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기억하고 가르쳐야 할 ‘6·25전쟁일’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6·25 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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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일요일은 6·25전쟁 67주년인데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했을 때처럼 주일이다. 6·25사변일(六二五事變日)을 공식명칭으로 쓰다가 2014년 개정되어 ‘6·25전쟁일’로 바뀌었다. 
집안 여기저기에 걸린 달력은 동문목사님들이 시무하시는 교회에서 받은 것들이다. 그런데 단 지 한 개의 달력에만 ‘6.25전쟁일’이라고 적혀있다. 교회이름을 넣어 한국에서 인쇄하는 기독교 달력조차 6.25를 잊은 세상이 되었구나 싶어서 쓸쓸해진다.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의 6·25 노래. 그 가사까지 요즘의 아이들과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개전 초기 미군을 중심으로 각국 참전병력은 한국군과 함께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전선은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으나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발판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낙동강 전선에서의 총반격작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에는 38선을 돌파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전면적 개입으로 1951년 1월 연합군은 다시 남쪽으로 후퇴하였고 서울이 또 북한군의 수중으로 들어가기도 하였으나 3월 15일 다시 수복하였다. 전쟁은 점차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고 1951년 7월부터 시작된 휴전협상은 1953년 7월 27일에야 비로서 체결되었다. 16개국의 국제연합군과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제전이 된 3년간의 전쟁에서 한국군 13만여 명, 유엔군 4만여 명이 희생되었고 부상자와 실종자를 합하면 60만 명이며 남북한 민간인 25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치열한 낙동강 전투 때에 남편을 전쟁에 보내고 10대의 시동생들과도 헤어지게 된 어머니는 어린 아들만 업고 피난을 떠났다고 하셨다. 휴전이 되어 돌아오니 군인이 전해준 남편의 전사통보. 횡성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과 함께 재를 받아든 20대의 젊은 시어머니는 남편의 뼛가루인지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느냐며 강에 뿌리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DNA검사도 없었고 또한 마을에서 군에 간 사람은 하나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전사하신 횡성전투는 “나중에 재 진군한 연합군의 보고서는 이 지역을 학살의 계곡이라고 부를 정도였던 비극의 현장”이었고 횡성문화원에서는 2014년 향토사료집으로 ‘학살의 계곡이 말하는 라운더업 작전의 횡성전투’(이하 횡성전투)가 발간되었다. 


현충원에 안장된 전사자는 13만 중 삼만 정도이며 나머지 10만 삼천 위가 유해 없이 위패로만 모셔져 있다. 아직도 전사한 그곳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충원에서는 횡성지역은 물론 전쟁이 치열했던 격전지에서 유해를 발굴하여 현충원에 모시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과 위협에 대해 한반도가 걱정스러운 이 때다. 한남일보 6월 19일자에 의하면 “6·25,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충격적인 설문조사결과를 보도했다. “지난 2008년 행정안전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25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북한 48.7%에 이어 일본 13.5%, 미국 13.4%, 러시아 10.9%로, 심지어는 남한이 2.0%라는 결과도 나왔고 모름은 8.1%였습니다. 세월이 더 지나면 우리의 청소년들은 6.25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기사다.

 

 부모의 세대를 제대로 믿지 않는 요즘의 젊은이 중 잊혀져가는 이 6·25 전쟁을 기억의 수면위로 끌어올린 여성이 있다. 뉴스를 요약하면 25개국을 돌며 200여분의 참전용사에 “감사합니다.” 큰절 올린 올해 34세인 재미교포 한나 김씨. 맞서 싸웠던 중국, 러시아, 북한도 찾았으며 특히 북한에서는 전사자 묘지에 가서 기도했다고 했다. 아픔이 기쁨으로 변하고 평화통일이 빨리 되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이민 오면서 시아버지의 위패라도 확인하려고 국립현충원에 갔었는데 당시에는 찾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아팠다.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위패와 유해를 확인하고 알라딘에서 살수 없는 ‘횡성전투’책도 직접 주문해서 자녀들에게 전해주어야겠다.


“지난날을 회상해 보아라 ! 과거의 모든 역사를 생각해 보아라 ! 너희 부모들과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물어 보아라 ! 그들이 너희에게 설명해 줄 것이다.”(신명기 32:7)  

 

 

김정숙 사모<시인.달라스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