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박혜자 수필 여름농사

2017.06.2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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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여름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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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지가 꽤 되었다. 이제는 어느쪽에 무엇을 심어야 잘 되는지, 비료는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벌레는 어떻게 퇴치해야 하는지를 인터넷을 보지 않고도 제법 잘 알게 되었다. 경험만한 스승은 없는 법이어서 해마다 겪는 시행착오가 우리부부를 제법 쓸만한 밭 농사꾼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둘이 살면서 사먹으면 될 일을 뭘 힘들게 텃밭을 가꾸느냐고 하지만, 수확보다는 가꾸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더 많기에 우리는 해마다 되풀이 되는 텃밭 농사를 짓는다. 이른 봄에 씨앗을 준비하고 밭을 뒤집어엎고 잡초를 뽑고 열매을 따는 일들은 사계의 변화와 같아서 어느 것 하나도 가만 앉아서 되는 일은 없다. 심신을 단련하는 두 가지 덕목중 하나인 노동을 밭농사를 통해 흉내라도 내는 셈이다. 날마다 쑥쑥 자라나는 잡초를 뽑다보면, 하루라도 되돌아보지 않으면 어느새 잡초 같은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을 엿보게 된다. 하루라도 물을 주지 않으면, 금새 말라버리는 여름 채소 잎들을 보며, 우리의 일상을 메마르지 않게 해주는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해 보게 된다.

 

텃밭 농사를 짓다 보면, 채소를 가꾸는 일도 사람 사는 일과 별반 다를게 없어, 의외로 정성을 들여 가꾼 채소는 별로 수확이 없고, 뜻밖의 채소나 과일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우리를 더 흐뭇하게 할 때가 더 많다. 우리 집 텃밭은 예전에 소들의 방목지 여서 땅이 질척하고 잡초가 많다. 그래서 인지 상추나 미나리처럼 잎이 여린 채소는 잘 안되고 케일이나 비트 같은 구황채소가 더 잘되는 편이다. 예전 서부시대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던, 생명력 강한 채소들이 더 잘되는 땅인 것이다. 처음 이사 와서 산성인 땅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몇 트럭의 흙을 새로 부었지만, 그때 뿐 한 해가 지나면 별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거름이 되라고 생선뼈 같은 것을 묻어두면 밤사이에 야생동물들이 와서 다 파헤쳐놓고 가는 바람에 시중에 파는 비료 외에는 줄 것이 없었다. 가끔 한국에 있는 친지들이 각종 씨앗을 보내오지만, 토양이 맞지 않아서 인지 변종이 되었다. 마치 이민 와서 사는 우리네처럼 이곳 토양과 기후에 맞게 변질되는 것이다. 열무는 거세기가 억새 같고 갓은 매워서 먹을수가 없었다. 고들빼기도 잘 자라지 않았고 도라지는 꽃조차 피지 않았다. 그나마 근대 와 깻잎 같은 채소는 먹을만했다. 그중에 가장 손쉽게 자라는 것이 참외 이다. 봄철 한국마켓에서 사먹은 참외 중 단 것만 골라 씨를 묻어두면 저 혼자 줄기를 뻗고 자라 가을까지 참외를 실컷 먹게 해준다. 시중에 파는 것 보다 당도는 낮지만 아삭한 식감은 사먹는 것 보다 훨씬 낫다. 작년에는 넘치는 참외로 참외장아찌 까지 담았다. 가끔 토끼 들이 갉아먹고 가기는 하지만, 여전히 두 식구 먹는데는 지장이 없다. 아니 이웃들과 나눠먹고도 남는다.

 

토마스 제퍼슨은 <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친구에게 땅을 가꾸어 먹는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땅을 가꾸는 것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은 없다네. 그 가운데서도 밭 가꾸는 일을 최고로 꼽을 수 있지, 그 갖가지 채소들 하며, 어떤 것은 잘 자라주고 하나가 잘 안 돼도 다른게 잘 되어서 보상 받을수 있지, 하나를 거두어들이고 나면 또 다른 걸 거두어 들일수 있다네. 나는 큰 욕심없이 , 우리 집 밥상을 위해 오늘도 밭에 나가네.”

 

나 역시 우리 집 밥상을 위하여 오늘도 밭에 나간다.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질척거리는 땅을 밟으며 잡초를 뽑고 그날 먹을 채소를 뽑아온다. 시중에 파는 것처럼 매끈하지는 않지만, 어린 새싹일 때부터 내가 보아온 것이기에 안심하고 먹을수 있다. 쌈을 싸먹거나 샐러드, 나물, 효소 등 활용방법은 무궁무진 하다. 가끔 레시피가 잘 떠오르지 않을때는 음식솜씨가 좋은 이웃들에게 물어보면, 정답이 나온다. 그래서 비트뿌리는 삶아서 올리브 오일과 섞어서 먹고(이렇게 먹으면 달큰하고 부드럽다) 매운 겨자잎은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너무 자란 베질은 잣과 올리브오일과 섞어 베질페스토를 만들면, 색다른 파스타를 즐길수 있다.

 

밭에서 나오는 채소와 과일은 여름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마켓을 가지 않아도, 마켓 스트릿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비가 자주 와 주면 고맙고, 자주 오지 않으면 좀 더 부지런해지면 된다. 근래에 몬순처럼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는 참으로 반가운 손님이다. 오늘 저녁은 호박잎과 근대, 깻잎을 쪄서 쌈 파티를 열어야 겠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기 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먹는 사람은 자기 밭을 갖고 있지 않은 부자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먹는다는 J C루던의 말이 참으로 실감나는 여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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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자
시인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