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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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 저도 중년은 처음 입니다. ’

 

얼마 전 카톡에서 옛 친구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친구는 남편을 사이에 두고 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이건 누가 봐도 중년의 아버지가 양쪽 옆에 자식들을 두고 찍은 것 같았다. 친구는 그야말로 누나 같은 엄마, 딸 같은 아내로 비쳐져 세월이 이 친구만 비켜 같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부에 사는 친구 역시 한국에서 이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아니라 이모와 조카 사이처럼 비쳐져 몹시 자존심이 상했노라고 했다. 난 부러움이 마구 섞인 친구의 엄살을 들으며, 몇 살이 되어도 아줌마로 남기를 거부하는 옛 친구의 치열한 외모 가꾸기가 참으로 가상하고 놀랍게 보였다. 그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뽀얀 얼굴에 가녀린 몸매와 살짝 곱슬거리는 긴 머리, 사립학교 여학생처럼 짧은 체크무늬 치마와 붉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친구의 모습은 이십 대 때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난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친구가 감내했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외모는 모든 여성들, 특히 중년 여성들이 세월에 저항하는 마지막 수단 인지도 모른다. 마음은 젊음의 끈을 놓지 않는데 몸은 여기저기서 노후의 징후들을 마구 보내기 시작하니, 이때부터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유체 이탈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을 안 주변의 남성들, 기껏해야 친족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남편이나 아들, 조카 등이 이모는 그렇게 안보여, 친구들이 엄마가 누난 줄 알았대 하는 정도의 아부가 첨엔 엄청 기쁘게 여겨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건 중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나 이모 혹은 고모를 향한 아부라는 것을 그냥 인지 하게 된다. 그러기에 공적인 장소에서 여자 나이를 공공연하게 들먹이는 것은 그 자체로써 상대방에게 상처이고 실례가 된다. 

이런 중년의 마음을 대변하듯 요즘은 중년이란 제 2의 사춘기를 다룬 책들이 많다. 태어나면서 똑 같은 세대를 두 번씩 겪는 사람은 없기에, 모든 세대는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낯설다. 그러나 관심과 배려가 넘치는 어린 시절의 사춘기와 달리 중년의 그것은 아무도 관심을 기우리지 않는다.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겪는다는 중년의 위기나 우울을 치워야 하는 낙엽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 작가 사카이 준코의 에세이집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40대부터 시작되는 중년여성의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재기 넘치는 통찰력과 위트로 신랄하게 파헤치는데, 거기엔 세월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없는 중년여성들을 위한 조언도 많이 들어있다. 아무리 보톡스를 맞고 앞트임 뒤트임으로 눈가의 주름을 없앤다고 해도, 마음 편히 늙어가는 중년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몸매를 위하여 가는데 마다 칼로리 계산하며 밥을 뺀 김밥, 도우 없는 피자를 선호하는 친구보다는,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늘어난 뱃살을 허물없이 얘기 할 수 있는 친구가 더 좋다. 병이 있으면 모를까, 옛날에 귀해서 못 먹던 하얀 쌀밥을 마치 공공의 적처럼 여기며 커피는 스타벅스, 라면은 절대 사절인 고급 취향들을 만나면 괜히 불편해진다. 이런 부모의 영향인지 아이들도 오가닉 푸드만 고집하는 룸메이트를 만나 고생한 적이 더러 있었다. 주제 넘는 것 같지만 ‘생활은 낮게(평범하게), 이상은 높게’ 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낸 무언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속물근성은 “정말 그 나이가 맞나요”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와인이나 맥주를 구입할 때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말을 들으면 그지없이 흐뭇하다. 해마다 옷 사이즈가 바뀌는 아내를 놀리는 남편에게, 이런 에피소드는 단골로 등장하는 무기이다. 생각해보면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은 늙는 다는 것을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화장이라곤 친척 결혼식에나 하는 것으로 알고 사셨던 어머니 이지만, 가족들을 위해 평생 양보하고 희생하며 살았던 삶의 피부는 물광 피부 보다 더 빛나고 도자기 피부 보다 더 곱다. 이 형기 시 <낙화> 의 한 구절처럼 이젠 가야 할 때가 언제 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을 인데, 아직도 난 여름이라고 우기며 여름옷만 입고 다니면 감기만 걸린다. 중년의 아름다움은 외모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녹슨 도끼처럼 아무 쓸모없게 되지 않기 위해선 가슴에 벼랑 하나 쯤 품고 살 일이다. 우리는 평생 시행착오를 통해 그 세대의 정체성을 익히며 익힐만 하면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누구에게나 중년은 처음이다.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
이 흐리멍덩이 어쩐지 쓸쓸하다 -중략-
애인 이었던 여자를 아내로 삼고부터
아무래도 내 생은 좀 심심해진 것 같다
꿈을 업으로 삼게 된 자의 비애란 자신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중략-
뒤꿈치 굳은 살 같은 날들 먼지 비듬이라도 날리면
온 몸이 근질 거려 번쩍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고 싶은 도끼

- 손택수의 <녹슨 도끼의 시> 중에서 -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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