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우리들의 신곡

2017.06.05 11:30

KTN_design 조회 수:123

[ 칼럼 ]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우리들의 신곡

 

남편은 얼마 전 새 노래방 기계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한국으로부터 구매했다. 아내의 여가(?)를 위해 산 기계라는데, 실은 스크린에 악보가 나와 악기 연주 연습을 위한 것이었다. 오래된 기계는 90년대 초 쯤 미국출장을 온 친척이 사다 준 거였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 노래방 기계가 있던 집은 우리 집이 유일했다. 그런 연유로 우리 집 에선 거의 일주일이 멀다하고 풍악소리가 울려퍼졌다. 동네 이웃들은 마치 1970년대초 한국에서 티브이가 처음 보급 되던 시절, 저녁이면 티비 있는 집으로 우르르 모이는 것처럼 자주 구실을 만들어 우리 집 노래방 기계를 이용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 옛날이여! 같은 먼 먼 이민 초창기 시절의 풍경이었다.

 

당시도 그러했지만, 우리는 노래하는 사람들의 애창곡을 들으면서 이민 연도를 추정 하곤 했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시대에 관계없이 트로트나 가곡을 즐겨부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민온 해를 기점으로 그 이후의 노래들은 잘 알지를 못했다. 요즘에야 디렉티브이나 한국 라듸오 방송국을 통해 얼마든지 신곡을 접할 기회가 많지만, 당시는 한국에서 사온 음반이나 테잎을 통해서만 가요를 듣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귀에 익숙하지 않는 생소한 노래를 기를 쓰고 배울 일은 없어서 우리들의 애창곡은 늘 같은 곡 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갓 이민 온 사람들이 들으면 지나도 한 참 지난 노래를 가지고 서로 신곡이라고 우기거나, 이곳 미국에서는 올드 타이머 들이나 부르는 팝송만 여전히 좋아하는 이상한 취향의 세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당시는 자주 모여 노래를 하면서 이민의 설움이나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그럴만한 여유들이 사라졌다. 마치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처럼  거의 모든 집들이 맞벌이를 하고 아이들 레슨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서로 얼굴 볼 시간조차 없게 되었다. 봄이면 함께 모여 부추전을 부쳐먹고, 누구네 김치만 담그어도 서로 나누어먹던 시절이 끝나버린 것이다. 더 좋은차와 더 좋은 집, 아이들의 명문대 입학으로 대변되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무조건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차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민을 왔다지만,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부를 여유가 없고, 그저 일터와 집만을 오가는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을 돌아다보면, 아픈 분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만병의 근원이 외로움과 스트레스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물론 개인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가끔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노래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방법만큼 좋은 해소법은 없다.

 

지난 메모리얼 데이 때 드디어 새 노래방 기계를 시연했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기계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신곡들이 즐비했는데, 아쉽게도 우리에겐 별 소용이 없는 곡들이었다.  또한 스마트폰 과 연결하면 최근 찍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넣을수 있는 새로운 기능도 있어 새삼 디지털 세상 이란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7080 노래를 부르며, 아직도 업그레이드 가 되지 않은 우리들의 레퍼토리를 보며 서로 웃었다.  그래도 ‘젊은 그대’나 라이너스의 ‘연’을 목청이 터져라 부르며 옛 시절을 회상하고, 깔깔거려 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른다. 밖은 무화과가 익어가고 모든 만물이 충만함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계절이 다가왔다. 농익은 수박향기와 달콤한 참외 내음에 벌과 나비가 춤을 추고, 풍뎅이 들이 날아다닌다. 온 대지가 새로운 노래를 하듯 생명의 몸짓으로 꿈틀 거린다.


이런 계절에 우리들의 몸과 마음도 신곡으로 갈아입고 언제나 새 노래를 부를수 있으면 좋겠다. 정체되지 않는 흐르는 강물 같은 삶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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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