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숨을 고르는 시간

2017.10.05 16:42

KTN_design 조회 수:123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숨을 고르는 시간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기분으로 눈을 떴습니다. 밤새 악몽에라도 시달린 사람처럼 기운이 없습니다. 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본 사람처럼 혼이 나간 것 같습니다. 마루에 양다리를 세우고 앉았습니다. 버려진 사람 같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잊히는 건 아닌가 봅니다. 언제부턴가 마주하면 아플 것 같은 것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더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더 깊게 뿌리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서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밤사이 내린 이슬이 사라지기 전에 공원길이라도 걷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나와 왼쪽으로 두 번 돌고 세 번째 길에서 오른쪽으로 틀면서 마주쳤습니다. 길옆에 작은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열 개쯤 되는 꽃다발이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모두 이슬 강보에 싸여 있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가지 못하고 서성거리다 밤을 지새운 모양입니다. 어떤 것은 많이 시들해져 있었고 어떤 것은 그저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꽤 품이 넓어 보이는 가로수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찢긴 상처를 보니 시간이 좀 흐른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가슴 아픈 사고 현장임에 분명합니다. 누구였을까요. 우레같은 통곡이 들리는 듯합니다. 누군가가 몰아쉬던 마지막 숨을 지켜보며 나무는 또 얼마나 아팠을까요. 갑자기 찬 기운이 몸을 감싸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공원 근처 고등학교 건물 옆에 차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발소리를 들으며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온갖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폭염과 폭풍우를 견딘 가을 소리들이 뒤를 따라 왔습니다. 왼쪽 길옆 철조망 너머에는 잘 가꾼 골프장이 야트막한 능선을 끼고 굽이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환한 햇살이 내려와 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뒤편에 있는 공원이라서인지 넓은 잔디밭에는 축구 골대가 세워져 있고 제법 큰 연못이 있습니다. 두 개의 분수가 씩씩하게 물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벤치가 있습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연못을 바라볼 수 있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물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민 거북이들이 두리번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바람도 고요하고 낮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스치는 바람 소리, 그 숨소리가 아프고 무덥던 지난 계절을 씻고 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일로 인해 꽉 막혔던 숨을 틔우고 있습니다. 한 무더기의 노란색 보라색 가을 국화가 동시에 몸을 뒤척입니다. 수수한 표정으로 향기만 그윽합니다.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겠지요. 하지만 두둥실 떠다니는 꽃구름에 홀려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요.

 

 추석입니다. 엄마가 없는 추석입니다. 서둘러 큰 오빠네로 달려갑니다. 엄마 가신지도 일곱 달이 지났습니다. 가게 문을 닫기가 무섭게 병원으로 달려가던 일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적막보다 더 고요하게 저물어가던 엄마의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데 말입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살아질 것 같지 않았는데 잘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요일마다 묘소를 찾아가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지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엄마 보고 싶다며 보내오던 큰 오빠의 카톡도 줄었습니다. 항상 열어놓은 대문을 밀고 “엄마!”하고 들어서면 반가워 어쩔줄 몰라 하던 엄마가 안 보이니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음식 냄새 가득하지만, 음식을 장만하느라 발그랗게 익은 엄마의 얼굴이 그곳에 없어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지 일찍 여의시고 이때까지 엄마가 손수 제상을 차리셨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와 나란히 오셔서 제상을 받으시겠지요. 쉰넷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서 엄마의 영정사진은 칠순 잔치 때 찍은 사진으로 정했습니다. 보라색 깨끼저고리 챙겨 입고 사십 년만에 두 분이 함께 나들이 나오시겠지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얼굴은 조금은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희끗희끗 반백을 한 오빠들은 가을 나무 같습니다. 지리한 여름을 견딘 나무처럼 덤덤한 모습입니다. 벌레 먹은 이파리 같은 얼굴이지만 평화로워 보입니다. 얼마 전에 큰딸을 시집보낸 언니는 결혼식 영상을 켜놓고 국화처럼 웃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한 결혼이라 참석할 수가 없었지요. 이민 오기 전에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누구누구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영상 속의 친척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얘기해 주는 언니의 표정은 활짝 핀 가을꽃입니다. 건강하시던 엄마를 불현듯 보내고 슬픔이 전염될까 봐 눈도 못 맞추던 가족들이 이젠 눈을 맞추며 서로의 안부를 챙깁니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숨 고르고 보자기에 싸서 밀쳐두었던 내 안의 것들과 만나 화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소리

고요보다 더 낮게 흐르는 시간 나눠 마시며

함박꽃 피운 적 있네

 

목구멍 언저리 간신히 돌아

길게 휘어지던 신음으로

늑골 텅텅 울리며 터져 나와

음습한 울음으로

목울대 세워본 적 있네

 

어느 간이역을 지나는 걸까

끊일 듯 이어지며 덜컹거리는 저 소리

칸칸마다 채워졌던 짐 부리며

헐거워지고 있는데

 

늦가을 저녁

졸아들던 별 반짝

몸 뒤척이고 있네

 

-김미희, (숨) 전문-

 

11111WWWWW.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