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

 

권총 강도

 

그 해 유월 말일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날은 여름 아침에 어울리지 않게 기온이 뚝 떨어져 초가을 기온같이 서늘하였다. 햇살도 스산하여 파장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손님도 일찌감치 발길이 끊어져서 나는 청소라도 일찍 마칠 요량으로 빗질을 하였고 시간은 열한시를 지나고 있었다.
청소하면서 얼핏 눈길을 준 창으로 흰색 SUV 한 대가 빠르게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빗질을 멈추고 손님을 맞기 위해 준비하면서 주시하였다. 그 차량은 후진으로 가게 건물 벽 쪽으로 주차를 했다. 건물 구조상 보통 손님들은 그런 식으로 주차를 하지 않는다. 어색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손님은 젊은 흑인 남성이었고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청년은 뒤 트렁크를 열더니 허리를 굽혀서 뭘 찾는지 잠시 꾸물거렸다. 출입문 옆에서도 머뭇거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 온 흑인 청년은 여전히 짙은 선글라스를 쓴 채였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문득 들었다. 대개 손님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 오면 선글라스를 벗기 때문이다. 짙은 색의 선글라스를 쓴 손님은 이유 모를 불안감을 주고 경계심을 갖게 한다. 그 청년은 여름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쑥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오른손은 점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왼손은 A4용지 크기의 흰 종이를 들고 있었다.
 

 “Good morning, how’re you!” 
 

 나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귀찮은 손님일 거라는 추측을 했다. 경험상 손에 종이를 들고 온 손님은 광고지거나 뭔가 요구사항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 참! 열한시 경에는 현지인들은 ‘good afternoon!’이라고 인사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침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good morning!’이 입에 붙었다. 가끔 오후에도 ‘good morning!’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와 역시! 직업은 숨길 수가 없다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야 할지, 원!
 손님은 내 인사에 대꾸도 하지 않고 들고 있던 종이를 쇼 케이스 너머로 불쑥 내밀었다. 무심코 받아 들고 흰 종이 위에 검은 매직으로 적힌 내용을 읽고 난 나는 드디어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권총을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는 돈을 다 내 놔라.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내 말을 들으면 해치지는 않겠다.’

짧은 순간 내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아니, 복잡해지려고 하는 머릿속을 단속하느라 복잡했다고 해야 옳겠다. 오히려 두려움은 없었다. 그래!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건 아니다.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아까운 내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나는 카운터 위에 놓여 있는 계산대를 열고 현금을 꺼내 강도에게 건넸다. 그래, 너는 이제부터 손님이 아니라 권총강도야.
 “됐어?” 
나는 돈을 건네며 짤막하게 말했다. 
“저 쪽에 있는 것도.” 
강도는 뻔뻔스럽게 드라이브 스루 계산대를 가리키며 주문했다. 용의주도한 놈이었다. 언제 가게를 와 봤었나? 가게 구조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챙긴 강도는 잽싸게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얼이 빠졌는지 잠시 아무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증거로 남길 심산으로 셀폰을 들고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차를 쫒아 밖으로 나갔으나 쓴 웃음만 나왔다. 놈은 경험이 풍부한지 번호판에 흰 종이를 붙여 가려 놓고 있었다. 아마 안으로 들어 오기 전에 밖에서 꾸물거렸던 이유가 이런 조치를 하기 위함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되었고 나는 무사했다. 주방에서 소세지 롤을 말고 있던 아내는 이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이 사실을 조용히 알렸다. 일순간 아내의 두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똥그랗게 커지더니 “어머, 그랬어? 당신은 어때. 괜찮아?”라고 물었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직접 당해 보지 못한 아내는 전혀 실감하지 못한 눈치였다. 또한, 내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했는지 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그랬다. 아내까지 연루되면 사태가 의외로 커질 수가 있어 조용히 내 선에서 끝내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었다.
 

경찰에 신고할까 말까 고민하다 신고를 했다. 내가 좀 불편하다고 신고를 하지 않으면 다른 피해자가 계속해서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출동한 경찰에게 먼저 범인이 남기고 간 종이를 증거물로 건네주었다. 그리고 경찰의 질문에 범인의 대략적인 신상정보와 함께 피해 정도를 알려 주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아마도 지역 신문에 사건 기사가 실렸던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해서 일 년 가까이 손님들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은 고마웠으나 잊고 싶은 기억을 되풀이 하여 떠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사람들의 기부 문화이다. 궂은일에 서로 나누고 도움 주는 것이 몸에 밴 것 같았다. 꽤 많은 손님들이 손실을 보상(?)해 주었다. 작게는 잔돈을 받지 않은 것부터 해서 단골손님의 백 불까지. 계산해 보니 실보다 오히려 득이 커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범인은 어떻게 됐냐고? 나도 모른다. *
 

김희중 : 오클라호마 거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