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상황이 아닌 것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만큼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용서이기도 합니다. 한 번의 사건으로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삶이 질이 달라졌다면 말입니다. 그 사람을 향해 이상적 규범을 들이대면서 용서할 것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용서도 못하는 조잔한 인간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수군덕거림은 상처의 아픔에 용서 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못남을 견뎌야 하는 고통을 더하는 것입니다. 상처로 입은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에 또 다른 짐을 하나 더 올리는 셈입니다. 그것은 상처를 치유 받도록 회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더욱 꼭꼭 닫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아픔을 그대로 공감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그 고통까지도 수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런지요?

이와는 달리 용서를 운운할 수 없는 상황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용서를 운운할 수 없는 상황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우선은 ‘약오름’입니다. 마켓에서 분유 한 통을 들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배고파 울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가능한 빨리 계산을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앞에 서있는 사람이 쇼핑 카트에 한 가득 물건을 싣고 열 품목 이하 소량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며 자기 집 애완견에 대해 계산원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다음은 ‘무시당함’입니다. 푸대접을 받은 것이지요. 어느 모임에 참석했는데 모임 주관자가 돌아다니며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다가오다가 막 들어오는 사람을 보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로 급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세번째는 ‘실망’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갖게 되는 감정입니다. 결혼기념일에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작은 선물이나 멋진 데이트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기념일인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술에 만취되어 밤늦게 귀가했습니다. 한 회사원이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들어 우울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말이라도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연락을 했습니다. 저녁시간이라 나가고 싶지 않다며 친구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끝으로 ‘마이너리그 인생’입니다. 원하던 것을 다른 사람이 차지할 때, 동료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할 때, 다른 사람이 투자한 주가는 폭등하는데 자신이 투자한 주가는 폭락할 때, 친구의 딸은 의사가 되었는데 자신의 딸은 식당 종업원으로 살아갈 때, 마치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집니다. 마이너리그 인생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일을 당하면 속이 상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씁쓸하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승진에서 자신을 떨어뜨린 상사나 인사과 직원을 용서해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아내를 실망시킨 남편이나 자신을 푸대접한 모임의 주관자를 용서하겠다고 결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와 행위를 마음에 담고 용서할 수 없다고 할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주변에 남아 있을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 같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상하고 아프지만 건강한 관계를 위해 훌훌 털어야 하는 일입니다. 무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떨쳐버려야 하는 문제입니다. 가능한 속히 마음에서 털어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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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자 _텍사스주 전문심리 상담사 (LP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