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나의 서울 답사기’  

 

 

서울.jpg어머니가 한국으로 가신 뒤로는 고국 나들이가 잦다. 작년 여름 이후 일 년 여만에 한국엘 다시 가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연히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다. 가자마자 엄마를 만나고 시간 나는 대로 서울을 중심으로 짬짬이 여행을 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오분의 일이 사는 곳, 지하철 노선이 9호선 까지 있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공존 하는 곳, 세계  10대 도시중 한 곳이며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예술 등 모든 것이 집약된 곳이다. 사실 이민 온 뒤 몇 년에 한 번 꼴로 고국 나들이를 했지만, 정식으로 서울을 외국인의 눈으로 방문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친구나 친지가 밥 한번 먹자고 연락을 하면 그들이 사는 강남이나 강북 어느 동네 부근에서 인사겸 식사나 하고 헤어진 것이 전부였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집중적으로 서울을 둘러 볼 기회가 생겼다. 

 

 

마침 시월 중순이어서 어딜 가던지 가을 정취가 느껴지고 관광을 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스마트폰 때문에 요즘은 아무도 찾지 않는 다는 지하철 지도 한 장을 손에 쥐고, 서울 장안을 누비고 다녔다. 교보문고는 광화문 역 3번 출구로 가면 바로 매장과 연결되고, 같은 역 9번 출구로 가면 그 유명한 촛불 시위의 현장, 광화문 광장이 나온다. 환승하는 역과 내리는 역 출구에 무엇이 있는지만 알면 서울구경은 나 같은 촌놈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미국에서 차만 타고 다니다 발품 파는 것이 좀 고단 하긴 하지만, 이참에 지하도 오르내리면서 살 뺀다 생각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루는 시인 ‘이상’이 살았던 집을 보러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가 통인시장 골목을 헤매다, 계획에 없던 경복궁을 보고 오기도 했다. 새로운 풍경은 삼삼오오 한복을 입고 조선의 궁궐을 누비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4개 국어(한, 영, 일, 중)로 가이드를 해주는 궁 해설사가 있고, 시간마다 버킹검처럼 의장 행렬이 있다. 미리 예약을 하면 궁궐 음식을 맛 볼수 도 있으며, 달 속에 잠긴 경회루도 오픈 하는 시간에 맞추어 가면 볼 수 있다. 친절한 가이드는 경복궁 안에 있는 그 많은 궁을 일일이 보여주며 관전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마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서울이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600년 문화고도 라도 말한다.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랜드마크가 필요 없는 도시 안에는 조선의 5대 궁궐이 다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 경복궁은 14세기에 창건된 조선 왕조의 법궁으로, 임진왜란 때 전소 된 것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 되었다. 근정전 입구로 들어가는 박석 하나에도 배수와 채광을 고려한 우리조상의 슬기와 지혜를 엿 볼수 있다. 

 

부근에 있는 서울 시립미술관에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진품 논란이 일었던 작품도 그곳에 있다. 일 벌리기를 좋아하는 박원순 서울 시장은 서울 거리 어딜 가나 수준 높은 전시와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잔치판을 벌려 놨다. 그날도 덕수궁 돌담 앞에선 IL DIVO를 닮은 남성 4중창 그룹이 노래를 하고 있었으며,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 취업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 중간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실업 고등학교 댄스팀과 가수들이 총 출동 해서 분위기는 뮤직 콘서트장 같았다. 춤추는 여학생들을 보면 쓸데없이 휘파람을 불며 좋아하는 남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무대 주변으로는 태극기 깃발을 흔들며 지나가는 데모꾼도 보이고, 각지에서 몰려든 노총과 세월호 관계자들이 내건 현수막들도 여기저기 어지럽게 붙어 있다. 누가 시위대 이고 누가 박람회 구경꾼 인지 구별이 어렵다. 한마디로 다이내믹 코리아 이다. 행사나 시위가 일상이 되어서 인지, 광장은 지저분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어딜 가나 공중 화장실이 무척 깨끗하다. 심지어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공중화장실도 보인다. 

 

인구가 많은 만큼 먹거리도 다양해서, 미국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점 찍어둔 맛집들도 찾아가 보았다. 광장시장에서는 육회와 빈대떡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는 요즘 한창 제철이라는 방어회를 먹었다. 마포구의 유명한 족발집에도 가고, 남원추어탕과 간장게장도 맛보았다. 굳이 맛집 검색을 하지 않아도, 경쟁이 심해서인지 어딜 가도 미국에 있는 한식당 요리보다는 맛이 있다. 오십대 중반 이면 명퇴를 하는 한국의 가장들이 결국 가장 많이 뛰어드는 사업이 요식업인데, 10곳이 오픈 하면 1곳만 살아남으니 전쟁터가 안 될 수가 없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 특별한 소스나 좀 더 기발한 쿠킹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개발되니, 한국의 식당들은 모두 미쉐린 맛 집들 같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파는 잉어빵이나 천 원짜리 호떡조차도 맛이 특별하다. 친구는 향수 때문이라는데 그런지도 모르겠다. 늘 그리워했던 맛, 그리워했던 풍경 속에 있으니 뭐든지 맛이 있었는지도.....

 

그러나  출퇴근 시간에 닭장 같은 지하철과 버스는 여전하고, 매연에 도시의 윤곽조차 희미하게 보이는 서울하늘 역시 변함이 없다. 서울의 마스코트 같은 불친절한 택시 운전사들도 여전하다. 강남엘 가면 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우아한 여자들이 넘치지만, 허름한 골목 한 군데만 돌아서면 최저 생계비 20만원으로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노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웬만한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은 이미 못 올라갈 나무가 되어 버렸고, 청년들은 계층 이동은 꿈도 꾸지 못 한 채 혼자 생존하기에도 버겁다고 한숨을 쉰다. 하지만 오늘도  광화문 네거리엔 미래를 향한 서울 시민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누가 뭐래도 서울의 매력은, 모든 것을 흡인하고 모든 것을 쏟아내는 저 빛나는 역동성에 있다. 어떤 도시도 끊임없이 타오르는 서울의 햇살을 따라 잡을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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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