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열매의 열매’와 함께한 삼일

 

검은 외투로 단단하게 무장한 컴퓨터 자락을 들치면 시간과 요일, 날자가 왼쪽에 뜨면서 살아있음을 알린다. 오른쪽 상단에는 사진이 마음에 드시나요? 열 때마다 다른 사진을 띄우며 나름 내 비위를 맞추는 모양새다. 왼쪽 하단의 심장을 윙크하듯 마우스로 노크하면 투명한 보름달 속에 아랫도리 잘린 8자가 있고 약속된 이름 아래 문패 겸 열쇠인 <로그인>이 뜬다. 다시 마우스로 <클릭>하면 활짝 열어 속옷을 보이며 내가 입력한 오장육부까지 보일 단계다. 

 

활석이라는 돌을 손에 쥐고 마당에서 첫 글자를 배워서 일까. 컴의 마우스를 쥐면 광천 할아버지 댁이 생각난다. ‘삼산한의원’ 간판과 아랫도리 반은 안쪽으로 창호지를 붙였고 그 아래를 나무로 댄 미닫이 유리문 네 짝이 있었다. 뒷마당은 어릴 때 1, 2, 3을 배우던 곳으로, 3자를 기러기 날 듯 썼고 9자는 동그라미를 톱니처럼 그린 후에 끝을 맞춘 게 자랑스러워 오른쪽에 세워야할 기둥을 재빨리 왼쪽에 세우고는 칭찬을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던 곳이다. <오른쪽은 밥 먹는 손>을 구호처럼 외워도 늘 오른쪽과 왼쪽이 헷갈리던 아이. 

 

그 아이가 할머니가 되었고 첫 손녀가 아들, 며느리와 함께 다녀갔다. 비행기 표를 샀다는 소식에 손님들이 더 궁금해 했다. 아직 베이비크립에서 자나요? 내가 빌려 줄 수 있어요. 아이 목욕비누와 치약은 준비됐나요? 아침식사는 뭘로 준비하나요, 빵을 먹나요? 코너스톤베이커리에서 ‘씨네몬크림케잌’을 사온 분, 봄에 ‘홈 오차드’에서 사서 냉동 보관했던 ‘피치 빵과 주키니 빵을 주신 분, 터들러용 간식을 고양이백에 담아 오신 분, 뽀로로 목욕타월에 개구리샤워꼭지는 삼촌이 욕실에 달았다. 우드픽춰퍼즐, 지구본, 그림본과 색연필, 스티커. 깨끗이 씻어 말린 각종 쌤플화장품통, 작은 단추들과 책도 한 박스 챙겨 두었다.

 

어디를 데려갈 거냐고 묻는 분들에게 삼박사일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혼자 정한 후 아들에게 물었더니 “엄마, 우리는 집에 가는 거예요.” 여행이 아니고 집에 오는 거라니 고마운데, 쉬고 싶다는 말로 받았지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식물원도 데려가고 싶고, 근사하게 사진 찍고 추억을 만들고 싶었지만 다른 한 편 생각해 보니 그건 그네들을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함이 아닌가, 내 욕심이라고 생각하니 섭섭함이 지워졌다. 결국 여기저기 다니지 않기를 참 잘 했다. 뒷마당에서 고추, 가지, 도마도, 라임, 피칸 등 하부지와 추수?를 즐기며 집에서 놀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페이스 톡을 할 때 “아주 큰 뱅기타고 달라스 집에 가요” 하면서 두 팔을 한껏 펴는 손녀에게 우리 부부는 풍덩 빠져 버렸다. 두 살 반짜리가 찍찍이를 붙였다 뗐다 하면서 신도 혼자 신고 벗고,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해서 늘 야단을 맞던 할미를 안 닮은 것이 감사하다. “00는 우유 든 것 먹으면 알러지 땜에 안 돼요. 00는 힘이 쎄서 잘 할 수 있어요. 나비야, 00이가 하는 거 잘 봐. 나비는 00이가 궁금한가 봐요”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말 하는 것은 아비 어릴 적과 꼭 닮았다. 어릴 적 얼굴은 친 할아버지를 빼박았다고 했는데, 손발은 어미를 닮아 작고 예쁘다.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생각이 나서 픽 웃음이 나왔다.
 
 아동문학을 한다는 하무니가 ‘로보카폴리’의 색을 녀석에게 배웠다. 잎을 가리키며 하부지가 파란색 하자 “아뇨 하부지 녹색, 그린색 헬리예요, 분홍색, 핑크 엠버, 파란색은 블루 폴리색. 빨강은 레드 로이색이예요.” 폴리? 엠버? 로이? 헬리? 이게 무슨 말이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발음으로 “경찰차, 구급차, 불자동차, 헬리콥터색이예요”하는 게 아닌가. 덕분에 ‘로보카폴리’를 알게 되었다. “<로보카 폴리>는 로이비쥬얼에서 제작한 TV 애니메이션으로 2011년 2월부터 EBS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데 프랑스, 러시아등 98개국에 수출되며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캐릭터 완구 판매도 매년 태어나는 아이의 수 보다 더 많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ABC, Jesus Loves Me, 반짝반짝 작은 별, 숲속 작은집 창가’에 등의 노래를 영어로 한국말로 부르고 먹기도 잘 먹고, 자기도 잘 자고 나비, 하무니, 하부지와 단짝이 되었다가 떠났다.
손녀가 가지고 다니며 도토리와 난디나, 나뭇잎 풀잎, 작은 돌등을 담던 작은 버킷을 챙겨두었다. “나디나 여매는 새가 머거요, 도토이는 다라미 바비예요. 예수 사랑 하시므 거루카신  마리세,... 나 사라하심 나알 사랑하심 성경에 써인네” 고 작은 입으로 흥얼거리던 찬송가를 언제 또 들을 수 있을까? “태의 열매는 상급”이라 했는데 ‘열매의 열매’를 주심이 더욱 감사한 가을이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

 

김정숙 사모<시인.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