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가슴 구멍

2018.02.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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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가슴 구멍

 

 

맞는 색실을 찾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냥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습니다. 보이는 데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건 내 못 된 습성 때문입니다. 그냥 제 살을 풀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시접 박은 실을 풀어 좀먹은 구멍을 기웁니다. 큰 구멍은 갖은 공을 다 들여 기워도 울고 맙니다. 그저 더는 올이 풀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 뿐이지요. 따뜻하고 물렁한 곳에는 상처가 많습니다. 무언가가 다가와 몸 부리고 간 흔적이지요. 한 살림이 빠져나간 자리지요. 푹신해서 고단한 날개를 접고 둥지를 틀고 알을 슬었던 곳. 손님들이 한숨과 하소연으로 풀어 놓고 가는 옷가지들 속에 겨울이 되면 좀먹은 스웨터가 유난히 많습니다. 멀쩡했던 옷에 구멍 숭숭 뚫려있으면 난감하지요. 오래되지도 헐지도 않아 버릴 수도 없고 더군다나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전해준 선물이라면 낭패지요. 풀어서 다시 짤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속상할 밖에요. 좀나방이란 놈도 좋은 것은 알아서 꼭 따뜻하고 푹신한 것 그러니까 값나가는 물건에만 기어듭니다. 캐시미어나 울 종류의 옷가지들이 제일 만만하지요. 

여기저기 구멍 난 파란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꿰매는데 콧등이 시큰합니다. 휴지통으로 던졌으면 딱 좋겠습니다. 내다 버렸으면 딱 좋은 가슴 구멍을 깁던 때가 있었지요. 털실로 짠 가슴이라면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다 풀어서 다시 짜고 싶었습니다. 상처가 남아도 좋으니 눈물이라도 생각이라도 나지 않도록 본드로 붙여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요. 
가족처럼 품었던 사람이 낸 구멍은 쉽게 기울 수가 없습니다.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그것도 친구라는 사람이 떠나며 남긴 살 냄새는 구멍은생각만으로도 올이 풀려 눈물이 줄줄 샙니다. 아픈 속을 누구와도 터놓고 나눌 수가 없습니다. 오롯이 제 살을 풀어 스웨터를 꿰매듯 속울음 줄을 이어 꿰매야 한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지요. 뚝뚝 끊긴 올은 잡아서 달래고 잘 추슬러도 울고 맙니다. 흔적과 매듭은 남지요. 깁다 안 되면 차라리 내다 버리면 그뿐인 스웨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언제든 그 누군가가 다가와 마음 부릴 걸 생각해서 어떻게든 자리는 만들어야겠지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 도저히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 태초부터 인간 DNA에 입력된 본능에 우리는 충실해야 하겠지요.

기워 놓은 스웨터를 펼쳐놓고 보니 하숙집 생각이 났습니다. 꿰맨 흔적들이 마치 방 문고리마다 채워있던 자물쇠 같습니다. 나의 신혼집, 아니 신혼 방이었지요. 식을 올리고 바로 미국으로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남편이 하숙하던 방에 신접살림을 꾸렸지요. 살림이라고는 이불 한 채, 사 첩 반상기와 수저 두 벌, 2인용 식탁과 작은 옷장 그리고 냄비 두 개, 가스렌지가 전부였지요. 꿈같은 소꿉놀이에 빠져 하루하루 미루다 결국 백일을 채우고 떠났던 집입니다. 지난겨울 한국 갔을 때 마음먹고 찾아갔습니다. 삼십 년 만인데 하숙집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미국댁으로 불러주던 주인아줌마도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 주셨지요. 그러나 북적거렸던 하숙집에 사람의 온기라고는 찾을 수가 없어 낯설었습니다. 김치 담그는 아줌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막 버무린 배춧속을 받아먹던 수돗가는 말라 버린지 오래인 듯 했었습니다. 반짝거리던 앞마당이 이끼가 끼어 있었습니다. 흘러내린 녹물로 가득한 담벼락은 올 풀린 스웨터 같았습니다. 자물쇠가 채워지고 냉골에 캄캄하기까지 한 방인데도 그 미국댁의 알록달록한 그리움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문간방에는 곱사등이셨던 어머니와 청각장애인 아버지를 모시고 총각 선생님이 사셨지요. 날이면 날마다 걸쭉한 그 어머니의 입담이 좋아 군것질을 싸 들고 그 방으로 마실갔습니다. 깔깔거리며 들은 이야기를 밤이면 남편한테 전해주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우리 왼쪽 방에는 우리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결혼한 신혼부부 안 선생님이 사셨지요. 사모님은 나보다 두 살인가 많았는데 엄청 점잖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조금 늦게 합류한 다른 안 선생님은 두 살 터울 어린 남매와 함께 오른쪽 방에. 원래 그 방은 우리가 살고 있었는데 식구가 많은 그분들께 양보했습니다. 그 덕인지 사모님이 지나칠만큼 잘 챙겨 주셔서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뒷문만 열면 산이라 소쿠리 가득 나물을 캐다 고추장에 버무려 나누어 먹기도 하고, 특히 자주 얻어먹던 된장찌개는 일품이었지요. 내 평생 만나 볼 수 없는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이라는 것이 이 구멍 저 구멍 틀어막다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은 비틀대기도 틀어지기도 해야 제대로 된 인생이지요. 그 작은 비틀림이 바늘구멍만큼의 틀어짐이 이전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 알 수 없는 이끌림이 어떤 특별함을 안겨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것이 좀먹은 스웨터 구멍 꿰매듯 그 아픈 흔적을 아물게 하는 따뜻한 것이 필요한 것인데, 혹 나는 누군가에게 좀나방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따뜻하고 푸근해서 안겨있다가 그 가슴에 구멍만 만들고 떠나지는 않았는지. 좀먹은 스웨터도 처음부터 허술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가슴에 상처가 많은 사람도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어쩜 그 누구보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푸근하고 따뜻하고 물렁해서 일 것입니다. 그저 조금 둔해서 제 살점 떨어지는 줄 모르고 탁탁 털어내지 못해서 일 겁니다. 다 떠난 자리에도 추억은 남아 있었습니다. 원망이나 미움 뒤에도 어떤 형태로든 그리움은 남아있기에 말입니다.

 

시접을 풀어
좀먹은 캐시미어 스웨터를 깁는다

구멍 난 자리가 허술하거나 헐렁해서가 아니라
가슴에 
당신 마음 부린 그 살 냄새 아직 아파
탁탁 털어낼 수 없어 차라리
물렁해진 마음을 다독이듯 구멍을 깁는다

가슴에 난 구멍은 상처가 아니라
혼들이 왕래하는 숨구멍
나쁘든 좋든
추억이란 건 내게 걸맞기 위해 찾아온 것이니

가슴 바닥에 아직
유실되지 않은 단내 남기기 위해
그대의 환영에 바늘을 꽂는다

 

 김미희, (가슴 구멍)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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