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인해 절망하지 말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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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Kim 의 신앙칼럼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매일 뉴스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심각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지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전염병이 창궐했던 때가 있었지만,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미증유(未曾有)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SNS를 통해 캔사스 주정부 상원 회기 개회식에서 회개기도를 한 조 라이트 목사님의 요약된 기도문을 받았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이다. 기도문의 내용은 마치 이미 언급했던 학사 에스라의 기도(에스라 9:6-7)와 같았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세속화된 세상의 물결이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쳐 왔지만 알면서도 인정하기를 스스로 피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이에 대하여 고민하고 기도하지도 못했다. 말씀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세상을 향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방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세상 논리와 관행에 익숙해 있어 악한 것을 과감히 악하다고 말하지 못하였으며, 상대주의에 휩쓸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 진리임을 담대히 말하지 못하며 고상하게 포장된 다원주의에 편승했다.
세상의 성적 타락과 가난하고 약한 자에 대한 착취, 사람을 경시하고 목적의 수단으로 삼는 풍조에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침묵함으로 실은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악한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세상은 더욱 이기적 만족과 쾌락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이 땅의 환경까지도 점차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과학과 기술은 점차 생명 윤리의 영역에까지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마치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지나친 인본주의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을 쌓는 모습에 비견된다.


그렇다면 겪어 보지 못한 이런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방향키를 붙들고 나아가야 하는가? 성경에서 그 지혜를 찾아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도 오셨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모든 문을 닫아 놓고 있었다.


예수님은 나타나신 후에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당신이 부활하셨음을 확증해주셨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허락하시며 그들에게 세상을 향한 사명을 주셨다(요한복음 20:11-23).


부활 후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오셨을 때에 제자 중 도마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른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들었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와 닮은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8일이 지나서 예수님이 도마도 함께 있는 제자들의 모임에 다시 오셨다. 그 때도 여전히 그들은 세상의 두려움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에 문을 걸어 닫고 있었다.


예수님이 오셔서 도마에게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요한복음 20:27)” 하시며 주님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셨다.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은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 말씀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주님 말씀대로 세상을 향해 사명을 갖지는 못했다. 왜 그들은 바로 주님 말씀대로 담대한 믿음을 견지하지 못했을까?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보다 두려움과 절망스러운 현실에 더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날마다 실족하고 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믿음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런 고통과 절망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의지력이 좋은 이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겨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의지력의 차원이 아닐 때가 올 수도 있다.


이 때 그리스도인은 오직 부활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할 때 비로소 끝까지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편하고 넓은 길로 이끌지 않고, 연단하시기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신다(이사야 48:10).


좁고 어려우며 절망스러운 현실과 마음의 상처가 우리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직 우리의 주인은 부활하신 주님 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 20:29).” 이러한 현실이라는 연단 가운데 주님을 알 뿐(Knowing God)만 아니라 경험하고(Experiencing God), 말씀대로 순종함(Obeying God)으로 마침내 승리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 시대의 남은 자(The remnant, 이사야 10:20)이다.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스가랴 13:9).” 아멘.

다니엘 김
한국정부 국책금융기관 여신심사 및 신용평가역
Financial Consultant
LA 소재 한국정부 투자금융관 역임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석사
현 플라워마운드 교회 전도·선교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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