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

노총각 장가보내기  

 

오래 전 건설 회사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그때 직원 중에는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노총각 미스터 김 있었다. 그는 곁에 오면 정말 노총각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긴 긴 멀끔한 친구가 목욕도 제대로 안 하고 속옷도 제 때에 안 갈아입는지, 그에게선 묵은 빨래를 삶을 때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특히 그의 옆 자리 부근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그가 미안해할까 봐 내색도 못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코만 씰룩거리곤 했다. 보기엔 그것도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지만, 정말이지 백보를 양보해서 여기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그는 옆 직원들이 지독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끙끙거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툭하면 코딱지를 손톱으로 파서 손가락으로 공중에 내 튕기는 묘한 버릇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런 때 여직원들은 눈을 흘기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느라고 애를 끓이곤 했다. 

 

 “뭐 저런 인간이 있어! 저거 장가나 가겠어?” 여직원들이 쑥덕거려도 그는 아랑곳이 없었다.  이런 주제에도 그는 여직원들이 주간지나 만화 같은 걸 보고 있으면 심드렁하게 빗대놓고 이렇게 얘기했다. “수준은 어딜 가도 못 속이지, 저질이여!” 빈정대곤 했다. 총무과 고참인 순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 ‘앗씨요, 자기 수준이나 걱정하고 빨리 장가나 가셔!’ 하면서 웃어넘기곤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시집갈 약혼자가 있어 곧 퇴직할 마당이고, 그가 좀 가엾어 뵈기도 해서 그나마 잘 챙겨주는 편이었다. 그러니 딴 여직원들은 고참인 그녀의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 그를 비난하지도 못했다. 대신 저놈 사람 좀 되게 ‘장가보내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얼마 안 있어 그나마 편들어주던 순자가 정말 퇴직을 하고 대신 신입사원인 미스 왕이 총무과로 오고 나서였다. 그녀는 미스터 김이 얼마나 징글징글한 작자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순자가 그만두자 여직원들은 적극적으로 미스터 김 ‘장가보내기’ 내기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다들 부(不)쪽에 돈을 걸었기에 직원들은 신입인 미스 왕을 내세워 ‘넌 찬성표 던졌던 순자 언니 후임이니 미스터 김이 장가를 간다’는 쪽에 함께 표를 던져야 한다고 몰아세워서 가까스로 내기를 성립시켰다. 


그 후 몇 차례 그가 맞선을 본다는 등 아슬아슬 고비도 있었지만, 불행히 그와 결혼을 해서 신세를 조질 만큼 눈이 먼 여자는 없었다. 한번은 미스터 김이 자기 친구랑 제 결혼문제를 전화로 얘기하는데, 아마 저 쪽에서 늬 회사에 아가씨가 많지 않느냐, 그러니 먼데 보다 가까운 데서 찾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그는 주변 여직원들을 둘러보며 글쎄 이렇게 말했었다.


“응, 여기 있는 것들 다 볼일 없어. 자유분방하고, 박호순이고, 옥떨메고, 천연기념물이고, 막 생기고...” 여기까지 듣고 있던 여직원들은 정말 더는 못 참고 우르르 일어나 우우...커다랗게 비아냥 ‘쫑코’를 주었지만, 그래도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눈도 깜짝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해 가을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미스터 김이 전에 하던 버릇대로 코딱지를 파서 튕기고 있었다. 그사이 대충 그를 파악한 미스 왕은 그게 못마땅해서 눈을 잔뜩 흘기며 그를 노려보고 있는데, 마침 그가 튕긴 코딱지가 하필이면 미스 왕의 얼굴에 그만 철썩 날아와 붙었던 것이었다.


 “어머, 이게 뭐야, 아이 드러!” 미스 왕이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서 팔팔 뛰며 전에 없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미스터 김, 빨리 이리 오지 못 해!” 
 직원들은 정말이지 미스 왕의 입에서 나온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미스 왕은 나이가 근 열 살 정도나 많은 미스터 김을, 대리가 안 됐으니 ‘대리님’이라고 부를 순 없으니까 순자가 퇴직 후에는 ‘앗씨’보다 ‘김 선생님’이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스터 김이라니! 그런데 조금 후 참으로 믿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그 뻣뻣하던 미스터 김이 큰 죄를 진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채 미안한 표정으로 미스 왕 앞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사람 꼴이 이 모양이니까, 내가 내기에 지게 생겼잖아요.” / “무슨...?” 


 꼴에 잘난 척만 하던 미스터 김은 이 말의 뜻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미스 왕이 계속했다.


 “오늘 집에 가면 당장 목욕하고 속옷 갈아 입어욧! 냄새가 나서 참을 수가 없잖아욧”


 세상에 참 별일도 다 있지, 글쎄 천하의 문제아 미스터 김이, 나이 어린 미스 왕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끄덕 하질 않는가. 미스 왕은 팔짱을 끼고 또 다시 말했다.


 “내일부턴 코딱지를 절대로 파지 마세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기에 이기고 말겠어요. 알았어요?” 미스터 김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총무과 직원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또 시원하기도 해서 일제히 일어나 커다랗게 박수를 쳤다.


 그 후로 미스 왕은 아주 작심을 한 듯이 자기가 결코 내기에 지지 않으려는 듯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 전화를 해서 시집 못 간 노처녀들을 그와 맞선을 보게 해 줬다. 그러나 그 작자는 예상대로 고소하게도 번번이 딱지를 맞았다. 한번은 미스 왕이 그자에게 자기 친구 언니를 소개해 줬는데, 글쎄 그 이튿날 그 친구가 미스 왕한테 찾아와, 우리 언니를 뭘로 보고 그런 사람을 소개해줬느냐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미스 왕이 점심시간에 친구한테 욕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미스터 김에게 화풀이를 했다.

 

 “친구 언니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미스터 김이 ET 같대요.”

 

 “응? 그렇게 내가  ET만큼 인기가 있대?” 

 

“흥, 인기 좋아하네! 그래서 내가 그래도 ET 새낀 귀여울 거라구 그랬어요.”

 

 “미스 왕은 내가 그렇게 귀여워?”  

 

그러자 미스 왕은 기가 막혀 옆자리 여직원들을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언니, 이 남자 물 좀 떠다 먹여요.” 했었다.


 하여튼 어떻게 된 일인지, 여직원들 앞에선 그렇게 지랄 같던 미스터 김이, 미스 왕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처럼 쩔쩔 매고 있었다. 말하자면 매사에 미스 왕은 그의 ‘킬러’ 같았다. 또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요즘 그의 외모가 차차 말끔해지고 있었다.


 내기 시한인 연말이 다가왔다. 내기는 이미 판가름이 난 것 같았다. 그런데도 미스 왕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중매를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옆 자리에 그를 불러다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깐, 자 말해 봐요, 어떤 여자가 좋아요?  내가 그런 여잘 찾아볼께요.”


 “정말?” 

 

“그럼요, 빨리빨리.” 

 

“으음, 첫째, 안 무서운 여자. 그러고 말이 적은 여자.”

 

 “둘짼?”

 

 “키가 큰 여자. 그러고 안경을 쓰지 않은 여자.” 


 직원들은 여기까지 듣고, 사태가 심상찮게 발전될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왜냐면 미스 왕은 그에게 ‘무섭고’ ‘말이 많고’ ‘키가 작고’ ‘안경을 쓴 여자’였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스 왕이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뭐예욧! 그럼 나만 아니면 다 좋단 말예욧!”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 


 그가 또 설설 기었다. 하지만 이 말 뒤에 이어진 미스 왕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은 직원들은 또 한 번 깜짝 놀라야 했다.


 “안 돼요! 미스터 김한텐 나처럼 무서운 여자가 있어야 돼요. 내가 사람을 만들어 놓고야 말겠어요. 좋지요?”

 

“글쎄 뭐... 나쁠 거야 없지.” 


 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이게 무슨 도깨비장난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해 있는 우리에게 미스 왕이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곤 여직원들 자리로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언니들, 돈들 내세요. 언니들이 내기에 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