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농익은 가을, 홍시 냄새에 취하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하얀 광목 앞치마를 띤 젊은 엄마가 시골집 부엌에서 김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 년에 딱 두 번 싸 주시던 김밥이었지요. 바로 소풍 가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엄마가 김밥 꽁다리를 어린 내 입에 넣어주는 찰나였는데 아쉽게도 글쎄 그놈의 알람 소리가 산통을 깨고 말았습니다. 아침까지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하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그사이 젊은 엄마가 소풍 가는 나를 위해 꿈속에 들르셨나 봅니다. 소풍 가기 전날 밤은 설렘의 끝이란 걸 엄마가 더 잘 알기 때문이겠지요.

 

시골에서는 김밥 싸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엄마는 소풍 가기 전날 장에 가셔서 과자며 졸라도 사주시지 않던 칠성 사이다, 달걀, 그리고 김밥을 위해 소고기를 꼭 끊어 오셨지요. 간결하게 싼 불고기 김밥은 우리 엄마의 특허였지요. 아침 일찍부터 부산스레 시금치와 당근을 볶고 지단을 부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얼마나 행복했던지요. 가마솥에 지은 밥을 입으로 후후 불어 뜨거운 김을 식힙니다. 통깨와 참기름을 두르고 준비한 것들과 함께 통통하게 말아 주셨지요. 잘라 놓기가 무섭게 꽁다리를 주워 먹으며 엄마의 손이 요술 방망이 같다고 생각했지요. 남들 다 싸 오는 소시지 게맛살이 들어간 김밥 대신 엄마표 불고기 김밥은 인기가 최고였지요. 새 운동화 신고 무거운 책가방 대신 참기름 냄새 솔솔 나는 김밥에 과자, 사이다, 삶은 달걀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줄을 지어 두어 시각씩 걸어가던 소풍. 짝꿍과 발을 맞추며 걷던 그 길.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엄마표 김밥. 다 그립습니다. 지금은 편리한 한 끼 식사로 김밥이 제일이고 종류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별의별 김밥들이 별스러운 모양과 맛으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먹을 수 있지만, 내 유년시절의 김밥은 소풍 가는 날이나 먹어보는 특별식이었지요. 그 시절 그 맛은 이젠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지요.

 

 오늘은 지인 몇 분과 감 따러 가기로 한 날입니다. 새벽녘까지 천지를 긁어대며 흘리던 비 울음은 딱 그치고 말짱해진 아침입니다. 십수 년 만에 농장에 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여러 가족이 어울려 잘도 다녔지요. 욕심껏 단감을 따다가 이 사람 저 사람 나눠주기도 하고 먹다 지쳐서 버리기도 했지요. 주먹만 한 말뚝 감은 그냥 놔두기만 해도 홍시가 되어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그때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덕에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간이 더러 있었나 봅니다. 더러 생각나는 게 있는 걸 보면요. 아이들이 크면서부터 시간 없다는 이유에 피곤하다는 핑계가 붙어 하루 쉬는 일요일 맘껏 늦장 부리자 주의가 되었지요. 파자마 바람으로 종일 뒹굴뒹굴 군것질하며 밀린 드라마 삼매경에 빠지는 게 최상의 휴식이라 생각한 지 오래되었지요.

 

 같이 가자고 남편을 조르다가 실패하고 남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습니다. 운전이 특기이자 취미이신 선생님이 장시간 드라이브를 위해 준비 완료를 선언하고 출발을 했지요. 컨츄리 노래부터 발라드 팝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CD를 갖춘 DJ 오빠가 운전대를 잡았으니 그 또한, 일거양득. 턴테이블 없이도 멋진 여행이 되리라는 초록 신호이지요. 늦잠 자는 바람에 아무 준비도 못 하고 나온 걸 아시고 동승하게된 사모님께서 삶은 고구마에 말랑말랑한 떡을 꺼내 주셨지요. 그렇지않아도 소풍 가는 기분을 좀 내볼까 해서 김밥이라도 말아갈까요 하고 여쭈었을 때는 가다가 뭐라도 사 먹지 뭐 하시더니 구운 떡에 고구마까지 삶아오셨습니다. 어찌 아셨을까나. 사실 내가 찐 고구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고구마 귀신이란걸요. 오랜만에 챙겨주는 고구마를 먹으려니 부록처럼 따라 와서 평생 챙겨주시다 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목이 멥니다.

 

노래도 따라 부르다 별스럽지 않은 우스개에 소리 높여 웃어도 봅니다. 이렇게 함께하면 되는 건데 약속이 있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남편을 협박하다가 공연히 화가 치밀어 얼굴 붉히고 나온 나를 생각하니 괜히 멋쩍어 헛웃음도 지어봅니다. 활짝 갠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구름을 보며 꿈속에서 본 젊은 엄마의 얼굴도 그려보다 아빠 대신 따라나서던 아이들을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려 콧등도 시큰해집니다. 내비게이션이 정해주는 노선을 따라 세시간쯤 달리다 보니 쌤 휴스턴 동상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거의 다 왔구나 싶었으나 구불구불 시골길로 다시 접어듭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숲속으로 들어서 속도를 늦추고 십 분쯤 달리니 드문드문 시골집들이 보였지요. 암탉 수탉 병아리들, 아니 닭 가족이 길을 막고 걸어갑니다. 너무나도 느긋한 걸음을 보니 목적지에 다 온 모양입니다. 인상 좋은 주인장의 말씀대로 주차하고 드디어 감밭에 발을 디디게 되었지요. 돼지우리나 축사가 근처에 있나 봅니다. 바람이 훅 던지고 간 분료 냄새는 고향에 온 듯 야릇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숲속, 묵정밭에 감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바람만 움을 틀다가는 그곳에도 가을은 익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은 건지 한낮에도 감나무 가지마다 알전구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얼굴이 붉습니다. 감밭은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습니다. 예쁜 거로 골라서 다섯 개를 단숨에 먹고 나니 가을을 다 먹은 듯 행복합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을 느낄 때가 있지요. 눈물과 웃음이 하나라는 걸 알게 한 늦가을 오후에 떫었던 내 마음에 홍시 냄새를 품어봅니다.

 

묵정밭엔 바람만 드나들고

그 귀퉁이에 있는 감나무는

떫어도 그리 떫어

아무도 얼씬하지 않는 게

애초부터 버려진 터였으니

그곳에 있는 감나무도

버려진 나무여서 그런지 몰라

 

그래도 철이 들면

떫은 것들도 단내를 품고

바람 따라 가을은 익고

그래서 덩달아 붉어진 얼굴로

저마다 매단

환한 이력들을 흔들며

마지막 바람 한 잎 편에

실어 보내는

저 말랑한 숨결들

 

숨어 있어도

농익은 가을은 늘 그렇게

홍시 냄새를 풍긴다

 

 김미희, (홍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