고 했는데 이때 알렉산더가 그 말을 갖겠다고 나섰다. 알렉산더가 그 말을 보니 뭔가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말은 자신의 그림자에 놀라 뛰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말에 다가가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고삐를 잡고 태양을 향하게 했다. 그림자가 일순 사라졌다. 말이 금방 순해졌다. 이 모습을 본 필립 왕은 흡족하여 말했다. “오-라, 내 아들아! 너의 왕국은 크고 풍요로우리라. 마케도니아는 네게 너무 작은 왕국이니라."고 했단다. 알렉산더는 그 말에게 브케팔스(황소의 머리라는 뜻)라는 이름을 부쳐주었다. 브케팔스는 알렉산더와 더불어 전장을 누비며 명마의 명성을 떨쳤다. 브케팔스는 30년을 살았고 알랙산더 사후 1년을 더 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한 알렉산더는 세계 역사에 나타난 가장 극적인 인물의 하나였다. ‘Alexander 3세’, ‘Alexander the Great’, ‘Alexander of Macedonia’, ‘King of Macedonia’ 등으로 불리우는 그는 왕자로 태어난 데다가 세기의 철인(哲人)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그는 서양 학문의 시원(始原)을 이루는 사람이 아닌가. 알렉산더는 13살부터 16살까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웠다. 그는 호머의 <일리어드 오딧세이>를 늘 지니고 다녔다고 하며 그가 이끄는 군대에는 생물학자, 과학자, 공보관 등이 따랐는데 알렉산더의 이런 탐구심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땀 흘리는 목상 오르페우스: 알렉산더가 첫 출전 하려던 전야(前夜)에 신전에 있는 시와 음악의 신인 오르페우스의 목조(木彫) 상이 땀을 쏟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의 놀라운 공적을 기록하는데 시인들이 땀을 흘리게 되리라는 상징이었다. 신전에 있는 오르페우스의 목상이 땀을 흘리다니. 오르페우스마저도 알렉산더의 치적을 다 그려내지 못할 것이라는, 그래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대단한 메타포였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 소아시아 프리지아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고, 그 전차에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매듭이 달려 있었다.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그 매듭을 풀 수 있다는 전설 속의 매듭이었다. 마침 그 지역을 지나가던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보고는 두말없이 한 칼로 베어 매듭을 끊어버렸다. 과감한 결단을 말하는 것으로 컬럼버스의 달걀과 함께 세상에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위대한 군사전략가인 알렉산더가 정복전쟁에 나설 때는 치밀한 전략을 짠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략이 완벽하다싶을 때까지 몇날 며칠 밤을 새우는 게 보통이었는데, 전략이 완벽하다고 생각 되었을 때 비로소 잠이 들었다. 한번 잠이 들면 하루나 이틀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전장에 하얀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나아갔다. 적에게 쉽게 타겟이 되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군대 뒷전에서 지휘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선두에 있었다. 그는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 전략가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나는 두려움을 모른다”고 말 한 알렉산더는 자신이 제우스신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 인근 도시국가를 정벌하고 남하하여 이집트를 쳐들어갔다. 그는 이집트의 페르시아인을 축출하고 이집트 델타 지대의 서쪽에 있는 항구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을 부쳤다. 이어서 바빌론을 점령하고 동쪽으로 계속 전진하여 페르시아의 핵심부를 점거하였다. 마침내 숙적이던 다리우스 3세를 제거하고 페르시아의 왕을 겸하였다. 그는 멈추지 않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지금의 아프카니스탄을 지나고, 더욱 남하하여 인더스 강까지, 마침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알렉산더의 군대가 인도의 인더스 강까지 갔을 때는 군대는 쇠진하였고 더위와 우기로 진퇴양난의 형편이 되었다. 오랜 전쟁과 객지생활은 군인들과 알렉산더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인도에서 바빌론으로 돌아온 뒤 알렉산더는 일종의 열병에 걸려서 BC 323년 33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사학자들은 알렉산더의 요절은 신이 준 행운의 선물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단시일에 이룩된 제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정벌보다 더 큰 난관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사후 알렉산더 제국은 갈라지고 이때부터 헬레니즘(희랍문명)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헬레니즘 문명을 세계에 퍼뜨린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다. (다음 광개토대왕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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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재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