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간 5주에 걸쳐 용서와 관련하여 삶의 보따리를 풀어보았습니다. 용서라는 단어를 거론할 상황이 아닌 것과 용서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들, 그리고 치료되어야 하는 마음의 병인 증오에 대해서 입니다.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어떤 마음을 경험하셨는지요? 

 

용서는 삶이 공평하지 않음에 항의하는 사랑의 혁명이며, 용서할 때 복수라는 당연하고 정상적인 규정(normal laws)을 무시하고 사랑이란 마법으로 고통스런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스머즈는 정의합니다 (Forgive & Forget). 당신에게 있어 용서는 어떤 것인지요? 상처를 입은 사람이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진정 누구를 위해 용서하는 것일까요? 부당한 일을 행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 고통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그 당시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 고통이 상처를 입은 사람만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겪는 아픔에 대해 모릅니다. 고통을 온 몸과 마음으로 견뎌내야 하는 것은 피해를 받은 당사자뿐입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상처를 입은 사람이 아파서 몸부림을 친다 해도 상처를 준 사람은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고통을 느낄 때마다 정신과 마음도 피폐해져 갑니다. 그것은 신체적 건강까지도 좀먹게 만듭니다. 고통은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게 만들고 미움을 갖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것은 독사의 독과 유사한 독소라고 합니다. 그러니 건강을 해치는 것은 당연히 결과입니다.   
부당한 일을 행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보다는 먼저 상처를 받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을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용서하기 까지는 상처입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현실과 연결되어 있어 오늘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용서하는 것은 오늘을 건강하게 사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용서에 대한 방법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으며 본 칼럼에서도 다음 주부터 소개하려고 합니다. 좋은 방법은 알려진 방법들을 지침으로 삼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나의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30년이 지났건만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고통과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몸부림쳐야만 했다고 합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아프고 지쳐서 이제는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비영리단체에 정기적으로 소액이지만 일정금액을 그 사람의 이름으로 후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첫 후원금을 낼 때는 내면의 갈등이 심했다고 합니다. 결심을 한 것이니 하지 않을 수 없고, 막상 하자니 그 사람이 미워서 하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계속하다 보니 자신의 마음에서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만의 용서의 방법으로 상처입은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용서는 상처를 입은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상처입은 사람은 마음의 고통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며 지내지만 부당한 일을 행한 사람은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입은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현실의 삶은 삐걱거릴 수 있습니다.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가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치료받지 못한 마음은 오늘의 삶에 여전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례는 당사자의 허락하에 실린 것입니다.

 

장미자
텍사스주 전문심리 상담사 (LP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