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35년 만의 해후

2017.12.08 13:47

KTN_WEB 조회 수:118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35년 만의 해후

 

행복했던 만큼 그리움이 너무 커서 자꾸 슬퍼집니다. 친구가 무엇이기에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오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봅니다. 35년이란 세월에도 흔들리지도 퇴색되지도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딱 헤어졌던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꾸밀 필요도 없다는 것이 그게 바로 친구였습니다. 이팔청춘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 
 

이번 한국행에는 많은 생각과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내일이라는 것이 생각한 대로 오는 것도 흘러가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쯤은 알기에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내가, 혼자 여행을 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잊고 있던 흔적들을 돌아보며 충전을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하였습니다. 좋든 싫든 결코 잘라낼 수 없는 것이 살아온 날이고 혼자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인데 말입니다.  
 

한국 방문을 결정하고 시동생에게 꼭 찾아 달라고 반협박을 했습니다. 선희, 인묘, 종옥 그 친구들은 고등학교 일 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났지요. 중간중간 몇 사람이 들고 났지만 졸업할 때까지 죽자고 쭉 함께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민 길에 오르면서 내가 놓아버린 친구들. 언젠가는 꼭 만나리라 찾으리라 다짐했던, 그 시간이 되었음을 감지라도 한 양 어느 날 갑자기 설웁게 그리웠습니다. 잠을 자다가 전화 소리에 놀라 일어난 서방님에게 부탁했지요. 며칠 뒤 카톡에 뜬 이름을 보고 난 팔짝팔짝 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넷이 다 함께 만날 것을 약속하고 나머지 두 친구도 찾기로 했습니다. 
한 친구는 바로 찾았지만, 나머지 친구는 옛날에 살던 시골에서 오래전에 모두 떠나 막막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만나기로 약속한 이틀 전에 연락이 되어 11월 마지막 날 밤 11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내가 한국에 도착하고 일주일 되는 날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일산에서 서울에서 각각 시간 맞춰 달려와 종로3가역 15번 출구 앞에서 만난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부둥켜안았습니다. 35년 세월에도 한 눈에 들어오는 얼굴들. 목소리들. 환한 미소들. 어제 보고 오늘 또 만난 사람들처럼 너무 당연한 말투들. 가지고 온 짐들은 호텔 방에 던져 놓고 24시간 오픈하는 설렁탕 집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에 잃어버렸던 몇 조각의 퍼즐을 친구들이 가지고 왔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알고 있는 그녀들. 첫사랑의 아련한 슬픔과 환희와 번민을 나누었던 그녀들입니다. 내가 볼 수 없는 다른 쪽의 내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일기장에 암호처럼 써놓은 그 날의 이야기를 해독할 수 있는 세상에 유일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녀들과 함께한 네 번의 겨울, 그 겨울의 눈처럼 우리의 밤은 추억으로 하얗게 쌓여갔습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이것저것 안줏거리와 소주 몇 병을 챙겨 들고 방으로 들어온 우리는 수학여행 온 여고생이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준비해온 똑같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케이크에 불을 붙이면서 밤은 익어갔습니다. 아들이 주는 선물이라고 내놓는 크림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준비해온 선물들을 열어보며 참으로 오랜만에 많이 웃었습니다. 살아 있으니 만난다며 하나둘 꺼내 놓는 사연들. 부산에 사는 친구는 일 년 전에 남편을 뇌종양으로 잃었답니다. 벌써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딸 아들과 넷이서 일 년간의 투병 생활 동안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행복하게 보냈노라며 담담하게 말하는 친구. 7년 전에 심장마비로, 그것도 의료사고로 남편을 보내고 힘들었다는 친구. 스마트 폰을 두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 단톡방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말하면서 아직도 삭지 않은 슬픔에 어깨를 들썩였지요. 우리 넷 중에 둘은 혼자가 되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읽기 쉬운 일곱 살짜리 내 아이의 일기장처럼 단순했습니다. 막 단잠 자고 일어난 아기처럼 편안한 얼굴로, 매일 듣는 음악처럼 익숙한 목소리로, 애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30년 전의 얘기를 해도 어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무슨 말을 해도 헷갈리지 않았습니다. 스탑 사인을 무시하고 깜빡이 신호도 없이 들어가도 헤매지 않았습니다. 그냥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그 시간에 우리는 의아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걱정도 눈물도 한숨도 쉬지 않고 섞었습니다.

 

그렇게 통밤을 새우고 우리는 내가 맡아둔 단골집에 들러 청국장으로 해장을 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카톡 편지들을 읽으며 부자가 되었습니다. 행복한 눈물을 훔칩니다. 사인해준 시집을 보고 내게 푹 빠졌다는 친구들. 나 같은 친구가 있어 행운아라고 말해주는 친구들. 나를 연구하는 재미로 내 시집을 수첩처럼 끼고 다닌다는 그녀들이 있어 등 같이 밋밋한 가슴이지만, 그 가슴에 끝없이 다가와 납작해진 것들을 스며든 것들을 꺼내 깊고 맑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바람은 창문을 흔들고
기억의 입자는
싸락눈 내리는 소리로
달라붙은 담쟁이넝쿨을 토닥이고
마른꽃잎 같던 입술이
행여 바스러져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조바심에
얼었던 얼굴을 창문에 밀착시킨다

너는 아직 그곳에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고
나는 얼어있던 시간에 입김을 불어
우린 안팎에서 입술을 포개어
소실점을 향한 낮은 보폭을 한다

그래
쉼표도 입을 여는 때가 있어
우리는 아직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김미희, (싸락눈 내리는 밤의 기억)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