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자의 힐링 스토리]

“30년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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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그 관계와 관련된 주제들을 들라고 하면 아마 “사랑”이나 “용서”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될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만큼이나 우리에게 친숙한 삶의 주제입니다. 소설, 영화, 심지어 연구 논문에서도 많이 다루어 지고 있으니까요.

 

용서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입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들이 출간되기도 했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실천한 용서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1948년 여순사건 때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그를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과히 용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대상을 용서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용서해야 함을 알지만, 가슴에서 용서가 되지 않아 이중의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그만 용서하고 잊고 살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의 권유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문제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결국은 받은 상처로 인한 고통에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고통이 더해져 그 고통은 갑절이 되어 그를 더 괴롭게 만듭니다. 가슴을 에는 듯한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사건이나 그 대상을 기억에서 지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용서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향해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요? 소인배라고 쪼잔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만일 당신이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다면, 어린 나이에 강도에 의해 부모를 모두 잃었다면, 친구나 동료의 배신으로 가진 전 재산을 잃었다면 아니면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해고되었다면 말입니다. 당사자의 입장에 서 있지 않은 한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린다는 것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한 순간의 사건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고 삶의 질이 달라지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입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심리적 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 스스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30년 걸렸어요”라고 고백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머리로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에서 용서가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마음에서 용서하고 떠나 보내는데 30년이 걸렸다는 말입니다. 


20년, 10년이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길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성인기준으로 50cm 안팎입니다. 그러나 머리에서 인정한 것이 가슴에서 인정하기 까지는 상황에 따라 수년, 수십년 또는 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미움의 대상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가슴에 난 상처와 그로 인해 생긴 물리적인 고통은 한 사람의 일생을 180도 바꾸어 놓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혹 당신도 마음에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는지요? 용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요?

 

 

글_ 장미자 _텍사스주 전문심리 상담사 (LP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