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사이(間)의 미학

2018.02.16 10:58

KTN_WEB 조회 수:129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사이(間)의 미학

 

어제부터 날라오는 카톡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밸런타인데이에 설날이 내일모레니 그럴 수밖에요. 하트모양의 케이크랑 초콜릿이 액정화면 가득합니다. 한 자 한 자 자판을 누르는 것보다 통화하는 것이 나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어쩐지 낯간지러운 말을 전할 때는 카톡의 기능이 제법 유용합니다. 목소리의 톤이나 호흡을 가다듬으며 멋쩍어하지 않아도 되니 좋습니다. 다양한 표현 방법을 지닌 카톡이야말로 사이를 이어주는 이 시대 최고의 정령이지요. 멀리 갔던 감정도 당겨오고 어긋난 마음도 풀어 이음새 없이 이어놓으니 말입니다. 말들이 건너가는 접속사이지요.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입니다. 이날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지요. 로마 황제는 원정을 앞둔 병사들이 결혼하면 사기가 떨어진다는 판단으로 그들의 결혼을 법으로 금했습니다. 하지만 밸런타인 신부는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을 몰래 허락하여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형당하게 됩니다. 270년 2월 14일, 성 밸런타인이 처형된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초콜릿을 보내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답니다. 부모와 자녀는 카드와 선물을 교환하며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연인들은 사랑을 맹세하는 날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종일 하트 모양의 빨간색 풍선과 장미 꽃다발을 들고 총총히 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옵니다. 예쁜 카드와 초콜릿을 선물로 놓고 갑니다. 23년을 한 해도 거르지 않은 한결같은 손님도 있습니다. 그 어느 날보다 ‘사이’를 느끼게 되니 기쁘고 행복합니다. 남녀 관계없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이웃이나 동료, 친구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좋은 날이지요. 나도 앨버슨에 들러 하트모양의 빨간 풍선을 사야겠습니다. 언젠가는 바람이 빠지겠지만 이젠 식어버린 마음을 그렇게라도 힘껏 불어 넣어 띄워 놓고 싶습니다.

 

손님들이 전해준 초콜릿 선물들을 가지고 집으로 갑니다. 경계가 없는 사이를 건너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의 심장 소리를 품으러 갑니다. 콩닥거리며 날아다니듯 살아내야 하는 인생, 날개가 없는 인생에는 마음의 날개라도 품어야겠지요. 아무리 채우려고 노력해도 사이는 늘 허공인 듯, 허방인 듯 채워지지 않지요. 공터 같습니다. 너와 나 사이처럼 허기지게 돌아가는 어제와 오늘처럼 말입니다. 자꾸 바닥이 보이는 은행 잔고 같지요. 그렇지만 그사이에도 간절한 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삶은 웃음인지 울음인지를 나누며 살아가지요.

 

모든 것들은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이를 채우는 일입니다. 사이에는 밝음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가는 사이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너와 내가 있습니다. 함께라고 말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건너가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다가가려는 설렘이 있습니다. 남으려는 애달픔이 있습니다. 끼어들 수 있는 여백이 있습니다. 생각을 여밀 수 있는 긴 호흡이 있습니다. 보이는 이음새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줄이 있습니다. 잠시라는 말에 어울리는 쉼표가 있습니다. 쉬어 갈 수 있는 품이 있습니다. 잡아주는 손이 있습니다. 안도할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낮게 깔리는 저녁나절의 풍경이 있습니다. 평생을 거뜬히 건너고도 남을 정과 측은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에는 어둠으로 이어지는 길도 있습니다. 눈물 훔치게 하는 오해도 가슴을 헐게 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나무도 계절을 건너는 사이 많은 일을 겪지요. 푸른 계절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늘로 향하던 열정을 뿌리로 안으로 불러모아 겨울을 이겨내며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그 사이 아무도 모르게 연륜의 흔적인 나이테가 생기지요. 추웠다 더웠다 하는 사이 누구에게도 스민 적 없는 바람은 어느 새를 날려 봄을 물어 나르고 있었나 봅니다. 한 뼘쯤 하늘과 가까워진 나무들이 빈 가지 사이사이마다 연두색 점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살아온 날들이 그랬듯이 살아야 할 날들이 그렇대도 괜찮습니다. 날개가 없어서 날지 못한 게 아니라, 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날지 못한 것입니다.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오면 하트모양의 초콜릿을 나누고 풍선도 불어 마음에 날개를 달아 띄우면 되지요. 살포시 사이를 건너가면 되는 거지요. *

 

문득,

사이에서 태어난

날개를 갖지 못한 것들은

새의 심장을 품고

경계가 없는 허공에 덩굴손을 뻗어

나는 연습을 한다

 

메워지지 않는 공터를

건너려는 간절함에

채워진 사이의 온기는

2월이 3월의 얼굴을 더듬게 하고

 

가느다란 넝쿨 지치게 흔들어대다가

문득, 등을 치고 달아나던

누구에게도 스민 없는 바람도

어느새, 다스려지지 않는 그새에서

봄꽃 소리를 묻혀 나른다

 

이음새 없는 사이를 메우는 것은

작은 심장 소리를 배후로

허공을 향하는 날갯짓이

부단하게 한결같기 때문이다

 

김미희, (심장 소리를 듣다)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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