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모하비 사막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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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 살면서 사막으로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올해도 기다리던 미주문협 여름 문학 캠프의 초대장이 날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캠프 다음 날 사막으로 떠나는 2박 3일 여행에도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신기루도 좇아보고 사막여우도 찾아 헤매고 싶었나 봅니다. 사막은 내 문학의 성지이지요. 두 번째 가는 그랜드 캐년이지만 노스 림으로 가서 하이킹 다운을 할 수 있다는 일정표에 남편까지 합세했습니다. 카메라, 렌즈 등을 챙기느라 큰 가방에서 작은 가방으로 또다시 큰 가방으로 결정을 못 하고 끙끙거리는 남편을 훈수 두느라 한 시간 정도 겨우 눈을 붙이고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 첫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몇 년을 참석하다 보니 낯익은 사람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자리 잡은 둥근 테이블은 미주문학 장르별 신인상 수상자들과 필라델피아에서 버스를 타고 일주일 걸려 도착했다는 소설가로 열 명이 다 채워졌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니 서먹했던 분위기는 이내 충전되었지요. 그들과 그 자리에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했지만 김승희 시인과 김종회 평론가의 열띤 강연은 시들해져 가던 문학에 대한 내 짝사랑에 다시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열 시간에 걸친 꽉 찬 문학 캠프는 내년을 기약하고 성황리에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날 준비된 이동 차량으로 모하비 사막을 지나 라스 베가스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현란했던 밤과는 달리 어색하리만치 조용한 라스 베가스의 아침을 뒤로하고 우리는 그랜드 캐년 노스 림을 향해 모하비 사막을 또 달리고 있었습니다. 모하비 사막은 15번 국도를 따라 캘리포니아주 남동부를 중심으로 유타주, 네바다주, 애리조나주를 고루 걸치고 있는 고지대 사막이라지요.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을 달려가면서 나는 왜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양다리로 모자라 양팔까지 벌려 네 개 주에 걸치고 있는 모하비 사막을 지나가노라니, 기어코 내 조국과 이국땅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야 하는 나의 운명이 새삼 왜 떠올랐을까요. 삼십여 년 전 휴스턴 인터콘티넨털 공항 문을 열고 나오자 훅 달려들던 6월의 텍사스 열기가 생각나서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서부영화에서나 보았던 그 회전초tumbleweed가, 사막에 뿌리내리러 온 그날 그 순간에 내 가슴을 ‘쿵’치고 굴러가던 그 풀무덤이, 지금 차창 밖에서 내 눈길을 잡아당겨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뿌리째 몸을 둥글게 말아 모래바람에 굴러야만 씨앗을 남긴다는 그 회전초가 꼭 나를 닮아서일까요.
 사막에서는 움직이는 모래가 제일 무섭다지요. 그 모래 위에 피는 작은 꽃은 흔들리지 않으려 몸을 낮추고 무리 지어 피어 있었습니다. 뿌리째 말아 굴러다니는 회전초의 길이 되어 주고 있었습니다. 가는 내내 새털구름이 옆구리를 긁었습니다. 간간이 유년 시절 달력에서 보았던 초원도 있었습니다. 블랙 앵거스 목장도 있었습니다.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은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전나무가 키재기라도 하는 듯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른 듯 흙탕물 흐르는 도랑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막을 지나 곧고 바른길 끝에는 바위산이 있었지요. 말 없는 웅장한 대자연 앞에 서니 섬뜩해지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달려왔을까.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모래밭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달렸을까. 허망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민자로 산 세월이 삼십여 년이건만 여전히 사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펄펄 끓는 흙바람 속을, 한낮을 더 달려야 하나 봅니다. 등을 낮춰야 하고 몸을 말아 굴러야 하나 봅니다.


 어느새 초록 바람이 불어와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잘 익은 노을이 바위처럼 우뚝 서 있었지요. 어둠이 깔린 모하비 사막을 다시 지나자 위로라도 하듯 불바다를 만들어 환영식 준비를 마친 라스 베가스가 Welcome! 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황량하고 거친 사막에 인간의 힘으로 일구어낸 환락의 도시, 씬씨티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습기 없는 땅에도 피는 꽃은 있었습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잊고 있었던 옛 정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입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잃어버렸을 삶의 이유를 찾으러 가는 길이라면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식어버린 날엔 버스를 타는 겁니다. 길동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여럿이 떠나는 여행은 온몸을 설레게 하지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로 너나없이 행복에 차 있으니까요. 스스로 계획하고 길을 나서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가 정해 놓은 일정표대로 움직이면 마음이 여유로워 좋습니다. 편하게 이동하며 먹여주고 재워주고 좋은 곳 안내해주는 가이드가 여행길에서라도 동행한다면 숨 막히는 현실에 신바람 나는 일이지요.     
 

 

곧고 반듯한 길 끝에

바위산이 버텨 있고

새털구름 간간이 옆구리를 갉아대도

뚫린 듯 막힌,

막힌 듯 뚫린 길은 여전히 달리고 있다

벌써부터

 

움직이는 모래 위에 피는 꽃은

흔들리지 않으려 때로는 등을 낮추고

그늘이 필요해서가 아니라며

뿌리째 둥글게 몸을 말아 구르는 이유를 내놓고

종자를 퍼뜨리고 있는 회전초tumbleweed의

달리는 길이 되어준다

 

그렇게 펄펄 끓는 흙바람 속 한낮을 달려야 하는 일에 대해

왜냐고 물을 수 없는 초록 바람은 사선으로 비껴가도

작은 풀꽃은 무리 지어 피어나

그래서 길은 또 열리는 것

 

은사시나무 흰 이파리들은

남겨져 있는 시간의 한계를 알리느라 분주해 있고

집으로 가는 길 끝에 놓인 바위산이

신기루가 허락되는 모하비 사막에서는

잘 익은 노을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 보통이니

길도 가끔은 바위처럼 우뚝 서는 것이

허다한 일이기도 하니까

길은 닫힌 듯 뚫리고 있는 것 분명한 일이다

 

 김미희, (모하비 사막을 달리는 것)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