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노을을 쫓는 “어린 왕자”

 

 

 그가 잘할 줄 아는 것은 사진 찍는 일. 사진 보는 일. 그리고 어디론가 떠날 궁리하는 일이 전부지요. 그는 죽는 날까지 철들지 않을 나의 어린 왕자, 삼십 년째 함께하는 나의 룸메이트입니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그 뷰파인더에서 만나는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지요. 세상 잣대로 보면 미숙아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잘 익은 석류알처럼 심성 고운 마음이 빼곡하게 차 있답니다. 시류에 절대 물들지 않는 반백의 아이지요. 그의 어쭙잖은 신조는 “비 올 때 카메라를 꺼낸 사람만이 막 펼친 무지개를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는 언젠가 만날 그 생애 최고의 노을을 찍기 위해 한 층 높이도 안 되는 언덕 위에서 서성이고 있겠지요. 일을 마치고 집이 아닌 역방향으로 핸들을 꺾었을 것입니다. 하늘이 전하는 시를 읽고, 하늘이 준 그림을 그리고, 하늘이 준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 광경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느라 검지 끝에 불이 났겠지요. 노을 진 언덕에서 넋 나간 아이가 되어 있을 그가 눈에 선합니다. 돌아올 때는 가슴 가득 노을도 담아 오겠지요. 그가 원하는 생애 최고의 노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린 왕자처럼 하루에 43번의 다른 노을을 만나는 그의 행성이 어디쯤일지 함께 가보고 싶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받은 첫 월급으로 덜컥 카메라를 사 들고 왔지요. 월급을 다 주고도 모자라 결국 3개월 할부로 샀다는 사실을 다음 달 월급날에 알게 되면서 우리들의 공식적인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삼십 년 세월을 하루같이 카메라를 끼고 살았습니다. 카메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분신이지요. 낮에는 찍고 밤에는 보고. 사진을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는 사람이지요.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풍광을 찍으며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온 세월이 반평생이지요. 낮아지는 법과 굽어야 하는 때를 사진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요. 인생은 거짓을 담을 수 없단 것도 배웠습니다. 올려다볼 때는 검지 끝에 촉수를 세워야 한다는 것도 터득했습니다. 사진은 만남의 결과물입니다. 제 속을 다 드러내지 않고서는, 제 기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것을 담을 수 없지요. 그는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깊은 내면을 담으려 애씁니다. 멈춘 듯 흐르는 시간을 찍으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자연의 내면을 보는 것이지요.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고 싶어 하는 사내. 그는 한순간, 그 찰나에서 영혼을 만나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 결’로 봉인되는 세계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습니다. 숨결과 마음결과 바람결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세계. 결은 호흡이지요. 결이 없으면 생명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사진기는 1/500초로 생명선인‘ 결’을 빛으로 봉인합니다. 그 빠른 셔터스피드로 자연의 모습은 물론, 소리와 맛과 냄새까지 다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사진의 매력이지요. 그 순간을 담은 사진을 만날 때 사람들도 숨이 멎지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연의 숨결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지요. 언제나 존재했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가 열리는 순간, 그 찰나를 정지시켜 영원히 흐르게 하는 마술사. 그것은 사람과 사진기가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비가 억수로 퍼붓던 지난 일요일. 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고 다운타운에 갔던 그가 비에 젖은 홈리스처럼 측은하고 꼴사나운 모습으로 돌아왔지요. 쫄쫄 굶으며 1만 5천 보를 트리니티 강둑에서 채웠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 있었습니다. 얼굴 가득 쌍무지개가 피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번개와 천둥 속을 서성였을 그를 상상해 보았지요. 누가 시키면 못했겠지요. 아니 절대 안 했겠지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겠지만, 그와 오랜 세월 살다 보니 이제는 억지로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저리 좋은 것을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닮은 엉뚱하고 순수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는 영원한 아이인걸요. 이 행성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외계인 같은 사람이지요. 어린 왕자와 DNA 검사를 하면 80% 정도는 일치한다는 판정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확신합니다. 

 그가 말하는 생애 최고의 노을은 어떤 것인지 죽기 전에는 보는 날이 오겠지요. 아니, 어쩌면 그도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맑은 영혼도 보지 못하는 하늘의 뜻은 있을 테니까요. 노을을 쫓는 아이가 되어 매일 똑같은 언덕을 오르는 것은 어쩌면 먼 행성 어디쯤 있을 그의 혈육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언덕에는 다른 행성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 열리는 장소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아마 그는 오늘도 내일도 언덕 위에 안테나처럼 서서 다른 행성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어린 왕자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철들지 않는 어린 왕자와 사는 나 또한 영원히 길들지 않을 마누라이지요.

 

 

하늘은 

탈고하지 않은 채 넘기는 법이 없다

한 권의 소설도

한 편의 수필도 아닌 

딱 열 줄의 시를 쓰고 저문다

 

세상의 높이를 잴 줄 모르는 

반백 머리의 그는

한 층 높이의 언덕만 보아도 좋아한다

 

새들의 부리로 마침표를 찍은 

서녘 하늘의 은유를 

사진 한 장으로 담기 위해

오늘도, 그는

검지 끝에 촉수를 세우고

언덕이 있는 역방향으로 향한다

 

그의 꿈은 

소행성에 가서

하루에 마흔세 번의 다른 노을을 찍는 것이다

 

그가 찍은 노을이 

그의 가슴을 붉게 물들이는 날은 언제쯤일까

 김미희, (노을을 쫓는 어린 왕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