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오페라 ‘나비부인’을 만나다

 

 

라보엠, 토스카 등과 함께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나비부인은 1900년대에 초연 되었다. 처음 공연에서는 관객들에게 휘파람 소리를 들을 만큼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존 루터 롱의 단편소설에 기초한 미국의 흥행주 겸 각색가인 데이비드 벨라스코가 번안하여 희곡을 각색한 후,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북아메리카에서는 아직도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중 하나가 되었다. 오페라를 즐겨 보지 않은 나 같은 경우도 일본 기모노를 입고 ‘어떤 개인날’을 부르는 프리마돈나 들은  수 없이 보아 왔기에 이상하게 다른 오페라 보다는 친숙한 느낌이 많이 드는 오페라이기도 했다. 

운이 좋게 지난 주말 어스틴에서 어스틴 오페라가 만든 ‘나비 부인’을 볼 기회가 생겼다. 지인분이 오페라 프리마돈나가 한인 소프라노라고 해서 갑자기 표를 구입해서 보았는데, 마지막 남은 자투리 티켓이었는지 A석을 B석 값을 주고 보는 행운 까지 생겼다. 무대 바로 앞이어서 무대도 잘 보이고 주인공들의 연기나 대사, 오케스트라 연주도 더욱 실감나게 볼 수 있어 참 좋았는데, 좀 아쉬운 점은 자막이 무대 중앙 맨 위쪽에 있어 계속 고개를 뒤로 제치고 봐야 했다는 것이다.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가 이태리어이어서 관객들을 위한 배려로 영어자막이 계속 떠 있었다.
가끔 오페라 공연을 갈 때 마다 느끼는 것 이지만, 난 오페라 공연보다 그곳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데, 그날 도 좌우에 앉은 청중들은 모두 우아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고전의 품격을 사랑하는 점잖은 아메리칸들이었고, 텍사스에 이렇게 멋쟁이들이 많았나 하고 감탄할 만큼 성장 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비부인’의 영향인지 동양인인 나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모습도 많아 오페라 속에 나오는 초초상 모습이 미국인들에겐 어떤 이상적이고 친숙한 동양인 여성상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얼핏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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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와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만큼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이곳사람들이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에게 갖는 친밀감과 호감도이다. 굳이 트럼프가 일본을 혈맹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 국가는 단연 일본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차대전시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두 나라 사이는 한때 악화일로의 길을 걸었지만,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천왕의 항복과 사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두 나라는 아주 가까운 우방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미국인들의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도 한 몫을 차지했다. 2차 세계대전 시 미 정부의 부탁으로 일본인들을 이해하고자 일본문화 전반과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를 해부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은 지금 까지도 일본연구의 지침서로 꼽히고 있는데 이 책은 일본을 한번 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저자가 문헌과 주변 일본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화재배의 비술을 키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칼을 숭배하는 사무라이 정신을 가진 그들의 양면성을 모순이 아니라 일본 문화의 한 정형화된 패턴이라고 바라보았다. 이는 칼 같은 본마음 (혼네)은 숨기고 예의 바르고 형식적인 다테마에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를 잘 보여주는데, 어쩐일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혼네를 들켜 버리는 일이 많아 씁쓸한 경우가 더 많은데,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오페라 <나비부인> 에서도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격이 잘 나타난다. 집안의 몰락으로 어린나이에 게이샤가 된 초초상은 집안의 반대를 무릎 쓰고 개종을 하고 이름을 바꾸고 미국 해군장교 핑커톤과 결혼을 한다. 결혼식 도중 집안 백부인 본조는 한 무리의 친척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집안과 친척을 버리고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나비를 집안의 수치라 여기며, 앞날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간다. 핑커톤은 이런 삼촌을 쫓아내며, 앞으로 자기가 나비를 지켜 줄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하며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쾌락과 모험을 즐기는 떠돌이 양키 핑커톤에게 이 결혼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불 장난 이었으며, 그는 처음부터 미국 에서 미국여자와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핑커톤이 돌아오지 않을 것 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떠난지 3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며 부르는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날’ 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데, 특히 한인 소프라노 이유나씨의 맑고 호소력 넘치는 음성은 청중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어느 맑게 개인 날
저 푸른 바다위에 떠 오르는 한 줄기 연기를 바라보게 될거야
하얀 빛깔의 배가 항구에 닿고서 예포를 울린다.
보라! 그 이가 오잖아
그러나 난 그곳에 가지 않아
난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그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을거야.“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다소 시대착오적인 이 스토리를 미국인들이 그토록 열광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옆 좌석에 앉아 있던 미국 할아버지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브라보를 외쳤는데, 그건 아마도 미국인들이 꿈꾸는 사랑에 대한 향수와 로망이 아닐까.... 전쟁에 나간 남편 조차도 기다리지 못하는 요즘 젊은 아메리칸 커플들을 볼때 비록 게이샤 였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한 남자를 기다리는 나비부인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로망 일지도 모른다. 푸치니 역시 소문날 정도로 질투심이 강했던 그의 실제 아내보다 <나비부인> 캐릭터를 작품 주인공 중에서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나비를 훌훌 날게 하지 못하는 것은 핑커톤일까, 나비 부인 일까? 오늘 따라 유채꽃 사이로 날개를 접었다 피었다 하는 나비들의 모습이 유난히 선연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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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