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y)

 

언니네 가게에서 캐시어로 일했던 크리스틴은 이제 채 스무 살이 안 되는데 집을 나와 남자친구와 동거중이다. 차가 없어 레즈비언 엄마가 출퇴근을 시켜 주었는데, 달러 스토아에서 일하던 잭이란 남자애를 알게 되었다. 잭은 할머니와 부잣집 메이드 인 엄마와 함께 좁고 냄새나는 트레일러하우스에서 산다. 


잭에게는 이제 세 살된 딸이 있는데, 전 여친의 딸이다. 처음에 잭은 자신의 딸 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 전 여친은 마약사범으로 지금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한때는 잭도 마약복용을 했다. 그런 사연을 들은 탓 인지 가끔 크리스틴 에게도 마리화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온 팔에 문신을 새긴 잭은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어, 늘 시간당 최저임금 잡을 전전하다 잘리기 일쑤이다. 게다가 크리스틴 역시 걸핏하면 지각을 하거나 예고 없이 결근을 하고, 근무 태도 도 불량하기 그지없어, 결국은 언니네 가게에서도 쫓겨났다. 흑백 혼혈이지만 언뜻 보면 백인 같은 크리스틴과 그녀의 백인 남자친구 잭은 이른 바 힐빌리의 전형이다. 

 

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 외 지역에 관계없이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말로는 와이트 트래시,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데서 유래된 교육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백인을 가리키는 ‘레드 넥’이란 단어도 있다.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힐빌리의 노래> 저자 J D 밴스는 스스로를 힐빌리라고 칭한다. 저자 역시 오하이오 철강도시 미틀타운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엄마는 저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약물중독자 였고, 아버지 얼굴은 본적도 없는데 다행히도 외조부모가 그를 거두어 키웠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정신적 물질적, 문화적으로 얼마나 소외를 받고 있으며, 그 생활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자신과 같이 자란 힐빌리들의 미래는 운이 좋으면 복지의 여왕(welfare queen)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 한다. 미국에서 자살률과 약물중독이 백인 하층민에게 유독 많은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믿는다. 
미국의 주류지배 계급인 와스프 (WASP) 와 정 대칭에 있는 힐빌리들은 같은 백인 이지만, 삶의 형태는 극과 극을 달린다. 

J.D. 밴스는 자신이 힐빌리 중에서는 드물게 대학에 진학하여 예일 로스쿨을 나온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미국의 보통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안정된 직장과 행복한 가정, 안락한 집과 두 마리의 반려견이 있는 생활, 아메리칸 드림 이라고 까지 말 할 것도 없는 이 소박한 삶이 힐빌리들에게는 성공 신화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힐빌리들은 안정된 가정에서 성장을 하지 못하기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고졸이나 고졸 중퇴의 학력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뻔해서, 시간 당 최저임금을 받는 패스트푸드 점이나 노동일이다. 그 마저도 성실하면 다행이지만, 그들은 웬만하면 실업수당 타먹을 궁리부터 한다. 그러다 보니, 빈곤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이를 보고 자란 후손들에게 까지 대물림된다. 이 악순환을  밴스는 군 입대에서 자율을 배우고 교육으로 극복했다. 본인이 하고자 하니 제도에서 뒷받침 해 준 것도 있었고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행운이라고 했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그를 곁에서 지켜준 누나와 외조모부이다.


부자들에게 가난은 경제지표에 나온 수치일지 모르지만, 힐빌리들에게 가난은 생활이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라스베가스 총격사건의 주인공 스티븐 패덕은 수백만 달러를 가지고 있던 자산가 였다. 이 사건의 범행동기를 추적 중이던 경찰은 결국은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고 추측을 했는데, 스티븐 패덕은 어쩌면 정신적 힐빌리 였는지 모른다. 고립된 상황에서 그는 가난한 힐빌리 보다 더 위험했다. 총기를 마음껏 구매 할 수 있는 경제력이 결국은 수많은 관중들을 죽음으로 더 몰아넣었다. 스티븐 패덕처럼 악은 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어쩌면 우리의 무관심과 극단적 이기주의가 ‘외로운 늑대’ 들을 계속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세상, 위기의 가정과 희망의 부재, 목적 없는 삶들이 넘쳐날 때 힐빌리들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피하지 않고 관찰하고 질문하면서 매 순간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놓치지 않아야겠다. 이제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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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