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정숙 수필 시인의 작은 窓 (52)

2017.06.12 09:26

KTN_design 조회 수:144

시인의 작은 窓 (52)

 

책벌레의 책 

 

 내가 어릴 적에는 책이 귀했다. 책을 잡으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놓지를 못했다. 밥 먹을 때 흘깃흘깃 보며 먹다가 버릇없다고 야단맞고 접어서 상 밑에 두었다가 수저 놓기 무섭게 책을 펴 들었다. 동생을 업고도 보고 물론 변소까지 들고 갔다. 전깃불이 나가버리면 호야나 촛불 켜고 보다가 초를 뺏기고 이불속에서 몽당초로 읽다가 불낸다고 혼 줄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못 말리겠다고 붙은 별명이 책벌레였다. 책벌레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는 생각조차도 안하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 누렇게 변색된 책을 펼쳐보다가 조금 크다싶은 검은 점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찾아보니 바로 요 녀석이 여러 종류의 책벌레 중에 하나인 먼지다듬이였다. 텍사스의 건조한 기후가 묵은 종이책에는 안성맞춤이어서 잘 견뎌 준 거였다. 
 
 사전에서는 “특정한 종류의 벌레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오래된 책을 뜯어먹고 사는 벌레를 총칭해 부르는 말. 보통 좀벌레, 그리고 인삼벌레 등의 유충이나 진드기 종류를 의미한다. 먼지다듬이라고도 한다. 요즘의 책들은 대체로 특수코팅 된데다 돌가루가 들어간 인쇄용 종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보기 힘들다. 스페인 어느 대학의 도서관에는 박쥐가 서식해서 밤에 고서들에 서식하는 책벌레들을 정리해주는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도서관 책상에 떨어지는 박쥐 똥을 막기 위해서 식탁보를 항상 올려놓고 폐관한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왕조시대 실록을 습기와 충해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바람에 말리는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 행사'가 6월 3일 전북 전주에서 열렸다. 포쇄는 충해를 막을 수 있도록 습기가 밴 책을 말리는 것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봄이나 가을 맑은 날을 택해 바람을 쐬고 햇볕에 말리는 실록 포쇄를 3년 혹은 5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했다. 장마가 끝난 처서 즈음에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옷을 말리고, 선비는 책을 말렸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중, 고교 때 학교도서관의 ‘사서 보조’를 자원했다. 각종 책을 읽었지만 실낙원, 복락원, 사반의 십자가등 기독교 책은 멀리했고 십계나 벤허 등의 영화는 일부러 안 봤다. 대학가면 종교를 스스로 택하라고 하시던 조계종 불교인 아버지가 더 좋았고 당시에는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고 광적? 신자였던 외숙모님의 기독교가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불신자가 선교회병원에서 일하다보니 책벌레 기질로 성경을 서너 번 통독하고 성경본문을 얄궂게 해석하면서 식당에서 일하시는 연세 많은 집사님들만 괴롭혔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과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졌다. 그러나 모든 게 궁금해 야간신학을 했고, 당시에 크게 도움을 준책은 <성서 핸드북, 할레이 저,1972.>이었다. 역사를 좋아했기에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증거들은 신앙에 확신을 더 해 주었다. 그 책에 의하면 홍수 침전물 아래서 대홍수이전의 토판과 인장들이 발굴되었다. 경이로운 것은 아브라함시대의 도서관이다. 진흙이 굳기 전에 써 넣고 말린 수많은 토판 책들이 잘 정리된 채 발굴된 것이었다. 
그 후의 또 다른 책은 <잊혀진 도시의 비밀-최근에 발굴된 에블라 토판,1982년>이다. 내용은 1967년에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7년 후에야 2개의 설형문자 토판 발굴을 시작으로 75년에는 15000개, 76년에는 1600개의 토판이 발굴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에벨이라는 분이 창설한 에블라 왕국이라고 한다, “수천 개의 토판이 아직 해독되지 않았고 ……, 분류되지도 않은 수천 개의 토판이 있다. 바벨론 판이 기록되기 수백 년 전에 대단히 세련된 문장으로 창조에 대해 기록된 것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또한 “우르, 소돔, 고모라, 소알 이라는 성경의 도시이름과, 아담, 이브, 야발, 노아 등의 성경인물의 이름도 기록되었다”고 한다.
91년 7월 옥스퍼드, 하버드, 한국, 3개국 성서고고학 발굴 팀과 함께 한 ‘이스르엘 골짜기의 아합왕궁터 발굴’경험과 구석구석여행은 산 체험이었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던 "1947년 쿰란 지역 11개 동굴에서 항아리에 담긴 채 발견된 수백 건의 문서들은 구약성서 사본이 이미 기원전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것" 이다.

  6월 4일은 성령강림절(오순절,五旬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 말씀을 믿고 모여서 기도하던 무리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유대교의 오순절은 주로 감사절(맥추절)로 지키지만 랍비들은 시내 산의 모세를 통해 히브리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날로도 기념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직접 새겨주신 십계명 돌판! 책벌레도 먹지 못할 그 돌판은 지금 어디 있을까? 
전자책을 수시로 다운 받아보고 세계 각국 도서관에 비치된 논문들조차 집에서 검색이 가능한 세상이다. 무슨 케케묵은 책벌레 소리냐고 하겠지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생각난다. 책벌레에게 믿음을 더해준 누렇게 변색된 두 권의 책! 일하는 틈틈이 쪼가리 시간에 꼼꼼히 다시 읽어보리라.  

 

김정숙 사모<시인.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