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변방에서

 

이제 2017년도 수많은 사연과 추억을 남기고 저물어 간다. 한 해를 싣고 달리는 열차는 나는 화살처럼 속도가 빨라, 봄 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종착역이 다. 유사 이래 흐르는 세월을 붙잡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의 역사에서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은 항상 존재했다. 굳이 한 국가나 지방처럼 큰 단위의 공동체는 아니더라도 커뮤니티나 한 집안, 심지어 작은 교회 일망정 중심부와 변방은 늘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을 찾아서’ 는 대한민국의 변방을 소개하는 책이다. 선생은  땅끝 마을 해남 송지 초등학교 분교부터 벽초 홍명희 문학비, 전북대 이세종 열사 추모비, 노무현 대통령 묘석 등에 그 멋스런 글씨로 현판을 써 주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그 장소가 모두 대한민국의 변방에 위치한 곳이었다. 20여년이 넘는 동안 우리사회 최고의 변방인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신 선생은 스스로를  ‘변방인’이라 칭하며, 변방인(비주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많이 보이셨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으로 주류에 의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지만,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에서 보듯이 선생은 변방인 그곳에서, 서생에서 벗어나 인생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선생에 의하면, 인류문명은 끊임없이 그 중심지가 변방으로 이동해온 역사이다. 그리스와 로마도 한때는 오리엔트의 변방이었고 합스부르크와 비잔틴은 그리스와 로마의 변방이었다. 또한 근대사를 주도했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세계의 중심지가 된 미국도 몇 백 년 전엔 그들의 변방 이었다. 이처럼 중심지와 변방은 역사의 순환에 의해 계속 변경되는데, 여기에는 새 영토를 찾아가는 변방의식이 끊임없이 작용한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마지막 장에 나오는 “창조야 말로 저항, 저항이야말로 창조‘처럼 변방은 저항과 창조의 공간인 동시에 우리가 갇혀있는 틀을 깰수 있게 해주는 장소 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방보다는 중심에, 비주류 보다는 주류에 속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나 공동체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싶어 하며, 제외되었다고 생각하면 심한 상실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한 주류라면 모르지만, 단지 허약한 일체감이나 뻔한 지향으로, 과시하기위한 주류라면 비주류에 머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왜냐면 우리는 중심에 있다고 여기는 순간, 우리의 행동반경이 다운타운에 있는 것처럼 갇히게 되지만, 변방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 인지 모르지만 나 역시 살면서 한 번도 주류 였던 적이 없다. 모든 삶의 조건이너무 평범해서 늘 가장자리만 맴돌았고, 한국에서나 이곳에서나 사는 곳도 항상 변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주목 받는 것에 익숙치 못하고 자신을 늘 비주류로 여기며 살고 있다. 주변에 보면 어려서부터 주류의 삶에 익숙한 친구들은 비주류로 밀려나는 것을 지구가 문 닫는 것처럼 못 견뎌 해서 주류에 머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과연 그 노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더욱이 변방이 어울리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자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설쳐대는 것을 보면, 변방이 얼마나 편안한 곳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로 보면, 변방이었던 2017년 한 해가 사라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해 이기도 할 것이며, 어떤 이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해이기도 할 것이다. 예전 이맘때 즈음엔,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낡은 지붕 아래에서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먹으며 세월 오는 소리를 들었던 고향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우리가 떠나온 변방이며 우리는 그곳을 통해서만 중심으로 갈 수가 있다. 이민 올 때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 ‘근본을 잊지 말고 살아라’ 는 어쩜 우리의 근원이 어디에서 출발 한 것인지를 항상 기억하라는 말씀 이셨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꼬리 두 개 달린 원숭이가 정상으로 간주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혜안은 우리의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변방에서,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해 본다.

 

두 번 세 번 부당하구나

삼천리강산이 모조리 서울이 되어간다
오, 휘황한 이벤트의 나라
너도 나도
모조리 모조리 뉴욕이 되어간다
그놈의 허브내지 허브 짝퉁이 되어간다

말하겠다
가장 흉측망측하고 뻔뻔한 중심이라는 것 그것이 되어간다

서러웠던 곳
어디서도 먼 곳
못 떠나는 곳
못 떠나다
못 떠나나
기어이 떠나는 곳                                - 중략-

 

고은 의 <내 변방은 어디 갔나> 중에서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