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상황이 아닌 것

 

지난 주에 용서가 아닌 것에 대해 두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로 망각하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잊는다고 해서 용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망각은 용서라는 내면의 수술을 피하려는 도피의 일종입니다. 기억에서 잊고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 사건으로 인해 느낀 감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다 보면 과거에 겪은 일로 가슴에 새겨진 감정과 (본인이 잊고 살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지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사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현재 그가 겪은, 그 일에 어울리는 정도의 화를 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을 마음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그 이상의 화를 내게 됩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나 화를 낸 당사자도 왜 그렇게 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는 과거의 사건을 기억에서 지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 난 가슴은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의 아픈 상처에 현재의 아픔이 더해져서 두배 세배의 고통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직 낫지 않은 상처를 건드렸을 때 얼마나 아픈지 우리는 압니다. 심리적 상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비난하지 않는다고 용서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로 인해 비난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일이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억울함은 일차적 감정이므로 분노로 표출됩니다. 억울함도 상처이지요. 용서하는 것은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그를 비난하고 싶을 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갈등을 덮어두는 것입니다.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 삼자가 관여하여 갈등을 조종하거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입니다. 사건을 은폐하고 갈등 관계를 어물어물 덮는 것입니다. 갈등을 덮어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싸우는 일이 빈번합니다. 형제의 물건을 말없이 가져갔거나 욕을 했거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형제자매 사이에 갈등이 많습니다. 싸움이 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나 작은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등 어떤 이유로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관여하여 갈등을 푸는 경우가 있습니다. 싸움은 빨리 종결될 수 있지만,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갈등을 겪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갈등이 없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갈등을 풀 수 있는 법도 가정에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네 번째는 상대방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수용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아주 다른 개념입니다. 수용하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거나 유익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그가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고서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수용은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능합니다. 공동체에 매우 유익한 사람이기에 용서하지 못해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유익하기에 가해자를 수용하기도 합니다. 용서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끝으로 묵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다 용서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묵인하지 못합니다. 저지른 잘못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묵인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의든 아니든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못쓰게 만든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의 행위를 묵인하는 것이 그를 용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를 용서한다고 그의 행위를 묵인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를 용서하지만 그에게 합당한 변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용서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온전한 용서를 받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자신이 잘못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부모님이 묵인한다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오히려 불안해 합니다. 아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그것을 용서한다든지 필요하다면 그에 맞는 벌을 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듭니다. 용서는 부당한 행위를 묵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묵인하면 결국 큰 상처만 남게 됩니다. 
 

장미자 _텍사스주 전문심리 상담사 (LP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