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IRBM ‘화성-12형’과 향수(鄕愁)

 

 요즘 내 작은 방의 손님들은 한국의 내 가족들 안부로 첫인사를 대신한다. “북한주민이 1년 이상 먹을 양식살 수 있는 돈을 미사일 발사로 쓰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김정은”에 대해 물으며, “북한과 미국의 ‘두 크레이지’중에 북한의 로켓맨(김정은)이 머리가 더 좋은 것 같다.”고 하니 기도부탁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67주년이며 28일은 서울수복 기념일이다.
“합동참모본부에 의하면 북한이 15일 오전 6시 57분쯤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발사한 IRBM ‘화성-12형’은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한 뒤 북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 
방향을 남쪽으로 틀었다면 북한이 지난달 8일 전략군 대변인을 통해 포위 사격하겠다고 위협한 괌을 지나치고도 남는 거리라고 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출범 이후에만 1차례 핵실험과 10차례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감행했다.”고 뉴스는 전한다. 

 하필이면 왜 9월 15일이었을까? 할아버지 김일성의 실수를 미사일로 풀었다고 자축했을까? 한반도의 최남단만 남겨진 때에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김일성에게도 흘러들어갔지만 있을 수 없는 일(태풍, 등)이라고 일축한 후 정예군을 낙동강 전선에 투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6.25전쟁 발발 3일 만에 내주었던 서울을 3개월만인 9월 28일 수복하게 되었다. 
문화일보에 의하면 돌격소대장으로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이서근(95) 옹은 “북한의 기습도발로 발발한 한국전쟁의 판도를 일거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은 세계전쟁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전투였습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날의 기억을 후손들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라며 당시 서울 탈환의 선봉에서 참혹했던 전쟁의 생생한 기억을 전했다. 
인천에 상륙해 처음 마주한 모습이 거리에 수북이 쌓인 시체더미였다고 했다. 국군이 온다는 소식에 태극기를 들고 반갑게 마중 나온 시민들이 도망가던 북한군에 무참하게 학살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던 당시, 철도경찰이었던 아버지는 안동으로 전근되었다.
이사를 돕기 위해 오셨던 외할머니는 서울의 아들 걱정에 남하하는 피난민들과 인민군을 피해 거꾸로 가시다가, 길이 막히고 다치고 상거지가 되어 돌아오셨다고 했다. 수복되자마자 외삼촌을 찾으러 공덕동의 고반서(파출소)에 가셨는데 부패되는 시신들이 동산만큼 쌓인데서 얼굴을 확인하며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도 무서운 줄도 몰랐다고 몸서리를 치셨다. 6.25 전쟁 때 미처 피난가지 못한 3개월의 서울생활과 여섯 차례(위키백과 참조)나 뺏기고 뺏던 서울전투에서 1951년 4월 UN군의 서울 재 수복을 마지막으로 겪으며 남은 사람들, 특히 예술인들에게는 죽음보다 못한 세월이었으리라. 
해방직전 일본의 수탈과 만행의 막바지에 가족 때문에 친일로, 또 공산치하에서 부역으로, 월북과 납북의 후유증을 지금도 앓고 있는 대한민국과 후손들. 

 특히 월북 작가로 낙인 찍혔다가 해금된  정지용(세례명-프란치스코) 시인의 아픈 가족이야기를 손님에게 들려주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피난가지 못하고 있다가 정치보위부로 끌려갔다. 김기림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는데 평양감옥으로 이관되는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2001년 8.15 평양축전에 참석했던 남한의 한시인은 북한문학평론가로부터 “정시인이 북으로 후퇴하던 중에 비행기폭격으로 숨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의 아들 딸들도 남과 북으로 갈라 사는 아픔을 겪고 있다. 지난 2001년 제3차 남북이산가족 단체상봉을 통해 남한에서 살고 있는 시인의 아들은 북에 살고 있는 두 동생(당시68, 66세)을 서울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했다.(2004 Radio Free Asia기사 요약)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는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노래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시를 번역할 수 있는 실력은 못되니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로 함께 들었다. 
일본의 억압 속에 살면서 어린 시절에는 가난했지만 욕심 없이, 일하며 순박하고 평화롭게 살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노래. 우리 또래 한국인의 마음속에 각인된 전형적인 고향의 모습이다. 이제 얼마 후면 우리 한민족의 고유명절인 추석! 
보름달만이라도 남과 북에 골고루 더 환하게 비추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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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사모<시인.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