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그해 겨울, 출가를 생각했다

 

신바람이 났습니다. 핸드폰을 열어 밖으로 초점을 맞춥니다. 이 층 방에서 내려다본 지붕 모서리에 눈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습니다. 맑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흐려지더니 싸락눈이 흩뿌렸던 것이지요. 그렇지않아도 좀 전에 친구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눈이 온다고요. 흩날리는 눈발을 보면서 너무 행복해서 내가 생각난답니다. 달라스의 겨울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가 싶으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눈 오는 날을 상상합니다. 문 앞에서 창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가슴 설레는 반가운 손님이라도 맞이하려는지 자꾸 밖을 내다봅니다. 일기예보 오십 퍼센트의 가능성에 억지로 기대치를 합산해 즐거운 기다림에 빠집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휴교령이 내려질까 봐 꼭두새벽부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립니다. 나 또한 밀린 일은 뒷전이고 달콤한 휴가를 꿈꿉니다. 눈 오는 날만은 세상사에서 멀어지고 싶어서지요. 세상에서 내 삶에서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걸 찾고 싶어서지요. 어른 흉내 내기에서 벗어나 동심을 가져보는 것이지요.

 

눈, 첫눈이 오면 사람들은 첫사랑을 떠올립니다. 첫 키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첫 키스는 기습을 당한 거라 결코 달콤하진 않지만 잊을 수 없는 건 ‘첫’이라는 절대 가치의 수식어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내겐 첫눈 하면 꽁꽁 얼어붙었던 그해 겨울이 있습니다. 찢어진 흑백사진 같은 아픈 기억이 있지요. 아마도 그건 ‘눈’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못했던 내 엄마의 눈. 그저 말없이 바라보던 그 눈. 내 마음대로 무엇하나 결정할 수 없었던 암울했던 현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던진 도전장이었습니다. 가족 아무도 모르게 짐을 꾸려 마당 한편에 쌓아놓은 볏짚 더미 속에 숨겨놓을 때는 복잡한 마음이었지요. 하지만, 출가하는 날에 첫눈이라니, 그것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다니 축복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민이 결정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절실했기에 그런 험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덕사에 여승방이 있다는 것만 알고 무작정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버스 몇 대를 보내고 나서야 동네 사람들을 피해 버스를 탔습니다. 서산 차부에서 표를 사고 물어물어 수덕사까지 찾아갔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여승방 문 앞까지 갔을 때는 이미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서둘러 산사에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가방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기고 안에서 누구라도 나와주길 기다리며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눈 속에서 덜덜 떨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기억이란 것이 원래 왜곡되기 쉽고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산사에서 내려와 친구 자취방이 있는 수원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초행길인 데다 혼자서는 서산을 떠나본 적 없는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는 건 그 친구의 놀란 눈이었습니다. 이민 간다는 내가 가방을 싸 들고 밤늦은 시간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으니 놀랠 수밖에요. 말도 없이 한 이틀 지났을 때 우리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친구가 받았습니다. 친구는 “네, 네…… ” 대답만 했고 지금까지도 그날에 대해 내게 물은 적이 없습니다. 출가를 꿈꿨던 나는 그렇게 며칠인가 친구 자취방에서 잠으로 보내고 제풀에 꺾여 가출 소녀가 되어 집으로 기어들어 왔지요. 엄마고 오빠고 그 누구도 나의 가출에 관해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내 눈치만 살필 뿐. 십여 년 전쯤일 겁니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사실 때였지요. 그해에는 2월에 유난히 추웠습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서 눈과 비가 함께 내려 수도관이 터지고 교통사고 건수도 많아 어수선했습니다. 이틀인가 가게 문을 닫고 스노우 데이를 즐기느라 햇볕 따사한 창가에 엄마랑 나란히 앉았지요. 내 기억에는 없는 그 가출의 후기에 대해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지요. 집으로 돌아온 나는 빛이 다 새어나간 눈으로 틈만 나면 무엇에 홀린 듯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밭을 걸어 뒷산에 오르곤 했답니다. 군불을 때며 부지깽이를 마이크 삼아 목청껏 부르던 노랫소리도 사라지고 말수도 줄고 두문불출 방구석에 박혀 겨울잠만 잤답니다. 눈에 갇힌 듯 눈 속에 빠져 견디었다지요. 그리고 개울가에 버들강아지 뽀송뽀송한 솜털을 말리며 피어날 때, 깊고 긴 잠에서 깨어난 나는 거짓말처럼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답니다. 말씀은 없었지만, 나를 키우면서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는데 그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었답니다. 괄괄하신 엄마 성품에 부지깽이 몇 개는 부러지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 나를 그냥 지켜보시느라 얼마나 애간장 태우셨을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내 행동에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려주는 것 뿐이었다지요.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나를 잃기라도 할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요.

 

기차를 타면 삶은 달걀이 생각납니다. 그건 추억을 까먹고 싶어서지요. 차창에 다닥다닥 흑백사진들을 붙여놓고 묵은 숨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던 순간에 빠집니다. 그렇듯 이런 밤에도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진첩입니다. 물론 외롭고 쓸쓸할 때 펼쳐보며 위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추억에 빠지고 싶어서지요. 아무 데도 갈 수 없기에 지나온 추억 속이라도 걷고 싶은거지요.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일수록 더 애착이 갑니다. 그런 사진일수록 사진 속에 많은 이야기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최첨단 휴대폰으로 찍으면 바로 볼 수 있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열어볼 수 있으니 현상소에서 사진을 뺄 일이 별로 없지요. 그러니 이 시대의 청춘들은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고 사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그 기쁨을 모르지요. ‘첫’이라는 수식어만큼 가슴 뛰게 하는 그 설렘을 알 리가 없지요. 그런 청춘이 우리 집에도 있지요. 각자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맞추고 있을 아이들을 불러 사진첩을 펼쳐 놓고 추억을 같이 까먹자고 졸라봐야겠어요.

 

 

눈, 눈에 갇혔네

함박눈도 싸라기눈도 아닌

그 눈에 갇혔네

 

눈을 뜰 수 없이 온통

하얗기만 한 눈부신 세상에는

길이 없어

그 아무 데도 갈 일이 없네

 

이대로 바라보고 있으면

발목부터 녹아져 버리는 몸

눈, 그 눈 속에 갇혀

하얘진 삶으로 살고 싶네

 

 김미희, (그 눈 )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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