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수자 칼럼 ]

제22화 물귀신과 사이렌(Siren)

 

 시중에는 ‘물귀신작전’이란 말이 있다. 어떤 범죄를 놓고 혼자 책임을 지지 않고 주변 여럿을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작태를 들어 말하는 모양이다. 이는 마치 물귀신이 물속에서 사람을 잡아 끌어들여 죽인다는 속설에서 생긴 말일 것이다. 즉 ‘같이 죽자’는 죽음의 동반을 뜻하는 것이니, 한국인에게 오래 젖어있는 정서 같기도 해서 민망하다. 그러나 물귀신은 진짜 있을까. 


 옛 얘기 한 토막 - 귀신을 볼 줄 아는 선비가 살았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중 강가에서 물귀신이 자맥질 하는 것을 보았다. 선비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때 한 젊은이가 제물을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선비가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자, 젊은이는 누님이 얼마 전 이 강에 빠져 죽었는데 지금 그 누님을 위한 제사를 지내러 강을 건너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선비는 귀신이 자신의 동생을 물속으로 끌고 가려한다는 것을 예측하고 그 사람을 말렸다. 이를 본 물귀신은 선비에게 왜 자기 일을 방해 하냐고 따졌고, 선비는 다음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만삭인 어떤 여자가 강을 건너가는데 물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선비는 귀신을 불러 동생은 데려 가려 했으면서 저 여자는 왜 그냥 보내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물귀신은 홀몸 같으면 잡았을 텐데, 뱃속에 정승이 들어 있어 무서워서 잡지 못했다고 했다. 특급 비밀 정보를 입수한 선비는 만삭인 여자를 찾아가 자식이 태어나면 자기가 공부를 시키겠다고 하였고 아기는 커서 정말 정승이 되었다. 귀신이라도 비범한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무속인들은 물귀신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원귀라고 말한다. 귀신이 그렇듯 물귀신 역시 자신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에, 호시탐탐 사람들을 자신이 빠진 곳에 유인하여 익사 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귀신도 혼자 있기 심심해서 또는 다른 사람을 빠뜨려 죽여야 자신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익사한 사람의 혼이 그 곳의 물귀신 자리를 이어간다고도 한다. ‘물귀신? 그런게 어디있어? 물살이세고 물 밑에 바위나 돌들이 많아 물 소용돌이가 일어나 곳에 사람들이 잘 못 들어가면 헤어나지 못하고 빠져 죽는거지’하면서 물귀신 무효론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물귀신들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물론 사람이 빠져 죽은 물가에 가지 않으면 된다. 물귀신 작전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물론 물귀신이 될 성싶은 사람들과 놀지 않으면 된다. 허나, 말은 쉬운데 물에서나 사회에서 물귀신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사이렌(Siren) :

한국의 물귀신에 해당하는 귀신이 서양에도 있다. 서양의 물귀신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사이렌(siren)이다. 지금 사이렌은 토네이도, 쓰나미, 지진 같은 재해를 알리는 소리이기도하고 또 화재, 환자 수송, 경찰 등 경보(警報)의 뜻이기도 하다.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경계심을 유발시키는 사인렌의 정체는 멀리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사이렌은 ‘아름다운 여성 얼굴에 몸은 새’처럼 생겼다고 기록 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상상력 덕분인지 미모의 여성 상반신과 물고기의 하반신을 가진 ‘인어’로 표현되기도 했다. 또 사이렌은 이탈리아 서부 해안의 절벽과 바위로 둘러싸인 사이레눔 스코풀리(Sirenum Scopuli)라는 섬에 사는 ‘바다의 정령들’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사이렌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등장 한 것은 호머(Homer BC7)가 쓴 <일리어드. 오디세이>에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났는데도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이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에 갇혀있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방해 때문이었다. 포세이돈은 오디세이가 눈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괴물 아들의 눈을 찔러 멀게 했다는데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올림피아 신들이 포세이돈이 멀리 간 사이 회의를 하게 되었다. 동정심이 많고 푸른 눈이 아름다운 여신 아데네가 아버지이며 신중의 신 제우스에게 부탁했다. 죄도 없는 오디세이 장군이 섬에 갇혀 고향에도 못가고 하는 것은 부당하니, 그를 풀어주어 주자고 간청한다. 마침내  제우스신의 허락으로 오디세이는 그리스로 귀향하게 된다. 
 여기서 얘기는 시작된다. 오디세이의 표류담 중 제12부에 나오는 것으로 오디세이가 1년을 같이 지내며 사랑했던 키르케 섬의 키르케 여신이 일러주는 말에 ‘사이렌’이 등장한다. 여신은 오디세이의 무사귀환을 빌며 항해 도중에 만나게 될 여러 가지 일에 대비책을 가르쳐준다. 키르케는 ”배가 마술장이 사이렌에게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 여자는 모든 사람을 닥치는 대로 마술로 골탕을 먹인답니다. 누구든 그녀의 음성을 듣기만하면 고향을 잊어버린 채 다만 사이렌이 부르는 높은 노래에 넋을 잃고 말지요. 그녀가 서 있는 풀밭에는 썩어가는 사람들의 뼈가 수두룩하게 널려있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그 옆길로  달아나세요.” 
 여신의 말을 들은 오디세이가 선원들에게 당부했다. “동지들이여, 키르케 여신이 나한테 일러 준 말은 먼저 고운 목소리의 사이렌의 노래 소리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들의 노래 소리와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에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그저 나를 꽁꽁 묶어서 내가 소리를 따라가지 않도록 해 주어야하는 거다. 설령 내가 단단히 홀려서 너희들에게 풀어달라고 부탁하거나 호통을 친다고 하더라도 너희들은 결코 나를 풀어주어서는 안 된다.” 오디세이는 이렇게 부탁을 하고 선원들 각자에게는 사이렌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밀납 덩어리를 만들어 귀를 막아주었다. 선원들은 배 한가운데 있는 굵은 돛대에 오디세이를 꽁꽁 묶어 놓았다. 이윽고 사이렌들은 배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아채고는 높은 소리로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ㅡ“어서 오세요. 좀 더 가까이 오세요. 아카이의 왕이신 오디세이여. 저희들의 아름다운 노해 소리를 듣고서 오랜 항해에 쌓인 피로를 말끔히 풀도록 하세요” 노래 소리가 들려오자 오디세이는 노래 소리에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충실한 선원들은 그를 묶어놓은 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무사히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오디세이가 자신들의 음악소리에도 끄덕 않고 그냥 지나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이렌들은 모욕감을 느껴 단체로 자살했다고 한다. 


 또 다른 또 하나의 사이렌의 이야기는 시인이자 음악의 신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다. 오르페우스가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아르고라는 선박을 타고 항해하던 중에 사이렌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사이렌의 정체를 알고 있던 오르페우스가 사이렌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자 이에 모욕감을 느낀 사이렌이 바다에 몸을 던져 바위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으면 자살하는 것이 그들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사이렌이 활약하던 시절에 오직 오디세이와 오르페우스만이 사이렌의 노래 소리에 빠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소리의 무서운 위력을 가진 사이렌은 세월이 지나며 현대의 경보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또한 사이렌은 스타벅 커피 메이커의 심벌이 되었다. 스타벅 커피 메이커가 사용하는 로고는 초록의 인어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앞을 직시하고 있는 사이렌의 모습이다. 달콤한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해 물에 빠져죽게 했던 사이렌은 이제 대중들에게 커피 맛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스타벅이 세계적인 커피 메이커로 성장한 것은 분명 사이렌의 마력에 빠졌기때문이리라. 나를 포함해서 스타벅 커피의 맛에 길들여져 커피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커피를 마셔댈 것이다. 사이렌의 주술에 걸려든 탓이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오디세이를, 오르페우스를 유혹하던 사이렌이여~부디 바다의 요정으로 남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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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재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