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

 

식은 정종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다저스가 에스트로스에게 진 것은 분명 그놈의 김빠진 정종 때문이었다. 길을 막고 물어봐도 닭다리에는 맥주가 궁합이지 두어 달 전에 뚜껑이 열린 싸구려 정종은 결코 아니다. 야구경기에, 그것도 월드시리즈 막판 7차전의 중차대한 게임에 임하며 아내가 요리할 때 쓰다 남은 정종으로 흥을 돋우려했다는 것 자체가 패착이었다. 아무리 다저스가 1회 초에 두 점씩이나 내주어 이성을 잃었다지만 싱크대 귀퉁이에 처박혀 있던 밍밍한 정종을 털어 넣는 짓은 말았어야 했다.

 

-여보, 준비 다 해놨어?
 용구는 집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그것부터 물었다. 부엌에서 얼굴을 내민 그의 아내는 근래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리빙룸 쪽을 가리켰다.
 -저기 봐, 당신 원하는 대로 한 상 차려놨잖아. 얼른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내려와요.
 그러고 보니 과연 소파 앞 티 테이블 위에 뭔가 그럴듯하게 한 상 차려져 있었다. 벽걸이 TV화면에서는 양 팀의 스타팅멤버가 소개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가 가까웠다. 퇴근 즉시 허겁지겁 달려와서야 겨우 시간에 맞췄다. 용구는 아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는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바삐 샤워를 하고, 헐렁한 면 티에 추리닝바지를 꿰고 뛰어내려왔다. 장시간의 응원을 위해 아예 편한 차림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용구가 소파 위에 양반다리를 틀어 올리고 앉아 화면을 보니 이미 경기가 시작되어 있었다. 원정 팀인 휴스턴 에스트로스의 1회 초 공격이었는데 벌써 주자가 2루에 나가 있었다. 아웃카운트도 없었다. 용구는 급격히 긴장하며 화면을 주시했다. 다저스의 선발투수는 일본인을 어머니로 둔 다르빗슈였다. 다저스가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에스트로스 와의 대결을 위해 전략적으로 영입한 투수다. 허지만 용구의 눈에 비친 다르빗슈는 키만 훌쭉하니 컸지 어느 한 구석 다부지거나 암팡짐 없이 범생이처럼 허약하게만 보였다. 이미 지난 3차전에서도 패전투수가 된 전력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르빗슈는 1회 초에만 2점을 내주고 가까스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제서야 용구는 옥죄었던 가슴을 펴고 입맛을 쩝 다시며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위기에 빠진 다저스를 지켜보느라 정신을 빼앗겼었는데, 한 숨 돌리고 나니 비로소 아내가 차려놓은 진수성찬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닭튀김, 굴파전에 싱싱한 오이와 풋고추가 된장접시에 담겨있었다. 휴스턴에게 두 점을 빼앗겨 상한 마음이 제법 위로가 되었다. 
 -그래, 그까짓 두 점 뒤집으면 되지 뭐, 이제 시작이니까.
 용구는 그렇게 자위하며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어 덥석 베어 물고 맥주병을 찾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병은커녕 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닭다리 파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엄지손톱만한 사기잔과 알라딘 램프처럼 생긴 주전자였다. 용구는 응? 하는 의구심으로 살그머니 주전자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맑은 액체가 들어 있었다. 소준가, 하고 코를 박아보니 들 큰 퀴퀴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용구는 이우, 하며 코를 싸쥐고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용구는 이게 뭐냐고 아내에게 물으려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벌써부터 그 대답을 하려고 거기서 지켜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생긋이 웃고 있었다.
 -정종이야, 왜 그래? 그건 술 아니야?
 그녀는 정말 그렇지 않냐는 얼굴로 천진하게 되물었다. 어쩐지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필요 이상으로 환하게 웃더라니, 이렇게 음식을 잘 차려놓고도 지은 죄가 있어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용구는 울컥했다.  
 -내가 그만큼 치맥이라고 했잖아, 소주도 아니고 정종이 뭐야? 정종이!
 -여보세요, 맥주 사러 마켓에 갔었는데, 거기서 우리 교인을 둘이나 만났단 말이야, 맥주박스를 몇 번씩 들었다 놨다 했다구요, 여전도회장이 맥주 사가더라는 말 나면 어떻게 되겠어? 

그날따라 가끔 중요한 게임이 열리면 한인타운 스포츠 바에 모여 함께 응원하던 친구와도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 집으로 가자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반색을 하며 어유, 백번 잘한 선택이지, 얼렁 와, 치맥이든 처맥이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대령할 테니 걱정 말고 귀가하시라구요, 라며 시원하게 유혹했다. 지난 5차전 때, 친구와 함께 한인 타운의 족발 집에서 시청하며 한 잔 하고 돌아오다가 거라지 벽을 들이받은 후 아내는 음주운전은 단 한 잔도 안 된다고 엄명을 놓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착한 남편이 되어보자고 자택시청을 택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형편이 쪼그라들었다. 용구는 끙 하고 인상을 구기며 정종 주전자를 노려보았다. 저거라도 마셔야 하나? 언제 먹어봤는지도 가물가물한 정종 맛을 짐작해보며 용구는 마치 큰 결단이라도 하듯 숨을 한 번 크게 들여 마셨다. 

-에라, 이 판에 뭔들 못 먹겠어, 정종도 술은 술이잖아, 내가 저걸 마셔서 다저스가 역전한다면 정종 아니라 뜨물이라도 마셔야지!
 용구는 그런 생각으로 손톱 잔에 정종을 따라 감기약 먹듯이 홀짝,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즉시 으아 하고 비명을 쏟았다. 술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밍밍한 게 김이 빠져 마치 설거지물을 마신 느낌이었다. 김빠지고 식은 정종이었다. 입을 옆으로 찢은 용구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부엌 쪽을 돌아보니 그의 아내는 괜히 그러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만루찬스를 맥없이 날린 다저스가 물러나고 휴스턴의 2회 초 공격이 시작 되자 기가 살은 에스트로스는 단번에 승부를 결정짓는 안타를 날려 댔다. 선두 주자가 1점을 보태며 홈을 밟은 후, 주자가 2루에 있는 상황에서 1회 초에 2루타를 치며 공격의 포문을 연 조지스프링거가 쐐기를 박는 홈런을 날렸다. 단번에 스코어가 5:0이 되어버렸다. 두 점이나 세 점이라면 모를까 다섯 점 차이는 뒤집기 어려운 간격이다. 더구나 5라는 숫자는 3회전에서 질 때와 똑같은 숫자이다. 그리고 그때도 다저스 선발투수는 다르빗슈였고 패전했다.
 불길했다. 안타 하나만 맞아도 재깍 투수를 갈아치우던 다저스 감독은 왜 식은 정종 같은 다르빗슈를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는가.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1회 초에 투수를 바꿨을 것이다. 떠도는 말처럼 흑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트 감독이 동족의식에서 다르빗슈를 편애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차라리 류현진을 세우지, 그랬으면 한국소주의 힘으로 식은 정종 같은 다르빗슈보다 훨씬 잘 던졌을 거다! 이 맹꽁이 같은 감독아!
 용구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불평을 터뜨리며 소파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리고 앞가슴에 ‘Houston Strong’ 패치를 달고 뛰는 에스트로스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허리케인 하비로 슬픔에 빠진 휴스턴 시민을 위해 승리를 다짐한 징표라고 했다. 용구는 순간 에스트로스가 승리하는 게 순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
 -그래, 잘됐어. 에스트로스가 승리하는 게 명분에 맞아. 다저스는 몇 차례 챔피언에 올랐었잖아, 에스트로스는 창단 55년 만에 처음이니 이기는 게 맞아. 
 용구는 그렇게 패전의 명분을 자기합리화 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이제 평생 정종은 땡이다! 다시는 정종 마시나 봐라!

 

이용우 (소설가. LA거주 작가)

 

1951년 충북 제천 출생. 
미주 한국일보 소설 입상
미주 한국문인협회 이사
미주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자영업 / LA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