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한인작가 꽁트 릴레이. 2]

와이키키 해변에서의 단잠

 

김 수 자<재미소설가>

 

집으로 가는 길이다. 3년 동안의 부랑 생활이었다. 내가 미국 도착해서 구입한 현대 차 그랜저가 27만 마일을 기록하고 있었다. 미국의 49개 주의 도시를 방문하고 지나고 머물렀다. 그 사이 나는 내가 가진 7벌의 티샤츠와 3벌의 청바지처럼 낡고 지쳐있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태평양 한가운데 섬 섬 섬 다섯 개의 섬으로 된 하와이를 지나칠뻔 했다. 하와이도 미국인데. 그렇다. 하와이를 빼놓을 수 없다.

 

호놀루루의 와이키키 비치 가까이 있는 메리엇 호텔에 채크 인을 하고 바닷가로 나왔다. 황혼의 바다를 보자 그동안 나를 너무 혹사했다는 생각으로 서러웠다. 쏴악 쏴악 파도가 거칠게 일고는 사라졌다. 태평양 바다에 풍덩 몸을 던졌다. 물결에 몸이 붕붕 떴다. 모래사장 보다는 야자수 나무 밑의 잔디가 부드러웠다. 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내 몸이 잔디밭에 찰싹 붙는듯했다. 잔디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다른 도시의 잔디가 보기에 좋아서 눕거나 앉아도 보았지만 여기 같지 않았다. 벌레나 개미도 없는 듯 했고 땅속에서 올라오는 냉기도 없었다. 몸이 스스로 대지와 한 몸이 되었다. 이처럼 편안한 느낌은 어느 호텔방에서도 없었다. 바람이 살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자꾸만 잠 속으로 빠져들 어갔다.

 

하릴없이 27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미국 유학이나 가라고 하셨다. 나이 먹은 자식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우리 된장’ 회사의 사장님이시다. 우리 된장이라니, 그 풍부한 한글 이름 중에 하필 ‘우리 된장’이 뭐야. 원, 창피해서. 일본 된장은 ‘미소’라고 하지않나. ‘미소’얼마나 쉽고 간단하고 예쁜 이름이냐 말이다. 미국애들이 일본 된장국을 먹으며 ‘미소 이즈 굿, 원더플’이라고 하는 광고를 본적이 있다. ‘이찌방 미소라면’도 잘 팔린다고 한다.

 

내가 아버지에게 회사 이름을 바꾸자고 했다가 재털이가 날라와 앞 이마를 정통으로 맞아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적이 있다. 다행히 재털이는 은제 장식용이어서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 터지고 나서 나의 뇌 활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붕대로 감은채 아버지에게 미국 유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몇 군데 대학을 선정해놓고 있었는데 그 중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온 입학허가서를 아버지께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의심이 많은 분이다. 아니, 나는 아버지에게 신임을 받지 못한 자식이었다.

 

나는 물론 대학으로 가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우리된장’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된장’을 ‘미소’를 능가하는 식품으로 만들어보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된장‘ 해외 팀에게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로고와 안내서를 제작하게 하고 된장을 담는 용기를 조그많고 투명한 프라스틱으로 만들어 달라고했다. 나는 차에다가 ‘우리된장’ 샘플을 가득 싣고 다니며 인터넷에 뜨는 식품점마다 들려 나누어주고 시식코너를 만들어 된장국을 미국인들에게 맛들이도록 했다. 나는 된장 찌게나 된장국에는 멸치와 파가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을 어머니의 젖 맛을 알 때 이미 알았다. 멸치 가루와 말린 파를 첨부하면 제대로 된 된장찌게가 된다. 된장 맛을 아는 한국 식품점만 간 게 아니다. 내가 본거지로 했던 달라스에 있는 크로거, 알버슨 같은 대형 마켓은 물론 월마트까지 공략했다.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월마트만 몇 개 터지면 대박이다. 미국은 이상한 나라였다. 누구인가 아이디어를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면 기회를 주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리된장’사장님이신 아버지께서 ‘활동비는 아끼지 말라’는 엄명을 받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세계의 음식을 다 이해하고 좋아하고 있다. 나쵸나 타코 같은 멕시칸 음식이 진한 치즈의 맛을 내어 원래 그들의 음식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살사 같은 멕시칸 음식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산지 오래이고 웬만한 수퍼마켓에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주로 먹던 두부, 만두, 스시, 김치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던 미국인들에게 매운 타바스코 소스나 중국인들이 만들어내는 핫 소스가 먹히고 있다. 유명 식당에서는 기코만 간장이나 굴 소스로 맛을 내고있다. 나는 어느 사이 맛의 도사가 되었다. 한국 된장 아니’우리된장’맛을 알게 되면 이들은 구수한 맛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미국인들에게 ‘우리된장’을 먹였다.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된장’과 함께하는 3년 동안 나는 팍 늙어버렸다. 나는 이제 30인데 60살이 된 듯 몹시 피곤해있었다. 그 피곤이 호놀루루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무너진 것이다. 깊은 잠에 빠졌다. 몸을 뒤척이지도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그런데 이런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난 몇년의 방랑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잠도 있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니...

 

누구인가 발로 내 몸을 툭툭쳤다.

“Hey, you, sucker, you’d better move to other place.”

“Where? “

“This is a privit beach. Follow me.”

 

그들이 나를 동료로 취급해주었다. 와이키키의 홈리스들은 수퍼마켓의 카트를 하나씩 구비하고 있다. 이들의 카트에는 일용할 양식이며 물건들이 다 있다. 침랑, 텐트, 세면도구, 아이스박스, 옷가지가 들어있는 트렁크...나보다 많은 살림이다. 그가 데려간 곳은 하이앗, 힐튼, 세라톤 같은 호텔의 사유 비치가 아닌 공용 비치였다.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홈리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와이가 지상 천국이라고? 하와이는 분명 홈리스들의 천국이었다. 비치 곳곳에는 샤워시설이 되어있다. 이곳은 일 년 내내 날씨의 변화가 없이 따뜻하다. 밀어닥치는 관광객들은 헤퍼서 다 먹지 않은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먹던 게 뭐 어때서. 맥도날드 앞의 쓰레기통이 그들의 후드 벵크다. 뻔뻔스러움이 홈리스들의 자질이며 장기다.

 

나는 어떻게든 아까와 같은 잠을 다시 자 보고 싶었다. 거센 파도 소리가 끊임없었다. 검은 구름이 달빛을 싸고 도는가 했는데 바람이 거두어갔다. 사방에서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제는 잠잠하다. 그들도 잠에 빠진 모양이다. 아까보다는 덜 맛있는 잠이었지만 역시 꿀잠을 잤다. 몇 시간을 잤을까. 엇? 내가 베고 자던 배낭이 어디 갔지?

“하와이는 무슨 하와이야, 냉큼 돌아와!”

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공자 말씀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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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재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