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온전한 믿음 가운데 응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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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im 의 신앙칼럼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이 전제에 동의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실제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과 친밀하고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잘 이해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마침내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의 결과로 나타난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든지 원하는 이러한 선순환의 관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주님과 온전한 믿음의 관계 가운데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


우리의 현실의 영적인 생활을 스스로 돌아보면 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학문과 풍조라는 기준과 생각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살아왔다.


그래서 여전히 세상적인 판단과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수준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영적으로 깊게 알지 못하게 하는 큰 이유이다. 또, 자신이 그렇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광고학에서 말하기를 “광고가 한 주당 한 번 사람에게 노출될 경우에 90% 이상 자신이 본 광고를 기억조차 못한다고 한다. 주당 2회 이상 반복하여 노출되면 약 15% 수준의 광고 인지율을 보인다”고 한다. 크루그먼이라는 학자는 ‘3 Hit Theory’를 통해 “주당 최저 3회의 노출기회를 가질 때 사람들이 그 자극과 정보를 생각해 내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이를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입해보면 어떤가? 그저 주일만 예배를 참석하는가, 그렇다면 90% 이상이 주일날 설교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중에 한 번 더 예배를 드리는 경우에 비추어 본다면 이 경우에도 참여한 사람들 중 고작 15% 정도의 사람들 만이 말씀에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얻으려면 최소 3번 이상, 가급적 날마다 주님 말씀 앞에 나아가 이미 언급한 대로 배움과 변화의 4단계를 훈련해야 비로소 주님을 깊이 알 수가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특별히 사랑을 드러내신 사람들을 꼽는다면 마르다, 마리아와 그리고 그의 오라비였던 나사로였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나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상대적으로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자신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죽은지 4일이나 지나서야 예수님께서 오시자 말하기를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한복음 11:32)”고 한다.


그녀는 믿음의 정도가 좋은 편이었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시라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


이 세상의 기준과 풍조에 따라 자신의 생각대로 믿는 믿음의 정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세상학문이 단순히 강조하는 강한 의지력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누구를 믿느냐’이다. 세상적 가치로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나 방법을 믿는 것이 어는 정도 문제의 해결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더 큰 어려움에 처할 때 결국 한계를 보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인생의 도전에 결코 대답할 수가 없다. 오직 이에 대한 답은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 뿐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셔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 하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한복음 11:39)”라고 대답한다.


분명히 마르다는 무덤에 오기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한복음 11:27)” 라고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비슷한 신앙고백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신앙고백은 현실이라는 한계에 맞닥뜨리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부활과 생명이신 주님을 우리가 온전히 믿으려면 세상의 상식과 도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서 대부분 발목이 잡힌다. 그리고는 이를 자신의 상식과 도리에 맞지 않는 소리라고 치부하면서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거부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하나님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한복음 11:41)”라고 기도하셨다. 기도는 온전한 믿음 가운데에서만 응답된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을 다시 방문하셨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1년치 노동자의 임금에 달하는 값비싼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그녀는 그 때서야 상식과 도리를 넘어서는 믿음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내 예수님께 다가올 영광스러운 죽음을 예비하며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믿음으로 성장하였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한복음 11:40).” 아멘.

다니엘 김
한국정부 국책금융기관 여신심사 및 신용평가역
Financial Consultant
LA 소재 한국정부 투자금융관 역임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석사
현 플라워마운드 교회 전도·선교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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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Daniel Kim 카톡 ID: danielkim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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