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연작중편 / 土(원시의 춤)舞 <제32회>

 

제4화 / 밀림 야화(野話)

 

철민은 아예 작심을 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제2캠프인 뎀타 하버(harbor)까지 넘어갔다. 부임 다음 날 권대리 위령제 지내느라 잠깐 내려갔던 이후 두 번 째였다. 뎀타 하버는 베이스캠프인 산속 현장에서 약 20킬로미터 동쪽 바닷가에 있었다. 
 
 아주 포근한 느낌의 포구였다. 만약 이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지 않았다면, 이 마을은 그냥 자연 그대로의 시골 어촌으로 남아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동네는 시끌벅적했다. 원목 야적장에서는 힘겹게 산길을 돌아 내려온 로깅 트럭들이 소형 크레인 등의 장비들의 도움을 받아 실어온 나무들을 야드에 쌓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재소는 제재소대로 그중의 잡목들을 골라내어 쉴 새 없이 톱니를 돌리며 목재들을 만들어 쌓고 있었다. 통나무들이 순식간에 잠시 톱 맛을 보면 갈라지고 쪼개져 언제 그렇게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렸었나 싶을 정도로 둥글었던 모습은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천공을 향해 푸른 숨을 내뿜던 거대한 원목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각목과 판자로 변신하여 벽재(壁材)가 되고 마루재가 되고 있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었다.   
 
그는 캠프장인 임과장의 안내로 바지선 접안 시설을 겸한 원목 집하장과 제재소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선적용 바지선의 접안 부두는 바다를 면한 부분이 철제 빔이 아닌 태평양 철목(鐵木)으로 불리는 멀바우(Merbau)라는 수종(樹種)으로 물속에 촘촘이 꽂아 박아 만든 것이었는데, 보기엔 허술해보여도 여간 튼튼하지 않다고 했다.
“나무가 썩으면 방벽이 무너지지 않나요?”
“아니요. 멀바우는 짠물에 박혀있으면 백년을 간다고 하지요”
“백년....?”
 철민은 언젠가 본사의 현장 교육 시 들었던 이 지역의 각 수종(樹種)들에 관한 기억을 더듬으며 혼자 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시 철민은 산판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던지라 강의 때 뭔가 많은 질문을 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기억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지역 분포수종 중 가장 ‘돈‘이 되는 고급 수종인 아가티스(Agathis) 와 멀바우 등 몇 가지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철민의 수첩에는, 아가티스(Agathis) / 일본 시장에서는 가오리(カ オ リ)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원산지는 뉴질랜드이며 전 세계에 20여종이 분포. 파푸아뉴기니, 이리안자야 등 인도네시아 부근 동남아시아에 넓게 분포한다. 
열대에서 자라는 침엽수 중에 가장 가치 있는 나무. 기온이 낮고 통풍이 잘되고 배수가 양호한 토양에서 잘 자라며, 연간 강우량이 2,500mm 넘는 지역에서 생장한다. 보통 해발 300~1,500m에서 발견된다. 수고는 약 30~50m, 흉고지름 200cm에 이르는 상록침엽수 교목으로 큰 것은 흉고지름 300c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성숙 목은 농적갈색, 회백색, 녹회백색 등 다양하며, 비늘모양으로 두껍고 거북등 모양으로 벗겨지며 비섬유성이며 목질은 나무결이 곱고 균일하다. 가볍고 연한 나무로 가공·제재가 용이하며 못질도 잘 되고, 할렬이 잘 가지 않아 단풍나무 이상으로 최상의 고급 내장재로 쓰인다. 

철목(鐵木) 멀바우(Merbau) - ‘보통 충적토양에서 생육하며 수고 40∼50m에 달하는 거목. 직경은 1m 전후에 외수 피는 회색 또는 적갈색인데 밋밋하고 무수한 물결무늬가 있어 제재해서 가공하면 마루 바닥재로 좋다고 알려짐. 강도가 높고, 부식, 벌레 등에 강해 방부처리가 따로 필요 없어 천연 방부목이라고도 불린다. 기름성분이 많아서 내구성이 강해서 과거에는 주로 철도 침목으로 많이 사용되었음’으로 메모되어 있었다. 

당시 그는 잘 팔리는 나무라면 나왕(Meranti), 티크, 마호가니 따위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이 지역에는 그런 수종들이 없어 굉장히 아쉬워했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고급 수종인 ‘아가티스‘는 약 100킬로미터 후방에 군집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아직 구경도 못하고 있고, 다만 다소 흔한 멀바우 만이 다른 잡목과 함께 임도 닦는 양편 100미터 안쪽에서만 잘라내어 몰래 팔아먹고 있는 실정이었다. 
생각해보면, 계륵(鷄肋)이고 진퇴양난이었다. 왜냐면 계획된 경제 수림(樹林)에 도착해 ‘돈’이 되려면 빨리 임도(林道)를 닦아야 하는데, 그 사이 운영 경비 들어가는 걸 어찌 현지에서 조달하려다 보니 도로 주변 나무나마 잘라 팔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러자니 길 닦는 게 늦어지고 아울러 장비 소모가 과외로 들어가니 회사건 현장이건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제재소는 톱니 돌아가는 소리로 몹시 소란스러웠다.
“제재소 구경 해보셨어요?”
철민이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짤막한 미팅을 마치고 이제 막 준공을 마무리 하면서 시험 가동을 하고 있는 제재 공장엘 들어서자, 현장 기사인 최기사가 불룩한 배로 벨트위에 얹혀 진 원목 한쪽을 받쳐 밀면서 큰 소리로 철민을 돌아보았다. 
“그럼! 최기사처럼 배치기 한 것도 봤고...선수들은 기계로 조작하는 거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던데...최기사도 그래요?”
“아, 그럼요!”
최사가 으쓱하자 따라온 임과장이 웃으며 엄지를 척 내밀었다.
“최기사 익스퍼텁니다”
“좋아요! 근데...혹 팔아먹을 때 크레임 안걸리도록 신경쓰세요! 보통 얼로언스(allowance) 몇미리나 줘요?“
철민은 자기도 좀 안다는 듯 잘난 척을 하자 이번엔 최기사가 벌쭉 웃었다.
“보통 3미리 주는데...어쩌다 말리다 잘못되면 기준 이하 되어서 크레임 걸릴까바, 앞으로 정식 수출할 땐 1미리쯤 더 줄까 싶어요. 크레임 걸려 빠꾸되는거 보담은 낫잖아요!”
“글세...1미리 더 주면 돈받는거 보다 선적물량이 더 늘어나 나무를 덤으로 더 주는 꼴이 될텐데...임과장?”
“예”
“삼천입방 수출한다 치고 1미리 더 주면 늘어나는 부피만큼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는지...계산 좀 해보고 나중에 나에게 좀 알려줘요!” 
“알겠습니다”
임과장이 자세를 바로하며 고개를 끄덕했다.
“암튼... 앞으로 혹 그런 일 생기면 나도 챙길테니, 임과장도 잘 챙기도록 하세요! 이제 공장 정식 가동하면 그거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철민은 우선 실제로 액티비티가 없는 앞으로의 얘기를 지금부터 왈가왈부 하고 싶지가 않아 이 부분은 캠프장에게 일임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저만치 야적장에서 아탱 영감이 그를 발견하고는 엉거주춤 일어나 거수경례로 인사를 건네 왔다. 철민은 웃으며 답례를 보내곤 눈을 돌려 한참동안 심란한 얼굴로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거름의 바다는 검푸르게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수평선으로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는 문득 죽은 권대리를 떠올리며 뭔가 공연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표정을 숨긴 채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곤 본 캠프로 돌아가는 찦 차에 올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